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시문학 창간호>(1930)-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서정적, 낭만적, 유미적, 여성적
■ 표현
* 3음보와 각운의 적절한 사용으로 음악적 리듬감 획득
* 추상(관념)에 지나지 않는 '마음'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함으로 심상화시킴.
* 수미쌍관적 구조
■ 시어의 의미
* 끝없는 강물 → 개념적 의미를 넘어서는 문학적 언어
시적자아의 아름답고 순수한 정서적 상태를 나타내는 시어
시적자아의 내부에 흐르는 '영혼의 지향'
* 돋쳐 → '돋아'의 힘줌말
* 도도네 → '돋우네'
*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 가슴과 눈과
핏줄, 어디에든 섬세하고 아름다운 정서가 숨어서 꿈틀거리고 있다.
(어떤 이는 '가슴'을 '정서, 생각', '눈'을 '이상, 동경', '핏줄'을 '열정, 열망'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 도른도른 ― 나지막하고 정겹게 나누는 소리
*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김흥규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에서 )
→ " 여기서 다시금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이란 구
절이다. 숨어 있다는 것은 마음이 현실 세계로 펼쳐져 나아가지 않고 내면의 세계로
물러나 들어옴을 뜻한다. 즉, 그는 현실 속에서의 갈등을 피하여 자기만이 가진
속마음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렇게 돌아왔을 때 맛보게 되는 그윽한 평화,
안정감 그리고 혼자만의 기쁨의 표현이 바로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흐르는
강물이다. 강물은 이러한 자기만의 평화와 그윽한 아름다움의 이미지이다."
■ 주제 ⇒ 내 마음(내면 세계)의 평화와 아름다움
[시상의 흐름(짜임)]
■ 1, 2행 : 마음 속에 흐르는 강물
■ 3, 4행 : 흐르는 강물의 아름다움
■ 5, 6행 : 강물의 위치
■ 7, 8행 : 마음 속에 흐르는 강물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동백꽃에 빛나는 마음>이라는 원제목을 지닌 이 시는, 언어와 언어의 조화, 음악성
이외에 사상성이나 깊은 주제의식은 기대하기가 힘든다. 원초적인 시인의 '마음'만
있을 뿐, 현실적 삶의 책임이나 외계의 어떠한 압력도 완전히 제거된 순수문학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현실세계로 나아가지 않고 내면세계에 머물러 있는' 행위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문학이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지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시인만이 지고 있었던 음악성,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말씨,
순수한 내면세계의 표출 등을 두고 힘을 실어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시에서 마음이 '강물'로 비유됨으로써 끊임 없이 흐르며 솟아오르는 심리적 동요를
형상해 놓고 있다. "마음=강물=은결=가슴=눈=핏줄"이라는 시상의 전개는 마음 속에
담긴 설움과 그리움을 확대, 심화해 준다.
[감상을 위한 읽을 거리] : 조남익의 『현대시 해설』에서
이 시의 주제는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은 불가사의한 형체를 발산하며,
순수 서정의 화려한 진면(眞面)을 드러내고 있다. 영랑의 시가 이른 사람의 마음이란,
어떠한 신선도(神仙圖)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생금(生金)으로 빛나는 극치가 있다.
이 시에서 소재가 된 것은 남쪽에 많은 동백나무, 그 잎에 비치는 시인의 마음이다.
동백잎을 보면 시인의 마음이 그 잎(자연)에 접했을 때, 환희의 극광은 어딘 듯 강물이
끝없이 흐르는 것 같고, 아침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고,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신비한 곳을 느끼어 마지 않는다. 그 순백의 마음의 경지, 그것이 시미(詩味)의
실체로써 이 시가 지향하는 바 핵심이다. 매우 미세한 대상에의 시정이면서
동백나무에 햇빛이 비치고, 시인의 마음 또한 비치는, 극명한 세계의 마음, 정열,
분방 등을 한편의 시에 담았다.
[작가소개]
김영랑 : 김윤식 시인
출생 : 1903. 1. 16. 전라남도 강진
사망 : 1950. 9. 29.
수상 : 2008년 금관문화훈장
경력 : 1949 공보처 출판국장
강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단장
시문학 동인
작품 : 도서, 기타
[정의] : 일제강점기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독을 차고」 등을
저술한 시인.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본명은 김윤식(金允植). 영랑은 아호인데 『시문학(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전라남도 강진 출신. 아버지 김종호(金鍾湖)와
어머니 김경무(金敬武)의 5남매 중 장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혼인하였으나 1년반 만에 부인과 사별하였다.
그뒤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난 다음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이 때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휘문의숙에는
홍사용(洪思容)·안석주(安碩柱)·박종화(朴鍾和) 등의 선배와 정지용(鄭芝溶)·이태준(李泰俊) 등
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李承萬)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 데
직접·간접으로 도움을 받았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하였다.
이무렵 독립투사 박렬(朴烈), 시인 박용철(朴龍喆)과도 친교를 맺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향리에
머물면서 1925년에는 개성출신 김귀련(金貴蓮)과 재혼하였다.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하기도 하였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있는
삶을 영위하다가, 9·28수복 당시 유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시작활동은 박용철·정지용·이하윤(異河潤) 등과 시문학동인을 결성하여 1930년 3월에 창간된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칠수(四行小曲七首)」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후 『문학』·『여성』·『문장』·『조광(朝光)』·『인문평론(人文評論)』·『백민(白民)』·
『조선일보』 등에 80여편의 시와 역시(譯詩) 및 수필·평문(評文) 등을 발표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전기와 후기로 크게 구분된다. 초기시는 1935년 박용철에 의하여
발간된 『영랑시집』 초판의 수록시편들이 해당되는데, 여기서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인생태도에 있어서의 역정(逆情)·회의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슬픔’이나 ‘눈물’의 용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그 비애의식은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지 않고, ‘마음’의 내부로 향해져 정감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요컨대,
그의 초기시는 같은 시문학동인인 정지용 시의 감각적 기교와 더불어 그 시대
한국 순수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940년을 전후하여 민족항일기 말기에 발표된 「거문고」·「독(毒)을 차고」·
「망각(忘却)」·「묘비명(墓碑銘)」 등 일련의 후기시에서는 그 형태적인 변모와 함께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죽음’의 의식이 나타나 있다.
광복 이후에 발표된 「바다로 가자」·「천리를 올라온다」 등에서는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의욕을 보여주고 있는데, 민족항일기에서의 제한된 공간의식과 강박관념에서 나온
자학적 충동인 회의와 죽음의식을 떨쳐버리고, 새나라 건설의 대열에 참여하려는
의욕으로 충만된 것이 광복 후의 시편들에 나타난 주제의식이다.
주요저서로는 『영랑시집』 외에, 1949년 자선(自選)으로 중앙문화사에서 간행된
『영랑시선』이 있고, 1981년 문학세계사에서 그의 시와 산문을 모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묘지는 서울 망우리에 있고, 시비는 광주광역시
광주공원에 박용철의 시비와 함께 있으며, 고향 강진에도 세워졌다.
[참고문헌]
『모란이 피기까지는』(김학동 편, 문학세계사, 1981)
『전형기의 한국문예비평』(김용직, 열화당, 1979)
『한국현대시인연구』(김학동, 민음사, 1977)
『한국현대문학사탐방』(김용성, 국민서관, 1973)
「조밀한 서정의 탄주: 김영랑론」(정한모, 『문학춘추』, 1964.2.)
「시와 감상: 영랑과 그의 시」(정지용, 『여성』, 1938.9·10.)
[네이버 지식백과] 김영랑 [金永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