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의 일탈
강 문 석
일본인들의 후지산 사랑은 좀 유별난 구석이 있다. 마치 신을 모시듯 후지산을 떠받든다. 후지산이 조금이라도 바라다 보이는 곳이면 우선 그 마을의 땅값이 달라진다. 이렇게 숭상하다 보니 일본의 등산로마다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후지산 형체만 보이면 후지미富士見라는 벤치가 등장한다. 그러한 후지산이다보니 드디어 하루 등산객 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후지산은 지난 2천 년간 무려 43차례, 평균 50년에 한 번 꼴로 분화하였지만 최근 3백년은 조용했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이 만들어낸 지진파가 후지산 지각에 영향을 끼쳐 화산폭발 위험을 높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때문에 후지산 분화 가능성에 일본의 신경이 곤두서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대자연의 일부분인 후지산을 유네스코를 시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었다니 정말 지나가던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안타깝게도 일본 동북지역 대지진 참사 이후 끊임없이 분화설이 나돌았던 후지산에 벌벌 떨던 일본이 서둘러 로비를 벌여 문화유산으로 등록했던 것이다. 그동안 자연유산등록은 별짓을 다 해봐도 안 되니까 슬그머니 문화유산으로 돌려서 유네스코 인정을 따낸 것이다. 사실 후지산은 고도만 높았지 정상에 분화구가 폭탄을 맞은 듯 뻥 뚫려 있는 게 고작이어서 기대를 안고 산을 올랐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는 산이다. 이웃나라 일본을 깎아내릴 목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사실은 일본속담이 잘 증명해준다. "한 번도 후지산을 오르지 않은 사람은 바보, 두 번 오른 사람 또한 바보富士山に一度も登らぬ馬鹿、二度登る馬鹿"라는 속담이 바로 그것이다. 후지산에 대해 유난을 떨어서 막상 올라가보면 참으로 뻥이 심한 곳이란 걸 알게 된다는 속담이 아닐 수 없겠다.
그런데 속더라도 일단 한 번 올라보라고 권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30년 전 처음 후지산을 오른 것은 산악회 멤버들이 꼬드긴 충동 때문이었지 싶다. 정상 한참 밑 산장에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새벽 1시에 출발하여 후지산 일출을 보겠다며 날카로운 화산석 바위를 엉금엉금 기어서 올랐지만 허망감만 안고 끝났다. 변화무쌍한 고산의 날씨는 끝내 일출을 보여주지 않았고 동녘을 바라보며 가슴 졸이던 일행은 결국 힘없이 터벅터벅 산을 내려서야 했던 것. 15년 전에는 일본 북알프스 종주를 끝낸 산행대장이 느닷없이 카미코지上高地에서 승합차를 대절하는 바람에 강제로 끌려갔었다. 두 번째도 정상일대는 첫 번째와 달라진 게 없었다. 분화를 염려해서 제대로 된 건물을 짓지 못하고 얼키설키 나무를 걸쳐서 천막을 덮은 움막이 기념품매장으로 서너 군데 있을 뿐이었다.
검붉은 분화구 바닥 가장자리에 커다란 바위덩어리 하나가 땅속에서 펄펄 끓고 있을 용암을 솟구치지 못하도록 누르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날은 바다에서 해가 솟기 전 구름이 마치 연출을 하듯 코끼리 등 다양한 동물형상으로 나타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고 일출장면은 우리네 바다와 다르지 않았다. 속담대로라면 응겁결에 두 번 오른 나도 영락없는 '후지산 바보'가 되고 말았다. 일본은 그동안 후지산을 자연유산으로 등재하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산은 이미 훼손이 심각한 상태였다. 지구촌에서 몰려든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에다 화장실에선 분뇨까지 흘러넘쳤다. 계획에 없던 등산로까지 여러 개 생겨나 산은 훼손이 더 심해졌다. 유네스코는 세계의 유수한 산들에 비해 후지산이 특별나다고 볼 수 없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자 일본정부는 자연유산 등재를 위해 즉각 친환경 화장실을 등산로 주변에다 만들며 법석을 떨어댔지만 끝내 인정을 받아내진 못했다.
자연유산 등재를 퇴짜 맞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환경평가에 관대한 문화유산 쪽으로 틀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후지산은 환경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었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등산객이 더 많이 몰려들어 환경이 더 나빠지고 있다. 급기야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유네스코가 문화유산등록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거기에다 일본인들조차 잘 모르는 비밀은 후지산의 8할이 사찰 소유로 사유지라는 사실이다. 이래저래 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한 일본정부 당국과 유네스코가 골치를 앓게 된 것이다. 유산이란 선조로부터 물려받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이 아니던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모두 다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삶과 영감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유산의 형태는 독특하면서도 다양하다.
‘세계유산’이라는 특별한 개념이 나타난 것은 이 유산들이 특정 소재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속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을 발굴 보존하고자 1972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보호협약 약칭 ‘세계유산협약’을 채택하였다. 협약이 규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은 그 특성에 따라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한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 세계유산기금으로부터 기술적 재정적 원조를 받을 수 있다. 현재 문화유산 779건, 자연유산 197건, 복합유산 31건 등 1007건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이밖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46건이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에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1997년에 창덕궁, 수원화성, 2000년에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경주 역사유적지구, 2009년에 조선왕릉, 2010년에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 2014년에 남한산성, 2015년에 백제역사유적지구 등 11건이 문화유산으로, 2007년에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향후 등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는 삼년산성, 공주무령왕릉, 강진 도요지,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남해안 일대 공룡화석지가 있다. ‘富士山一信仰の対象と芸術の源泉’이라는 이름을 내건 일본의 간교한 술책에 넘어가 후지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해준 것은 2013년 6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열린 제37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