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조지훈
1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상아탑>(1946)-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관조적, 애상적, 묘사적
■ 표현 : ① 2음보의 운율감
② 절제된 시어로 고풍스러운 분위기 형상화
③ 정감이 넘치는 조사 사용(∼로서니, ∼랴, ∼리, ∼어라, ∼노니)
■ 심상 : 낙하, 소멸의 심상.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심상.
■ 시어의 사전적 의미
*우련 - 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저허하노니 - 두려워함, 마음에 꺼려함
■ 주제 ⇒ 낙화를 통한 생명의 무상함과 비애감
[시상의 흐름(짜임)]
■ 1∼6연 : 꽃(낙화)
1연 - 꽃의 떨어짐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질서로 받아들이고 인정함
2연 - 새벽무렵(꽃의 떨어짐으로 인한 서운함에 밤잠을 이루지 못함)
3연 - 날이 밝을 무렵(귀촉도의 울음으로 시적자아의 정서를 대변함)
4연 - 꽃이 지는 슬픔을 함께 하기 위해 촛불을 끔(낙화 = 어둠)
5연 - 뜰에 비친 꽃 지는 그림자
6연 - 꽃의 마지막 아름다움과 쓸쓸함
■ 7∼9연 : 자아
7연 - 세상을 피해 묻혀 사는 이의 고운 마음
8연 - 자아의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꺼려함(꽃과 더불어 삶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음)
9연 - 은자(隱者)의 서정적 애수 (허망함, 비애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조지훈 시인의 초기 시에서 나타나는 특유한 적막감과 비애어린 정서가 잘 드러난 작품으로, 떨어지는 꽃을 보고 삶의 고독과 우수를 노래하고 있다. 살아있는 것이 생명을 고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이 자연의 섭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지만, 어쩔 수 없이 시적자아는 비애의 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세상을 피하여 홀로 사는 그에게 한 즐거움이었던 꽃이 떨어질 때, 그는 자신의 삶에 가득한 외로움을 다시금 느끼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기쁨과 목숨이 덧없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는 이 슬픔을 잘 정돈된 시어와 시적 균형으로 억제하지만, 그것은 짙은 우수의 빛을 띠면서 작품의 말들 사이에서 연기처럼 스며 나오고 있다.
[참고] : "낙화"의 2부
피었다 몰래 지는 / 고운 마음은 //
흰 무리 쓴 촛불이 / 홀로 아노니 //
꽃 지는 소리 / 하도 하늘어 //
귀 기울여 듣기에도 / 조심스러라. //
두견이도 한 목청 / 울고 지친 밤 //
나 혼자만 잠들기 / 못내 설어라. //
[작가소개]
조지훈 : 조동탁 시인, 수필가
출생 : 1920. 12. 3. 경상북도 영양
사망 : 1968. 5. 17.
가족 : 아들 조태열
데뷔 : 1939년 문장 '고풍의상' 등단
작품 : 오디오북, 도서, 기타
본명 동탁(東卓)이며, 경상북도 영양(英陽)에서 출생하였다.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중학과정을 마쳤으며,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校, 현 동국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39년 《고풍의상(古風衣裳)》이 《문장(文章)》에 추천되면서 등단하였다. 같은 해 《승무(僧舞)》, 1940년 《봉황수(鳳凰愁)》를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 후,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노래한 시풍으로 기대를 모았고,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과 함께 1946년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경기여고 교사를 지내다가 고려대학교 문리과(文理科)대학 조교수로 취임하여 교수에 이르렀다.
1952년에 시집 《풀잎 단장(斷章)》, 1956년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을 간행했으나 자유당 정권 말기에는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어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에 적극 참여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조지훈의 시풍의 전환을 맞게 되었다. 그 이전의 시가 자연과 무속 등을 주제로 한 서정적인 동양적인 미를 추구하는 것이었다면, 이 시기에 발표한 시집 《역사(歷史) 앞에서》이후에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표출하였다. 《지조론(志操論)》은 이 무렵에 쓰인 것들로 민족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1962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여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 《신라가요연구논고(新羅歌謠硏究論考)》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 등의 논저를 남겼으나 그 방대한 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서울 남산에 조지훈 시비(詩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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