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7일 물날
제목 : 두부를 만들고
옹달샘 아이들과 아침나절에 두부를 만들었어요. 올해 옹달샘은 학교에서 해야 하는 기본 교과 공부에 충실하게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 가운데 손끝활동으로 어린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음식 만들기 공부를 철마다 제철 음식으로 재밌고 맛있게 만들어 보려는 계획을 하고 있어요. 그 시작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작년 하반기에도 생각하긴 했다가 이런저런 바쁜 일정 때문에 하지 못 한 걸 이번에 하게 된 것이에요. 지난주부터 두부 만들 채비를 하면서 신경 쓰이는 것이 많았는데 아이들도 좋아하고 물날마다 하는 채식의 날 반찬으로 같이 두부와 비지 부침개를 내게 돼서 점심 반찬이 풍성해서 좋았어요.
학교에서 두부를 만든 건 5년 만의 일이에요. 지금 6학년인 이석, 도윤, 채원, 지수가 1학년 때 만들었거든요. 그때는 아직 신입 선생인 처지여서 학교에서 크게 차지하는 교육과정인 일놀이 통합교육을 선배 교사에게 많이 배워야 했고 직접 겪어보는 것이 필요했어요. 텃밭 농사를 귀하게 여기는 터라 모종을 내고 거둔 것으로 음식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 경제 공부로 생산과 소비를 어린이들이 학년에 맞게 경험할 수 있게 교육과정으로 담아내야 했어요. 1학년은 뭐든지 아이들에게 처음이라 재밌게 여겨지면 좋은 경험이자 공부가 돼요. 그래서 그때는 콩의 한살이를 살펴보거나 과학 공부로 액체, 고체, 기체를 크게 다루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불린 콩을 갈아서 삼베 주머니에 넣어서 고사리손으로 주물러 콩물을 내는 재밌는 일, 콩물을 끓이다 간수를 넣어서 순두부가 만들어지는 신기한 과정을 눈으로 보는 경험, 순두부를 양념간장에 슥슥 비벼 먹는 맛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고 그걸 아이들은 좋아했다고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분위기나 모습이 어땠는지는 몇 장의 사진으로 남아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5년이라는 시간은 아이들에게는 기억할 수도 없이 휙 지나가지만 어른에게도 망각을 안겨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거든요.
아무튼 지난주부터 두부를 만들 채비하면서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5년 만에 하는 공부는 앞채비가 많고 만들 때도 손이 많이 필요했거든요. 옹달샘 아이들이 재미있는 과학 공부와 맛있는 음식 만들기 공부로만 하려면 양을 이번에 한 만큼 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렇지만 예전에 했던 경험을 떠올려 반찬으로 내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뜩이나 일이 많은데 일이 더 커지게 되었어요. 사실 제가 이끌어서 두부를 만든 것도 이제 두 번째다 보니 양을 줄이는 것도 쉽게 생각을 못한 것도 있어요. 해 본 게 있으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데 문제는 어느 정도 콩물을 끓이고 어느 양으로 간수를 넣느냐였어요. 그래서 예전에 짧게 적었던 메모를 보니 콩 2kg, 간수 160ml라고만 적혀 있어요. 이래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아 어제와 그제 이틀을 내내 ‘집에서 두부 만들기’로 검색해서 찾아봤는데 다들 넣은 양이 다르고 시간도 뚜렷하지 않으니 결국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는 아침열기 때 지금 6학년 형님들이 두부 만들기 하고 나서 쓴 글을 읽어줬고, 오늘은 <다 콩이야>라는 책을 읽어줬어요. 그림책 한 권 읽는다고 콩의 한살이가 다 눈에 들어오진 않겠지만 콩이 여러모로 다양하게 모습을 바꿔 우리에게 필요한 먹을거리로 다가온다는 걸 알게 하고 싶었거든요. 몇 년 만에 읽으니 콩할머니가 들려주는 말씨에서 우리말이 너울너울 살아나는 게 들어옵니다. 한글에서 움직씨(동사)와 그림씨(형용사)가 다양하게 살아있는 것을 읽어주며 아이들과 다음에 따로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나비같은 콩 꽃이 조롱조롱 피었어. 노랗게, 하얗게, 빨갛게 피었어’라든지, ‘이 콩대 쑥 올라서 넌출넌출 잎이 나고’ 같은 말이 이렇게 바로 눈에 들어오는데 예전에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아침열기 하고 쉬었다가 9시 30분쯤에 두부 만들기를 하는데 세 아이가 아직 오질 않았습니다. 해솔이와 소율이는 체하고 장염이 걸려서 학교를 쉰다고 연락이 왔고 시호는 조금 늦는다고 해요. 늦어서 처음부터 같이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학교에 못 와서 같이 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에는 견줄 수가 없어요. 어제 미리 콩을 불려놔서 계획한 공부를 뒤로 미룰 수도 없어서 더 크게 다가옵니다. 아이들이 아파서 같이 하려고 했던 큰 공부를 빠지게 될 때 마음이 쓰이게 되는 게 같은 경험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다른 느낌과 생각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이번 옹달샘 두부 만들기 공부에는 세 선생님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과 두부 만드는 것을 전체로 살피고 이야기를 들려준 전정일 선생님과 손이 많이 가는 공부에 기꺼이 품을 내어준 남윤우 어머니 박혜연 선생님과 시환이 어머니 황미정 선생님입니다. 모둠에서 공부할 때 모둠 선생 혼자 이끌기가 어렵다고 느껴질 때 부모 선생님을 이따금 모시는데 이번에도 큰 도움을 받았어요. 실제 두부 만들 앞채비는 모둠 선생이 다 했다고 하지만 두부 만들고 비지로 부침개 만드는 것은 두 부모 선생님 도움이 없었으면 점심때까지 다 마치지 못했을 수도 있었거든요.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면서 돈을 주고 쉽게 사는 것을 어렵고 힘들게 아이들에게 공부로 알려주고 몸으로 익히게 하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부를 만드는 것은 과정은 어렵지 않은데 손이 많이 갑니다. 불린 콩을 가는 것이며 콩물을 거르는 것, 콩물을 끓여서 알맞게 간수를 넣어 순두부를 만드는 것이 그렇습니다. 5년 전에 했던 가물가물한 기억에만 기대 만들었으면 큰일이 났겠다 싶을 정도로 정성이 많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콩물이 든 삼베 주머니를 조물조물 누르며 평소에 느끼기 쉽지 않은 촉감을 느끼는 재미를 느끼고, 콩물을 먹었을 때 비릿한 향과 맛을 바로 “맛없어요.”라는 말로 드러냅니다. 달거나 짜지 않은 맛에서 콩 본연의 향과 맛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겠지요. 콩물이 익고 두유가 돼서 설탕을 넣어서 조금씩 맛보게 하니 그제야 맛있다고 하는 것을 보니 자극스러운 맛에 입맛이 더 맞아져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콩물을 끓이는 중에 아이들은 두부를 만드는 차례에 맞게 저마다 경험하고 느낀 것을 살려 글을 씁니다. 학교에서 하는 많은 공부 갈무리로 글쓰기를 하게 되는데 싫증내지 않고 집중하고 정성을 들이는 모습을 보니 흐뭇합니다. 어떤 공부를 하든 놀이이자 일처럼, 일이면서 놀이가 되어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모습을 글에서도 보게 되니 그렇습니다. 우리 학교 처지로 보면 1학년은 외계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학교에 잘 적응하고 지내면 그게 훌륭한 교육과정이 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년이 점점 올라가면서 다양한 손끝활동과 적정기술 또는 생활기술을 경험하면서 자기다움을 기르는 게 맑은샘으로 보면 큰 교육과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질 수 있게 반복하다 보니 아이들이 갈수록 지루하고 재미없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지루함과 재미없음을 어떻게 살아있고 재미있는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새롭게 다가가게 할 지가 선생에게 놓여있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2학년, 길게는 3학년까지는 일과 놀이에 구분이 그다지 없고 더 나서서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좋아하는 게 보여요. 작년에 2학년을 맡으면서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올해 또 2학년을 맡아보니 2학년과 3학년이 맑은샘 일놀이 교육철학에 맞게 교육으로 풀어낼 수 있는 학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 듭니다. 물론 순전히 저 혼자 생각입니다.
콩물이 끓어 간수를 여러 번 뿌린 뒤에 순두부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은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것을 눈으로 보면서 아이들은 액체, 고체, 기체라는 말을 듣고 배우는 것도 있지만 순수하게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재미를 느끼기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순두부를 조금씩 덜어 먹는 즐거움은 거기에 따라오는 것이고요. 아무래도 자기들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니 맛은 더 있겠지요. 그래서 콩에서 여러 과정을 거쳐 익숙히 잘 아는 두부를 만들고 먹은 경험은 특별하게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 어렵게, 힘들게 만들고 맛본 두부는 잊히지 않는 단 하나의 맛이었으면 하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학교에서 하는 많은 공부들이 두부 만들기처럼 다 특별하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한 두부 만들기는 5년 만에 하면서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리니 헷갈리는 게 많아서 다음에 또 다시 할 때 살펴볼 기록이자 자료로 남겨두려고 글로 남겨둡니다.
이번에 두부 만들기 할 때 메주콩 2kg을 12시간쯤 불렸습니다. 불린 콩 무게는 4.8kg이 나왔고 불린 콩에 콩물을 만들 때는 정수를 세 배인 15l쯤 넣었습니다. 간수는 처음에 200ml로 생각했으나 다 쓰지 않았고 남은 걸 봤을 때 예전에 했던 160ml쯤 썼습니다. 때에 따라 덜거나 더하면 될 것 같습니다. 완성된 두부는 6모쯤 나왔습니다. 불은 중불로 끓이고 주걱으로 자주 저어야 바닥이 눌어붙지 않습니다. 점심시간을 맞춰야 해서 센 불로 하니 바닥이 눌어붙습니다. 점심 반찬으로 낼 게 아니고 모둠에서 하는 공부와 음식 만들기로 하는 것이라면 콩을 500~700g쯤 하는 게 좋겠습니다.
첫댓글 와… 선생님 글 읽으며 감탄에 감탄을…😭
우리 옹달샘 친구들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놀며 일하며 먹으며 배웠으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리고 이것은 얼마나 훌륭한 통합교육인지 생각하게 돼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다른모둠 아이들 모두 점심에 맛있는 두부부침(?)을 먹었겠어요~~
저도 난생처음 해보는 두부만들기 해보고, 앞으로 두부를 먹을때 감사함이 느껴질것 같습니다.
선생님 수업 준비와 각오들을 보니 더욱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아아 살아있는 수업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로 다 표현할수가 없네요... 😭😭
가뜩이나 일도 많으신 와중에 5년만의 두부만들기를 과감히 도전! 맑은샘학교만의 특별하고 재미난 공부를 이렇게 풀어내주시고 기록으로 남겨주시니 감사드려요👍👍
그 소중한 애쓰심이 아이들과 저희에게도 너무 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