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배 생각
안상학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니, 오늘 외박하나?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야야, 어디 가노? -예……. 바람 좀 쐬려고요.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 출처 : 『아배 생각』, 애지
● 詩 : 안상학 : 196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88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함. 시집『그대 무사한가』『안동소주』『오래된 엽서』등이 있음.
● 낭송 : 이영광- 시인. 196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1998년『문예중앙』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직선 위에서 떨다』『그늘과 사귀다』등이 있음.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시인과 아배가 밥상 둘레에 함께 앉았습니다. 바람을 쐰다며 툭하면 집을 나서던 시인은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오던 아배와 모퉁이에서 딱 마주쳤습니다. 시인의 방황을 아배는 나무라거나 말리지는 않습니다. 다소 경상도식으로 무뚝뚝할 뿐. 다정다감하지는 않지만 아배의 익살스런 말투에는 시인의 방황을 돌려세우려는 그 애틋함과 깊은 사랑이 묻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인의 곁에는 아배가 없습니다. 해서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이 시의 뒤편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울고 있는 시인이 보입니다. 그 아배의 살아생전 사투리를 우리도 다시 듣고 싶습니다. 회초리처럼 귓가에 착착 감기는 사투리 꾸중을 다시 듣고 싶습니다.
2009. 5. 18. 문학집배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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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각산의 바람과 노래 원문보기 글쓴이: 흐르는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