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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완전한 선심
인간은 선한 마음과 선하지 못한 마음, 두 가지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항상 두 가지 마음이 섞여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에는 언제나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혼재해 있다. 선악을 따지는 세계에서는 선한 것만이 가치가 있고 선하지 못한 것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선한 마음과 선하지 못한 마음을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알아차린다. 그래서 반드시 선한 마음만 가치가 있고 선하지 못한 마음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의 마음은 모두 알아차릴 대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선하지 못한 마음보다 선한 마음을 갖는 것이 좋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선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선한 마음이라고 해도 선하지 못한 마음을 배척하면 완전하게 선한 마음이 아니다. 선하지 못한 마음을 수용할 때만이 완전하게 선한 마음이 된다.
선한 마음보다 완전하게 선한 마음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일어난 모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기 때문에 새로운 원인을 일으키지 않아서 가장 완전한 마음이다.
207. 사견(邪見)과 정견(正見)
몸을 바르게 보면 단지 몸이 있다는 유신(有身)으로 안다. 그러나 몸을 잘못된 견해로 보면 이것이 나의 몸이라고 아는 유신견(有身見)이 생긴다. 몸은 있지만 나의 몸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견해가 된다. 몸은 조건에 의해 여러 가지로 결합된 물질에 불과하므로 몸에는 자아가 없다.
마음을 바르게 보면 단지 마음에 불과하다는 무아(無我)로 안다. 그러나 마음을 잘못된 견해로 보면 이것이 나의 마음이라고 아는 자아(自我)가 생긴다. 그래서 개아, 진아, 참나라는 사견(邪見)이 일어난다. 마음은 있지만 나의 마음이 아니고 단지 순간의 마음이라고 알 때 무아(無我)라는 정견(正見)이 일어난다.
내 몸, 내 마음이라고 알면 사견이고, 단지 몸과 마음이라고 알면 정견이다. 사견은 모든 괴로움과 윤회의 원인이며, 정견은 깨달음과 윤회가 끝나는 원인이다. 이러한 사견으로부터 벗어나 정견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해야 한다.
내 몸이라고 아는 한 영원히 몸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 마음이라고 아는 한 영원히 마음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수행을 통해서 내 몸과 내 마음이 아니라고 알 때 집착이 끊어져 지고의 행복을 얻는다.
208. 욕망과 집착
어떤 대상이 나타났을 때 좋은 것이라고 판단하면 반드시 그것을 좋아하고 집착한다. 이때 좋아하는 것 하나만 있지 않고 여러 가지의 마음이 뒤따라 일어난다. 첫째, 좋은 것을 보면 그것을 집착하여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또 좋은 것이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
둘째, 좋아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하거나 좋은 것이 사라지면 화를 내고, 화를 내는 것을 집착한다. 셋째, 좋아하는 것 때문에 좋지 않은 것은 배척하고, 그것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집착한다. 넷째, 이상의 것이 어리석음인데 어리석음을 모르고 계속해서 집착한다.
욕망은 좋아하는 것 하나만 집착하지 않고 화내는 것을 집착하며 다시 좋지 않은 것이 나타나지 말기를 집착한다. 이것들이 어리석음인지 모르고 같은 집착을 되풀이한다. 하나의 잘못은 항상 여러 가지의 잘못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것이 윤회하는 세계의 실상이다.
욕망이 있어서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한다. 하지만 욕망으로 이룬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다. 욕망이 있어서 생긴 실패는 괴로움이다. 욕망으로 인해 생긴 가장 큰 실패는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다.
209. 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자신의 생각은 오랫동안 살면서 생긴 축적된 성향에 의해 일어난다. 그래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많은 사람은 이러한 성향에 따라서 말을 하고, 또 관용과 자애와 지혜가 많은 사람은 이러한 성향에 따라서 말을 한다.
그러므로 말은 말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주관적인 말을 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객관적인 말을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엽적인 말을 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보편타당한 말을 한다. 이것이 말이 가지고 있는 진실이다.
남의 말을 그대로 믿는가? 남의 말은 단지 남의 말일 뿐이다. 남이 어떤 목적으로 말을 했는지 그 말의 진실성 여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가 생각해서 한 말을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므로 남의 말은 단지 남의 말로 듣는 것도 지혜다.
탐욕이 있으면 나의 이익에 눈이 멀어 남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이것이 항상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남의 말을 무조건 믿지 마라.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옳다는 믿음이 생길 때 비로소 남의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210. 질문과 답변
수행에 대한 질문을 할 때는 질문자의 역할이 있고, 답변을 할 때는 답변자의 역할이 있다. 질문자가 답변자를 설득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답변자가 질문자를 설득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각자의 입장에서 오직 있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바른 답을 얻을 수가 있다.
질문자와 답변자가 서로 상대를 설득하려고 하면 탐욕으로 말을 하는 것이라서 다툼이 있을 수 있다. 탐욕으로 말하면 학문에서는 논쟁의 요인이 있고, 수행에서는 왜곡의 요인이 있다. 질문과 답변은 해답을 얻으려는 것이지 논쟁과 왜곡을 일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탐욕으로 질문을 할 때는 옳은 답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직 자신의 잣대에 맞는 답변을 원한다. 이것은 유신견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으로 바른 질문이 아니다. 이런 질문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견해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이익이 없다.
질문자의 자세가 바를 때만이 바른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신견을 가지고 질문해서는 안 된다. 유신견은 눈과 귀를 가려서 자신의 견해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바른 말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
뿐냐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좋은 자료를 이렇게 꾸준히 오랫동안 올려주셔서 너무나 고맙고 찬탄합니다. 좋은 명상의 자료로 삼아 공부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진솔하신 두분 스님의 자상한 가르침과 열정적인 선재님을 비롯한 모든 회원님들한테서 저가 많은 것을 배웁니다.
dalma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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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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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시도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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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현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