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마태수(三馬太守)
[뜻]
세 마리의 말만 타고 오는 태수. 재물을 탐하지 않는 청백리를 이르는 말이다.
[출전]
「송흠(宋欽)이 매번 지방에 수령으로 부임할 때에 신영(新迎)하는 말이 세 필 밖에
안 되었다. 공이 타는 말이 한 필이고,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각각 한 필씩 탔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삼마태수라고 불렀다.(宋孝憲公欽. 每出宰赴任, 新迎馬只三匹.
蓋公之所乘者一馬, 而母與妻各一馬. 時人謂之三馬太守.)」(《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중종조(中宗朝)의 명신(名臣)〉》)
송흠은 조선 성종(成宗) 때인 1492년 식년과(式年科)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서
근무하던 중에 연산군(燕山君)의 폭정을 비판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중종의
반정 뒤인 1516년에 복직하여 홍문관 박사(弘文館博士),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등의
관직에 올랐으며, 담양부사(潭陽府使), 장흥부사(長興府使), 전주부윤(全州府尹), 전라도 관찰사(觀察使) 등 지방의 외직을 오랜 기간 역임하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지방관이 사용할 수 있는 역마(驛馬)의 수를 관직에 따라 법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부사의 경우에는 짐을 운반하는 태마(駄馬) 1필을 포함하여 3필의 말을 쓸 수 있고, 수행하는 사람을 위해 4필의 말을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지방관은 7∼8필 이상의 말을 타고 떠들썩하게 부임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송흠은 늘 세 필의 말만 사용하여 검소하게 행차했으며, 짐도 단출하였다. 이로써 그는 재물을 탐하지 않는 청렴한 관리로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삼마태수’라고 불렸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삼마태수’는 청백리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 성어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된다.
[용례]
우리나라의 공직자들이 모두 ‘삼마태수’가 된다면, 아마 우리나라의 역사뿐 아니라 세계의 역사까지도 바뀔 것이다.
[글]
김성일
김성일(金聖日)은 문학박사. 전라북도 도청에서 국제정책전문위원으로서 중국과의 국제교류 업무를 담당하는 한편, 단국대학교, 전남대학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백석대학교 등에서 중국어문학을 가르쳤다..펼쳐보기
[출처]
고사성어대사전 | 김성일 | 시대의창 전체항목
선인의 경험이 깃들어 있고, 지혜와 지식의 보고인 고사성어. 우리 생활과 밀접한 일상의 언어이기도 하다. 고사성어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배경을 철저한 조사와 고..펼쳐보기
첫댓글 감사 합니다 샬롬 !!
즐거운 불금 맛과 멋 향기로 알차게 보네시고...
항상 건강 하시고 편안 하시며 늘 웃는 시간 행복 하세요~
설흘산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