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사형집행 요구한 형
총기난사 끝에 자살한 아들
가해자 가족이 파헤친 진실은 …
우선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글이, 어떤 종류든 범죄 혹은 범죄자를 옹호하는 글을 옹호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전제는, 오늘 소개할 책들이 범죄자를 옹호하거나 이해하자고 설득하기 위해 쓰인 글들이 아니라는 것. 글머리에서 이렇게 방어적인 이유는 이제 이야기할 책들이 범죄자의 가족들이 쓴 책이기 때문이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전자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형수의 동생이, 후자는 가장 유명한 학교 총기난사 사건 범인의 엄마가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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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이래 생의 절반을 형은 감옥 담장 안에서 보냈다. 급기야 1976년 가석방 상태에서 두 명을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오른쪽 책 ☞)라며 스스로에 대한 사형집행을 요구해 미국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사형으로 10년간 중지됐던 사형 집행 기록은 깨지게 된다. 형의 이름은 개리 길모어. 나는 그의 동생 마이클 길모어. ‘롤링스톤스’ 편집장을 지낸 대중음악 평론가이기도 하다. 사형수의 동생이라는 딱지를 달고 살아야 했던 ‘나’는 묻는다. “언제, 어떻게 해서 그 죄의 씨앗이 시작된 것일까? (중략) 이 모든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한 원인이 되는 시점을 내가 찾아낼 수 있을까? 만일 찾는다면, 그것은 개리의 삶 속에 있는 것이었을까?
혹, 그것은 개리의 삶 밖에,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버지의 비밀스럽고 어두웠던 삶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일까?” 책은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을 추적해가는 고통스러운 가족사이다. 그 중심에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학대가 있지만 그 과정에 개척시대 종교(모르몬교)의 역사, 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한 타락과 폭력, 전통적 가부장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한 사건, 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복합적인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고백했다. “이 책을 한 번 읽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혹은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아들을 ‘햇살’이라고 불렀다. 아들은 화목한 중산층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독립적이고 원만한 성격에,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원하던 대학에도 합격했고, 불과 사흘 전엔 졸업파티에도 다녀왔다. 그런데 그 아들이 13명을 죽인 총기난사 사건의 살인범이 됐다. 그리고 스스로를 향해서도 방아쇠를 당겼다. 장애 학생을 위한 일을 하며 육아와 교육에도 전문가였던 ‘나’는 하루아침에 ‘괴물을 키운 엄마’가 됐다. ‘햇살’ 같던 내 아들이 대체 왜? 그리고 엄마인 내가 어떻게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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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1999년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아들이 우울증에 고통받아 왔으며, 총기난사는 ‘자살’을 위한 범행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아들을 변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시종일관 진실 그 자체에 다가서려고 하는, 그리고 그런 끔찍한 일을 막고자 하는 진솔한 마음이 이 책에 이상한 감동과 숭고함마저 부여한다. 그것은 한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와 마주한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할 때 그 모습이 주는 감동과 숭고함이다.
이런 이상한 독서체험은 처음이었다. 가해자 가족들의 이야기에 압도돼 빨려들어 가면서도 버거운 진실 앞에 자주 책을 놓게 되는 경험. 대체 인간이란 뭘까. 그 심연 앞에 쭈그리고 앉아 막막해지는 기분. 이렇게 많은 질문을 하며 읽은 책들도 없는 것 같다. ‘나쁜 피’나 ‘악’은 존재하는가. ‘병’과 ‘악’의 상관관계를 말할 수 있는가. 우연의 고리들이 이어져 어떤 운명을 결정지었다면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앎’을 위한, ‘삶’을 향한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다만 한 가지 분명해지는 것은 있다. 진실은,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는 것.
허은실 시인
☜ 내 심장을 향해 쏴라(마이클 길모어, 박하)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반비)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 2016. 9. 26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