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뮤직의 후예들
선성원 저 8군쇼에서 랩까지
이책은 근 1세기의 가요사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가요 전문지조차 없는
우리나라 가요계의 실정을 감안 하여
'한국 가요사'를
컬럼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팝문화권에 접어 들면서
다양해진 음악장르
-포크, 락, 발라드, 소울, 블루스,
재즈, 댄스뮤직, 레게, 랩- 등의
국내유입 생성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대중음악이 싹튼 배경등
장르별로 알기쉽게 소개하였기에
올려봄니다.
저자소개 -선성원-
1965년부터 음악감상실 '뉴월드' 등 다운타운에서 디스크자키로 활동했다. 1971년부터는 음악잡지 가요생활, 월간팝송, 뮤직라이프, 「디오와 레코드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1983년에 프리랜서로 나서 KBS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비롯하여 KBS-FM '팝스퍼레이드', '2시의 데이트', '김세원의 가정음악실', '오미희의 인기가요', '영화음악시', SBS 라디오 '임국희의 달빛노래' 등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서 방송작가 및 음악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1988년부터는 동아기획 이사, 희지레코드 전무를 맡아 음반 제작 일에도 관여했으며, 1996년부터 방송장비 용역업체 선뮤직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 2002년에는 인터넷 음악정보 사이트 '선성원의 선뮤직'을 개설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8군쇼에서 랩까지, 대중음악의 뿌리, 세계영화명작, 시네마 천국, 일본음악이 보인다, 록에서 인디음악으로, 한국대중문화 101 장면 등이 있다. |
한국전쟁 참전
미군을 위문하기 위한
'미8군쇼'단체가 처음 생긴 것은
1953년이었다.
처음에는 재즈류의 음악이
주종을 이뤘으나
미군 특히 백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무대는
역시 컨트리쇼였다.
사실 우리에게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시대를 초월하여
인기를 얻었던 팝송도
거의 컨트리뮤직이었다.
예를 들면
쟈니허튼의
'All for the Love of a Girl'
짐리브스의 ' He'll Have to Go'
스키터 데이비스의
'The End of the World'
클라우드킹의
'Wolverton Mountain'
수 탐슨의
'Sad Movie'
돈깁슨의 'Sae of Heartbreak'
레이찰스의
'I Can Stop Loving You' 등이
모두 컨트리 곡들이다.
컨트리뮤직이란
'County & Western'을
총칭한 것으로서
'미국 백인들의 민속음악'이라는
표현이 타당하겠다.
미국의 남동부지역의 민속 음악이 내시빌과 루이지애나 그리고 북쪽 으로는신시내티 등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처음에 힐빌리'Hillibilly'라고 부르다가 2차대전 무렵 힐빌리가 저속하다 하여
컨트리 앤 웨스턴으로 바뀌었고 1970년대에 이르러 단순히 컨트리로 약해서 부르고 있다.
1925년 내시빌에서 설립된 그랜드 올 오프리 'Grand Ole Opry'무대가 펼쳐지면서 급속히 발전
컨트리 팝, 컨트리 록,등으로 세분돼 지금에 이르고 있는 백인 음악이 곧 컨트리로서
현재 흑인음악인 블랙 뮤직과 쌍벽을 이루는 장르로
카터나 레이건 전 대통령은 지독한 컨트리광으로 소문나 있다.
이같은 국내적 분위기로 ' I Went To Your Wedding'의 패티페이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인기있는 가수 였었는데 대개의 컨트리송은 서정적인멜로디에 노랫말이
슬픔,눈물,이별이 주류를 이루어 한이 몸에밴 우리민족의 기호에
썩잘어울리는 것으로서 가요에도 영향을 끼쳤다.
가요에서 최초의 컨트리음악은 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1955년 일듯
제목부터 컨트리냄새를 풍겨 새 영역이 전개되더니 뒤이어
한명숙의 '노란사쓰의 사나이'1961년,위키리의 '저녁한때 목장풍경'(표절로금지) 에서는
창법과 바이올린 피들 주법마저 완전히 컨트리 스타일 이었다.
한편 미8군 쇼에서는 1964년 웨스턴 쥬빌리라는 컨트리쇼 단체가 생겼는데
MBC팝스 오케스트라 수석 바이올린 주자인 김동석이 이끄는 패키지쇼 단체로
그의 단골 레파터리는'오렌지 향기 날리는 특급열차 Orange Blossom Special'로 유명 했다.
어린이 프로나 코믹한노랠 우리에게 친근한 서수남도 웨스턴 주빌리에서 리드싱어였다.
서수남의 이야기를 빌리면 그때 무대에서 좋은 반을을 얻기위해 컨트리 뮤직중에서도
코믹한 노래를 많이 부른것이 오늘에와서
'팔도유람,등의 히트곡을 갖게 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서수남은 그후 일반무대(당시는 미8군 쇼와 구별해서 가요계를 그렇게 불렀음) 에 진출하여
원로가수 현인의 딸인 현혜정과 컨트리듀엣을 조직 컨트리뮤직 보급에 가장 힘썼던 인물이다.
서수남은 그후 다시코끼리 브라더스와 웨스턴 쥬빌리에 있던 하청일과 컴비를 이루어
듀엣활동을 펴 '팔도유람'으로 컨트리의 토착화를 꽤했다.
1960년대말 웨스턴 주빌리는 그랜드 올 오프리로 명칭을 바꿔 오늘에 이르기 까지
미8군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동안 많은 가수들을 배출해 냈다.
1960년대 말에는 그랜드 올 오프리의 멤버로 있던 김혜숙이 컨트리 요들송을 갖고 등장
카우보이 차림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 일품이었으며 '날개'라는 노래로
크게 각광을 받았던 허영란도 여기 출신이다.
1970년대 이후는 스위스에서 요들을 유학하고 돌아온 김홍철의 음악이
힐빌리와 유사한것도 유의 해야할 점이며
'고아'의 오세은은 기타를 통한 블루그래스 연주주법을 개척 했고
현재 팝 해설가로 활동중인 이양일 이 컨트리 그린 이란 그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 들어 서면서 우리나라 컨트리 음악의 분수령을 긋는 2가지일이 일어났다.
그하나는 1981년 이정명 이라는 젊은 아티스트의 곡이 컨트리음악의 심장부인 내시빌의 송 컨테스트
(MCF)에서 자신이 만든 노래 '심슨부인의 늦바람'Simpson's Late Love'로 입상해
한국인으로서 처음 최초로 컨트리 국제무대에서 진출하는 기회를 얻었으며
그는 현재 내시빌국제 작곡가 협회(NSAI)의 평생 회원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작곡가 방기남이 1982년 컨트리 뮤직 어소시에이이션(CMA)의 정회원이 됐는데
이들은 지금껏미국에서 건너오는 음악만을 수용 하던 우리 음악계에서 과감히 탈피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능동적으로 대처할수있는 자긍심을 심
어준 것이다.
이 외에도 컨트리를 표방한 가수로 서유석의 '철날때도 됐지'는 멀해가드의 곡을 번안 한 것이고
이장희는 행크윌리암스를 장계현은 케니로저스의 스타일을 따른 것이다.
이외에도 이필원 ,둘다섯,하야로비,한마음, 논두렁 밭두렁,'기타한잎'의 이재성,
영국에서 귀국한'내가본 마지막 그녀'의 김목경 등이 심심찮게 있다.
이처럼 컨트리는 우리취향에 맞는 탓인지 가요계에 상당한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옛날만큼 컨틀음악이 주목되진 못하고 있다.
이것은 컨트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이장르가 변신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우리가요의 폭이다양하게 넓어진 이유도 있다.
여기에다 생활소득의 향상으로 오는 국민의 사고가 진취적으로 바뀌어
더 이상 애상조의 컨트리를 기피하는 선호도 무시못할 일이다.
그렇지만 취향이 비슷한 트롯과 복합된 새로운 컨트리를
잉태하는 작업의 시도도 연구해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