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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9: 16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 요 19: 17 십자가를 지시고
요 19: 16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주니라. )
빌라도는, 자기로서 책임지지 않기를 원하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주고야 말았다. 그러므로 그에게 책임이 있다. 그것은 그가 판결했기 때문이다.
1]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의 태도가 어정쩡하다. 그러나 결국은 유대인들의 요구에 굴복하였다. 총독 빌라도는 마침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유대인들의 선동에 굴복하여 로마법에 어긋나고 이성에 어긋나고 양심에 어긋나게 재판관의 지위를 사용하였다.
"넘겨주니라"의 (paradivdwmi 파라디도미)는 "넘겨주다, 포기하다, 위임하다"의 뜻으로 빌라도의 재판은 스스로 판결하지 못하고 "넘겨준" 것으로 판결이 종결되었다.
하지만 형 집행 과정에서 로마의 군대가 실행했다. (요 19: 23)
"넘겨준"것은 그들의 의도대로 십자가형을 판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요한은 마 27: 24에서 기록한 자신의 손을 씻음으로 그 책임을 유대인에게 돌리는 내용을 생략했다.
* 마 27: 24 -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 예수를 넘겨 준 빌라도 (요 19: 1-16)
빌라도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예수를 자기 힘으로 건져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하는 소리가 빌라도의 법정 안에 함성처럼 메아리쳤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라” 군중들의 이 같은 소리가 빌라도의 귀를 따갑게 하여, 자신이 가이사의 반역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부득불 이 피고를 그들의 손에 넘겨줄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고 했다.
(1) 빌라도의 석방 노력
빌라도에게는 사태를 파악하는 눈이 있었다. 예수가 이처럼 재판 자리까지 이르게 된 것은 죄로 인함이 아니요, 그들의 종교적인 시기심 때문임을 알았다. 빌라도는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토록 끈질긴 고소에도 여전히 예수의 무죄를 주장했다.
① 빌라도가 생각해 낸 한 가지 지혜는 예수를 고문한 후에 군중들의 동정을 얻고자 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고(1절) 했다. 채찍질은 죄인들에게 가하는 무서운 고문 방법의 하나였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한 것은 이 같은 고문으로 예수의 모습을 사람들이 보기에 처참하게 만들어 그들이 동정심으로 마음을 돌이키게 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빌라도가 모진 채찍의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예수를 그들 앞에 데리고 나와서 그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며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라고(4절) 다시 무죄를 선언하였다.
이때 예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신 모양은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셨다”라고(5절) 했다. 주님의 이런 모습은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희롱했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피고에게 채찍질의 고문을 지시하고는 안에 들어갔다. 이에 군병들은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웠다”라고(2절) 했다.
가시와 엉겅퀴는 인류의 죄 때문에 번식된 저주의 식물이다.
* 창 3: 18 -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예수님은 이처럼 죄와 저주로 말미암은 가시관으로 왕의 면류관을 대신했다. 로마 군병들은 이 낯선 청년의 몸에 자색 옷을 입힘으로 왕의 우스운 모양을 꾸며 희롱했다. 그리고 그들은 손바닥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때리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3절) 그 앞에서 희롱했다.
빌라도는 처참한 모습으로 군중들 앞에 선 피고를 가리키면서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고(5절) 지적했다. 이로써 빌라도는 예수의 유죄 여부를 엄밀히 취조했다는 사실상의 증거를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응은 그가 기대와 반대였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6절) 이들은 마치 먹이를 본 사자가 사정없이 물어뜯기 위하여 달려드는 자세로 아우성쳤다.
② 예수님의 죄
유대인들의 내세운 예수님의 죄는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라”고(7절) 했다. 이제는 그들이 증거한 여러 가지 죄는 수용이 될 수 없었다.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실로 유대인에 의해서도 아무런 죄를 찾아내지 못했으며 빌라도의 재판에서도 무죄가 증명되었다. 이제 유대인들이 내 세우는 죄는 “그가 자기를 하나님이 아들이라 함이니이라”고(7절) 한 바로 한가지 죄임이 분명히 밝혀졌다.
(2) 예수를 넘겨준 빌라도
빌라도는 무리들의 고함 속에서 “그가 자기를 하나님이 아들이라 함이니이라”고 하는 죄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는 이유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더욱 두려워했다. 정말 이 청년이 신의 아들일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이방인들도 신의 아들에 관하여 알고 있었으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제 빌라도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노골적인 협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을 놓으면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12절)
이처럼 빌라도를 협박한 무리들의 공격은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가이사란 그 당시 로마 황제인 디베료를 가리킨 말이다. 만약에 이 무리들이 이 사건으로 황제에게 탄원을 하거나 혹 고소를 제기한다면 빌라도는 엉뚱한 피해자가 될는지 모르는 일이다. 때에 따라서는 총독의 자리를 박탈당할는지도 모른다. 빌라도는 이쯤에서 자신이 손을 떼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빌라도는 드디어 분개한 듯한 말투로 “보라. 너희 왕이로다”고(14절) 말하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고(16절) 했다. 빌라도는 자신의 명예와 권세를 빼앗길 두려움 때문에 양심과, 나타난 사실을 외면한 판결을 했다.
그는 역사에 씻지 못할 무서운 죄를 범했다. 그러나 그의 죄는 유대인의 죄에 비하여 가벼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고(11절) 하셨다. 빌라도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판결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해도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으나 고난을 겪으셨다.
그는 채찍질을 당하셨고 가시관을 씌우셨고 조롱과 매 맞음과 학대당하셨다.
총독 빌라도는 그가 죄가 없음을 알았으나, 그런 고난을 겪도록 방치하였다.
예수께서는 잘못한 것이 없이 고난을 겪는 모든 성도의 본이 되셨다.
둘째,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서 고난을 겪으셨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되었다. 그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찔림과 상함을 당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 사 53: 5-6 –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다.
* 요 1: 29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 벧전 2: 24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의 대속이 되었다.
셋째, 예수께서는 잘못된 판결을 받으셨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그의 무죄함을 여러 번 거듭하여 증언하였다. 그는 심지어 그를 놓으려고 힘썼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고 군중을 성공적으로 선동하였다. 빌라도는 마침내 로마법에 어긋하고 이성에 어긋나고 양심에 어긋나게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되도록 내어주었다. 이것이 죄악된 세상의 현실이다.
* 행 8: 33 -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이것이 우리 주님 예수께서 가신 길이며 또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2. 못 박히시다 ( 19: 17 – 27 )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 19: 17 십자가를 지시고 -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
이 부분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을 말한다.
1]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누가복음에 있는 대로, 예루살렘의 여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려고 나아가시는 예수님을 뒤따르면서 운 것은, 예수님의 괴로움을 위로하는 효과를 못 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불행한 자로 알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행한 자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마른 나무(자기 죄로 인하여 망할 수 밖에 없는 악인)가 아니었고 "푸는 나무"였다. 그는, 생명나무 곧, 의로우신 중보자(中保者) 되시는 주님이시다.
* 눅 23: 28, 31 –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로마의 십자가 처형방식으로 예수께서 직접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힘겨워하는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것을 전하는 공관복음의 기사로 볼 때도 정확하다.
* 마 27: 32 –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 막 15: 21 –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 눅 23: 26 -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는 모습은 창 22: 1-6의 속죄제에 사용될 나무를 지고 가는 이삭의 제사를 연상케 한다.
* 창 22: 1-6 –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유대 지도자들은 빌라도로부터 예수를 넘겨받았다. 예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라는 곳으로 나오셨다. 다른 복음서들에 보면, 군병들은 구레네인 시몬을 잡아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워 그와 같이 가게 하였다.
* 마 27: 32 –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 막 15: 21 –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고 시몬은 그의 뒤에서 십자가를 같이 졌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체력으로 혼자서 무거운 십자가 나무 형틀을 지실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십자가를 지시고 사형장으로 나가셨다.
2]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 kranivon 크라니온) "두개골, 갈보리, 해골" 히브리 발음으로는 Golgoqa(골고다)라고 부르는 이 산의 모양이 해골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에 붙여진 이름인지 아니면 이곳에 해골이 많이 굴러다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해골이라 하는 곳"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었는데, 두드러진 언덕이었으며, 큰 길가에 있어서 행인들이 익히 보며 지나던 곳이다.
이곳은 지형으로 보아 예수님의 죽으실 장소로서 적합하였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온 천하에 공포되어야 할 속죄의 죽음이었다. 이 죽음은, 높은 데서 전파되어야 하겠고, 큰 길 가에서 선포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것은 은밀히 감추일 것이 아니었고 얼마든지 드러내어 선포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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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세요. 샬롬.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잠 7:1).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긍정적인 사람의 얼굴에서는 항상 미소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좋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