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덫
崔 秉 昌
어느 순간 길이 되기 시작했다
침침했던 한낱 우려와 걱정이
깃털보다 가벼워지고
조금 전의 일이나 어제의 말들은
잠깐사이 과거형이 되어버린다
맨손으로 흘려보낸 시간들은
어느새 강물이 되어 출렁거리고
길을 따라 막지 못한 틈새사이로
슬며시 순백의 얼굴을 내려놓는다
보이지도 않는
제 얼굴을 감추려는 저의는 무엇일까
그 강물 속에
발이라도 담가보려 했지만
안개 살은 발을 적실 틈을 주지 않았고
떨어지는 꽃잎처럼
깃털 속으로 날아가 버린다
가지 않은 만큼 오지도 말라며
몸속으로 뿌리를 내리는 일
길을 따라
막아서지 말라는 무언의 암시였으니
세상에 의미 없는
만남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늦은 밤을 드리우며 여기까지 왔건만
앞뒤 구분 없이 촉각을 곤두세워도
몸 둘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한 번도 강요하지 않은 길은
길이 열린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분주히 몸을 움직여본다
깊숙이 넣어둔 그림자가
한 발짝씩 시선을 내밀면서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으로 말문을 가로막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물안개 속
하염없는 편지 한 장으로
없는 날개를 다듬으며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어 본다
뿌리의 어금니는 항상 새파랗지 않기에
잇몸을 드러내지 않고도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새로운 길을 쓰고 또 써 본다
안개 같은
당신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 2021.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