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연구 :서하 도자기—중국 도자기사에서 잊혀진 색채!
艺乙:西夏瓷器——中国瓷器史上被遗忘的色彩!
출처: 백가호 작성자: 예을 艺乙 소스: 동북아문물감정연구원
▲ 요북송 서하시대 지도 서기 1038년 서하입국 유목민족으로서 정권을 수립한 중국사회에 많은 선례가 있고, 바로 그 정권의 민족성 때문에 입국건설과 정권발전을 할 때 자신의 건전한 제도 수립을 돕기 위해 한족지역의 문화적 특성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서하의 행정제도, 서하의 문자창제, 서하의 도자기 제작은 모두 분명히 한족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풍격을 갖춘 민족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서하의 도자기를 중점적으로 연구합니다.
▲ 흑수성의 서하 도자기의 발생 연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 서하 도자기의 파생과 추론에 관한 중국의 연구 발굴은 서하 도자기의 느린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라 갑작스런 도약의 질적 변화이기 때문에 서하 도자기의 외부적 증거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 중국 도자기 역사에는 서하 도자기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후에야 서하 도자기의 가장 큰 종류를 새로운 버전의 중국 도자기 역사로 다시 추가했습니다.
이는 서하 도자기의 중국 도자기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입니다.서하문화의 발견은 중국인이 아니었고, 지난 세기 초반 러시아의 탐험가 코즐로프가 내몽골을 탐험하던 중 흑수성을 발견했고, 버려진 불탑에서 수만 권의 서하 불경과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서하문명의 한 단초가 열리면서 서하문화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서하의 도자기는 이 물결 속에서 다소 쓸쓸한 모습을 보였는데, 존세기물이 적고 중원지방에서 비교적 정교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하의 도자기는 거친 이미지로 인식되어 주목받는 사람도 적었습니다.
▲ 흑유삽각화편호 사실 서하의 도자기 출토 장소는 주로 고대 서하 정권 경내의 몇 곳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중 영무시 경내의 영무의 회민항요구, 하란산삽기구요구, 은천자항정요구 등 몇 가지 주요 장소입니다.
그 중 하란산삽기구는 서하에 속하는 황실의 어요구입니다. 주요 도자기인 사백자를 굽습니다. 서하의 도자기의 주요 색수는 백자이고, 그 다음으로 흑자, 갈유색, 청유, 강황유 등의 출토 기물 중 가장 많은 민족적 특색이 있는 것은 서편호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바로 서양의 도자기
▲ 백유찰각화대항아리 중 서하자기에는 다른 지역의 도자기 종류와 다른 점이 있는데, 그 문양의 장식은 유약을 칠한 후 칼로 문양 부분을 걷어차거나 문양이 없는 부분을 발라내어 태저를 드러내 문양과 태체를 대비시키고, 기물의 입가부위나 바닥에 유약을 칠하지 않는 특징이 있어 가마에 들어갈 때 기물이 눌어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 흑유찰각화편호
▲ 흑유찰각화경병(黑瓶 同时刻花經花)과 함께 서하도자기는 초원의 민족적 생활습관을 적용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릇과 접시 같은 용구를 고족(高足)의 기구로 만들어 초원에서 사용할 때 그릇이 풀숲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였고, 또한 편호는 서하의 물이 담긴 가죽주머니에서 변형된 것으로 서하민족만의 독특한 민족지혜를 구현하였습니다.
▲ 흑유현문각자소병
▲ 고족사발 서하도자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무늬를 도려내고 무늬의 종류와 양식도 제각각인 동시에 도자기에 서하문을 새긴다는 점인데, 서하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자작문자는 서하입국창립 이후 전국에 급속히 퍼져나갔고, 서하가 멸망한 서하문자도 서하의 역사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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