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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양성 평등 세상이 실현될 수 있을까?
수천 년 동안 공고히 다져진 ‘남성성’의 실체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남자다운 남자’, ‘진정한 남성’의 프레임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성격과 형태가 변화했다. 전쟁이 빈번하던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는 두려움 없이 전장을 누비는 용감한 영웅을 찬양했다.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이 널리 확산된 중세에는 욕망을 억제하고 정결을 지키는 성직자야말로 일반적인 남성을 초월한 ‘진정한 남성’이라는 이론이 확립되었다. 이후 박학다식한 르네상스 시대의 ‘팔방미인’, 정치·사상·학문 지식에 더해 공손한 ‘예의’를 갖춘 계몽주의 시대의 ‘젠틀맨(신사)’, 강인한 근육질 몸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 포화가 쏟아지는 전장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는 세계대전 참전 ‘병사’ 등 각 시대는 ‘이상적인 남성성’을 설정해놓고 그것을 남성에게 주입해왔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는 서구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시대와 사회가 어떻게 ‘이상적인 남성성’의 프레임 안에서 남성을 규격화했는지 펼쳐 보인다. ‘이상적인 남성성’은 결국 ‘위험한 남성성’, ‘해로운 남성성’이라는 이면의 모습으로 분출되었다. ‘위험한 남성성’의 피해자는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다시 말해 우리 모두다. 양성 평등 세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해방되어야 한다. 아주 오랜 옛날에 형성되어 현재까지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젠더 이미지를 찬찬히 짚어보는 것은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 저자 소개
루성옌
대만사범대학 역사학과 조교수. 영국 에든버러대학 역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런던대학 고등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 막스 플랑크 유럽법률사 연구센터와 대만중앙연구원 법률학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웹진 ‘환일선(換日線)’, ‘이야기(Story)’ 등에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 목차
추천사 1 늘 가까이에 두고 볼 만한 남성성의 역사 5
추천사 2 이런 남성성, 위험하다!? 11
서문 20
프롤로그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25
기원전 30세기 ~ 기원전 1세기 폴리스 정치와 영웅주의: 고대 그리스 남성 35
기원전 9세기 ~ 기원전 1세기 동성애: 고대 그리스·로마의 스승-제자 관계 55
기원전 2세기 ~ 5세기 비르투스: 로마인의 전유물인 미덕 73
8세기 ~ 11세기 바이킹 전사: 세계 종말 전쟁을 위해 살다 91
6세기 ~ 13세기 성이 없는 남성성: 중세 성직자의 ‘진정한 남성’ 이론 10 9
8세기 ~ 16세기 아버지를 살해하거나 극복하거나: 중세 부자 관계 12 3
12세기 ~ 16세기 백마 탄 왕자 양성기: 중세 기사 13 9
12세기 ~ 16세기 성기능 장애로 인한 고민: 법정에 선 중세 남자 157
14세기 ~ 17세기 팔방미인: 르네상스와 이상적인 남성 이미지 175
17세기 ~ 19세기 신사 클럽: 예의 바른 남성 19 5
18세기 ~ 20세기 남성이 곧 기계: 산업혁명 이후 노동계급 2 11
19세기 ~ 20세기 제국주의와 남성성 227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과 남성: 남성의 연약함을 재조명하다 2 41
20세기 ~ 21세기 여권 신장과 남성의 위기 257
에필로그 위험한 남성성 275
감사의 말 282
📖 책 속으로
영국 철학자 앤절라 홉스Angela Hobbs는 고대 그리스의 남성성을 ‘전장에서의 탁월함Excellence in Battlefield’이라고 요약했다. 남자라면 반드시 무예가 뛰어나야 했고, 또한 그 무예를 전쟁터에서 발휘해 나라를 지켜야 했다. 이런 관점이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의 인물 설정에 분명히 반영되어 있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장군이자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이며,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섬의 영주이자 하늘 신 제우스의 후손이다. 오디세우스는 무예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전술적 능력도 훌륭한 장군이었다. 말하자면 어떤 전쟁에서도 진 적이 없었다. 만약 아킬레우스나 오디세우스가 없었다면 트로이 전쟁의 결과는 아마도 다르게 쓰였을 것이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함락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호메로스의 두 걸작을 관통하는 주제는 개인적 영웅주의다. 독자들은 고대 그리스에서 개인의 영예와 영웅주의가 숭배되었음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다.
---p.39
용기는 남성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개념 중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이다. 용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용기는 남자를 더욱 남자답게 해주지만 만용은 집단의 이익을 해친다. 바르바라 그라치오시와 요하네스 하우볼트가 분석한 것처럼, 호메로스 서사시에는 지나친 남성성을 은연중에 비판하는 장면이 적잖이 등장한다. 개인의 영예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영웅은 종종 집단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독불장군처럼 행동했다. 가족의 눈물 어린 호소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헥토르는 가족이 만류하는 데도 아킬레우스와 맞섰다가 결국 전사했다.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헥토르가 자신의 혈기 탓에 죽음에 이르렀다고 탄식했다.
---p.53
공화정 시기 로마는 징병제를 운영했기에 남성은 성인이 되면 의무적으로 군인이 되었다. 한편 전쟁을 통해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고 지배권을 확장해 나감에 따라 무력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로마 사회를 장악했다. 로마 남성은 어릴 때부터 각종 무기 다루는 법을 배웠다. 현전하는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적잖은 로마 남성 시민의 무덤에서 투구와 갑옷이 출토되었다. 이들 투구와 갑옷은 국가가 배급한 것이 아니라 각자 준비한 것이다. 말하자면 로마 남성은 ‘시민 전사’로, 언제든지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로마제국 시대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많은 학자들은 로마제국 중후반부터 이민족 용병을 고용한 것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로마제국의 멸망을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p.82
매슈 로비는 젊은 남성이 경험 부족으로 성행위에서 수동적이거나 배움이 필요할 때 트롤 여자라는 인간이 아닌 존재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남성의 존엄과 남성성을 덜 해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트롤 여자는 현실세계에 없는 초자연적 존재다. 그러니 트롤 여자가 ‘주도적 역할’을 맡았더라도 주인공의 남성성을 특별히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사가 속 트롤 여자는 성적으로 성숙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숙했다. 트롤 여자는 전부 마음이 대단히 관대한 것으로 표현된다. 남자 주인공이 신분 높은 인간 여자와 결혼하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인공의 운명이기 때문이다.15 이런 분석은 수많은 신화와 전설에서 여성이 신神이 변신한 괴수나 동물과 성행위를 하고 신의 아들을 낳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왜 남성 신은 동물로 변해야 했을까?
---p.107
많은 여성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이상적인 조건으로 ‘기사도’를 꼽는다. 대만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에서 기사도를 발휘하는 남자 주인공을 자주 만난다. 여자 주인공이 넘어지려고 하면 운동신경이 뛰어난 남자 주인공이 바람처럼 달려와 붙잡아준다(현실에서라면 여자가 그대로 넘어지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혹은 여자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남자 주인공이 멋지고 용감한 자태로 등장해서 여자를 구출한다(현실에서라면 여자가 알아서 스스로 자리를 피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기사도는 ‘여성에게 잘 대해준다’, ‘여성의 위기를 해결해준다’는 특징을 지닌다. 다시 말해 여성을 소중히 여기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헌신하는 것이다. 이처럼 남성이 여성의 위기를 대신 해결 해줄 때, 영어권에서는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knight in shinning armour’ 혹은 ‘곤경에 빠진 미녀damsel in distress’가 등장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는 대체로 도움이 필요한 여자 주인공이 자신을 구해준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겨울 왕국〉 이전 까지는 그랬다). 그의 신분과 상관없이, 최종적으로 그는 ‘기사도’를 지닌 남성이 된다.
---p.142~143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내내 자제력이 부족하고 개인적 명예만 추구하는 남성을 비판해오던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지나친 남성성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치명적 수준으로 커졌을 때 과도한 남성성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남성은 용감해야 하지만 전체 국면을 고려할 줄 알아야 했다. 이 시기에 중요하게 대두된 예의 바름이라는 큰 틀은 자제력에 계급의 색채를 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신사라면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신사와 다른 하층계급 남성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자제력이야말로 신사를 더욱 남자답게 해주는 것이다.
---p.188
이 사건은 취하도록 술을 마시는 일이 흔했던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러한 분위기는 오늘날 영국도 마찬가지다). 클라크가 설명하기를, 노동계급 남성은 습관적으로 술을 마심으로써 서로의 우정을 증명하려 했다. 알코올은 남성 간 우정의 윤활유였다. 평소 일하는 시간에는 긴장하고 어색한 상태였다가 퇴근 후 술을 한잔 마시면서 남성 노동자들은 서로 끈끈한 유대감을 나눴다. 남성이 술집에서 우정을 나누는 것은 일종의 ‘의식’과 같았다. 이 계급에 들어온 남성이라면 누구나 술집에서 술을 마셔야 했다. 그들은 술을 마시면서 정치부터 철학에 이르기까지 무슨 이야기든 다 했다(신사계급처럼 정통하지는 못할지라도). 고용주를 향한 험담도 빠지지 않았다. 클라크는 이 시기 남성 노동자들을 돈독하게 만든 우정은 공통의 적이 존재하는 데 기반했다고 본다.
---p.216
사실상 제국주의와 계급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국 변호사이며 정치인, 작가이던 토머스 휴스Thomas Hughes가 1857년에 쓴 소설 『톰 브라운의 학창시절Tom Brown’s School Days』에서는 브라운 집안사람들이 전투에 능하다고 묘사한다. 그들의 선조는 혁혁한 공을 세운 군인이었고 영국과 프랑스가 맞붙은 백년전쟁부터 나폴레옹과의 전쟁까지 전쟁터에서 생사를 넘나들던 집안이라고 말이다. 전투란 이미 브라운 집안사람들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특질이었다. 그래서 브라운 집안 자손은 대영제국 식민지로 흩어져서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관련 주제를 연구한 영국 역사가 존 토시John Tosh는 『톰 브라운의 학창시절』이 계급의식으로 가득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또한 등장인물은 토지를 기반으로 집안을 일으킨 옛 영국 귀족은 운명적으로 ‘통치자’가 되도록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고 지적했다.
---p.234
이런 미덕은 인간 본성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세계대전 기간에 각국 군대에서는 탈영병이 많이 나왔다. 전쟁 공포를 극복하지 못해 도망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었다. 1914년부터 1920년 사이에 병사 3천 명이 군 복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탈영했다가 군법에 따라 처벌받았다. 탈영병 중에는 포탄 때문에 쇼크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영국의 탈영 사건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바로 토머스 하이게이트Thomas Highgate의 사례다. 그는 군법정에서 탈영죄를 처음 선고받은 사람이다. 그는 첫 번째 마른 전투에서 인근 창고로 달아나 숨어 있다가 군법재판을 받았다. 법정에 출두했을 때 그를 위해 증언해줄 전우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토머스 하이게이트는 입대 후 35일 만에 열일곱 나이로 총살됐다.
---p.255
🖋 출판사 서평
2013년 1월, 영국 에든버러대학 기숙사에서 나는 역사학 석사과정 첫 번째 학기를 힘들게 마친 후 계속될 진흙탕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학기에 들을 강의 소개서를 살피다 내게는 꽤나 낯선, 그렇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보이는 수업을 발견했다. ‘중세 유럽 남성성의 역사Medieval Masculinity in Europe’라는 강의였다.
그때까지 나는 학부와 석사 과정을 다 합쳐도 성별(젠더)의 역사를 다룬 강의를 들은 적이 없었지만 이후 나는 남성사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고 여성사를 파고들어 박사 논문을 쓰게 된다. 지금 내 연구 분야는 온전히 성별사로 채워져 있다. 십여 년 전 남성성의 역사를 다루는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성별사 연구자의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다.
남성사는 여성사에 비해 늦게 발전했다. 1980년대 이후 서구 학술계에서는 남성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였으나 아쉽게도 대만에서는 여전히 극소수 연구자만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 남성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양 남성사에 비해서는 확실히 관심도가 낮았다. 그런 분위기였기에 나는 이 연구 주제를 처음 접하자마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여성사 연구는 주로 ‘억압’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반면 남성사 연구는 가부장 체제에서 남성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을 받았음을 다루는 한편 그 주제가 좀 더 다원적이다. 이 책에서는 모순된 부자 관계, 의복이 남성성에 미친 영향, 남성이 원시적 폭력과 후천적 예절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 등 여러 시각에서 남성사에 접근하고자 한다. 사실상 남성이 억압받았다는 묘사가 분명하게 등장하는 사료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남성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분석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남성 또한 억압받았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데서 더 나아가 남성이 왜 묵묵히 순응했는지, 시대가 요구하는 조건을 달성하고자 남성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살펴보려 한다. 동시에 남성이 어떻게 가부장제 아래서 피해자이자 가해자 역할을 했는지 알아보고 이를 여성사와 대조하고자 한다. 생물학적 성별로 구분해서 생각해보면, 오늘날 여성사가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고 해도 다른 성性의 존재가 없다면 성별사를 완전하게 확립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대만 학술계는 현재 여성사 및 여성 연구에 많은 관심을 쏟고있다. LGBT(성 소수자.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 성애자 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 관련 연구도 부쩍 늘고 있다. 그러나 남성사 연구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역시 이상야릇한 현상이다. 성별사가 여성 입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또 페미니즘 운동의 강력한 흐름을 타고 이루어졌기 때문에, 솔직히 남자들은 젠더 이야기라면 덮어놓고 반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성별사 연구도 그렇다. 게다가 성별사의 한 갈래로 LGBT 연구가 활발한 분위기이므로 남성 연구자가 성별사를 건드리면 당장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나는 사내대장부야. 내가 왜 그런 글을 읽어야 하지?”
“게이도 아닌데 젠더에 관한 책을 본다고?”
“페미니즘 책을 읽었어? 너 페미니스트야?”
이와 유사한 반응을 흔히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남자’의 정의에 부합하는 이들은 젠더 주제를 불편하게 여긴다. 학술계에서도 그렇다. 서구든 대만이든 여성사를 연구하는 학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물론 서구권의 상황은 대만보다 나아서 적은 수나마 남성 학자가 여성사 연구에 공헌하고 있다. 그러나 남성사 영역은 연구자의 성비가 비슷하다. 역사학자가 젠더 연구를 하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억압’을 전면에 내세우며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억압’은 단지 역사적 사실이며 논술의 대상일 뿐이다. 중세에는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것이 사실이므로 어떠한 논쟁이나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역사학자가 할 일은 사실 그대로를 논하고 독자에게 오늘날 여성의 지위가 가부장제 아래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알리는 것이다.
남성사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이 책에서 남성이 얼마나 부당하게 대우받았는지, 가부장제 아래에서 남성 역시 억압받았지만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가부장제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남성성의 정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오늘날 사회에서 남성이 누리는 권력과 그들에게 가해진 억압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누적되고 이어져왔는지를 서술하고자 한다. 이 책이 사회적으로 조금이나마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젠더 담론을 회피하던 남성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성향이 어디에서 어떻게 유래했는지 살펴보기를 기대한다. 당연히 여성이 이 책을 읽는 것도 대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