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충주 영성학교에서 필자와 동역하시는 교수님의 설교말씀을 듣고 감동이 되었기에, 아침에 성경구절의 출처를 알려달라고 요청해서 다시 찾아 읽어
보았다.
역대하의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신 내용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말씀이기에 짚고 넘어가고 싶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 7:13~14)
필자는 당신 앞에 산적한 문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 문제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실감이 난다.
살아있다는 것은 수많은 문제들과 씨름하는 게 운명이라는 말일 게다.
그래서 피할 수 없다는 즐기라는 말이 멋들어지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즐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화성에 로켓을 쏘아대는 과학문명을 들추며
떠벌리고 싶겠지만, 사람은 내일 일조차 알지 못하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당신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유이지만 말이다.
거대한 대자연과 사회제도, 금융환경 속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쯤은 너무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고 교회로 나오신 게 아닌가?
당신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완벽하게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오홋, 그런가?
그래서 당신은 교회에 와서 지난한 문제를 죄다 해결 받으셨는가?
하나님이 전진전능하시며 무소불위의 능력을 지닌 분인 것을 믿는 것과, 당신의
삶이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말하자면, 미국이 부자나라인 것은 맞지만, 미국인이라고 죄다 부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못사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열심히 살아도 가난한 게 당연하겠지만, 잘 사는 미국에서 가난한 게 사는 것은 개인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일 확률이 높다.
말하자면,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원인은 온전히 당신의 문제라는 것이다.
솔로몬에게 말씀하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의 원칙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는 것이다.
악한 길은 죄악 된 삶을 말한다.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말과 행동, 생각과 성품을 총망라한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에서 돌이킬 생각이 없이, 고통스러운 문제만 해결
받기위해 교회에 와서 울고불고한다면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생각이
없이, 예배의식을 비롯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죄에서 회개하고 돌이킬 생각이 없다면, 문제를 해결 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으시다.
많은 종교지도자와 삯꾼목자들이 문제를 해결 받는 솔루션으로, 새벽기도를
작정하며 헌금봉투에 지폐를 빼곡히 담아 가져오고, 기도원에 짐 싸들고 올라가
금식을 선포하라고 말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희생적인 기도행위를 거들떠
보시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과오를 깨달으며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죄에서
돌이키시기를 바란다.
전심으로 회개하였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칙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라는 것이다.
즉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언젠가 성령께서 교만은 귀신의 기름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귀신들은 사람들의 머리에 올라앉아,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고 마음을 조종하고
있다.
이들이 넣어주는 생각은 죄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고 부정적인
생각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치명적인 생각이 바로 교만한 마음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교만한 마음이 얼마나 악하고 가증스러운지 수도 없이 말하는
이유이다.
교만한 마음은 포악하고 안하무인의 성품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교만은 하나님을 우습게 알고 그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알고 있더라도 그 뜻대로 살 생각이 없다면 아주 교만한 사람이다.
성경을 습관적으로 읽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은 교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더욱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아니라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오홋 그런가?
그렇다면 한 가지만 묻겠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은, 부족한 성품을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하려고
하는 것이고, 전심으로 그리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
다른 것을 제쳐놓고라도,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삶에서 실천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우습게 보는 아주 교만한
사람일 뿐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행위는,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만나주시기를 학수
고대하는 기도를, 전심으로 드리고 쉬지 않고 하는 것을 말한다.
아하, 기도라고요?
기도라면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새벽기도회도 빠짐없이 나가고, 철야 기도회나 교회에서 정한 기도회에서
성실하게 참석하는 데요.
그렇다면 잘하고 있다.
그러나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당신이 기도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자신이 세상에서 얻기를 원하는 요구사항이 아닌가?
하나님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며 재산을 얻어내려는 불량한 아들의 부자
아버지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바래서가 아니라, 단지 찾아와 불러주시기만을
원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당신이 기도자리에 앉자마자 “주세요 주세요” 하면서 떼를 쓰고 있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지도 말라.
그런 기도는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울 뿐이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녀는, 오직 하나님의 얼굴만을 구하는
사람이다.
이쯤 되면, 필자가 왜 하나님을 부르라는 기도를 주구장창 훈련시키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해결 받고 싶은 삶의 문제가 있다면,
위의 세 가지를 삶에 적용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현재의 하나님이시고,
유대인의 하나님뿐 아니라 당신의 하나님이시다.
또한 그분은 성경에 약속한 원칙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하시는 분이시다.
아셨다면 즉각 삶에 적용하시라.
그 길만이 고단하고 팍팍한 인생극장에서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얻는
유일한 솔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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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