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류블랴냐로 가는 날. 약5일 동안 머물렀던 요호 호스텔을 떠나면서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 남는 것 같다. 출발하는 시간까지는 좀 남아있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려 역 내에 있는 맥도날드에 가서 유로 동전을 마저 쓰고 푸짐하게 나오는 메뉴에 질색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유로가 좀 남아 있어서 나머지는 이번에 유럽에 오게 되면서 좋아하게 된 요플레를 사들고 우리가 타려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우리가 탄 열차는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어서, 오스트리아에서 탄 열차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열차. 컴파트먼트에 앉고 보니 이미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앉아 있다. 우리가 탄 열차의 윗부분은 허술하게 되어 있어서 일행과 나의 무거운 가방을 올리면 금방 부서질 것 같았다. 따라서 우리는 그냥 의자의 앞 쪽에 놓아두었지만 도저히 지나다닐 수가 없어서 좀 미안해서 말을 꺼냈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무뚝뚝한 이 부부를 어떻게 하겠는가?
다른 곳에서는 흡연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워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미안하더라도 여기에 앉기로 하고, 흔들거리는 기차 안에서 밖도 못 보는 채로 가고 있었다. 풍경을 못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상당히 더운 날씨에 에어컨은 물론 창문조차 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창문 좀 열어도 되겠냐고 하니, 정말 5cm만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워낙 더위를 많이 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서 바깥의 차창가에 서 있었는데 그도 여의치 않았던 것이 창문이 쉽게 닫힌다는 것. 계속 열고 닫고를 반복하고 있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남자애가 물통으로 고정시켜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시원한 바람과 시원한 풍경에 지금까지의 짜증은 온데간데 없다.
그 사이 화장실을 다녀와서 자리에 가보니 일행이 없어졌다. 옆에서 부르는 소리에 가보니 아까 그 청년의 자리 쪽에 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일행이 맥주 마시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는 것도 좋아해서 내가 오는 것을 기다리다 합석하게 되었다는 것. 원래 술은 안 좋아하지만 일행을 혼자 내버려 두는 것도 그런지라 그 자리에 껴서 애기를 나누니 정말 프리한 아이들이었다. 자기들은 무전여행 중인데 지금은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의 도시로 밴드 구경을 하러 나섰다는 것. 맥주는 박스로 가지고 다니고 점심은 간단하게 빵과 말린 햄을 같이 곁드려 먹는데 이 말린 소세지가 의외로 맛이 좋다. 말려서 더 맛이 나는 것일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어서 더 그런 것 같다. 거기에 같이 있던 사람 중에 일본 노래를 듣는 사람이 있었는데 zard 노래를 듣고 있었다. 나도 원래 일본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고 zard 노래는 거의 다 알고 있었는데, 이 노래가 너희 나라 가수 노래가 아니냐고 묻는 말에 아니라고 하고, 일본어와 한국말이 무슨 차이냐는 말에 수없이 한국말과 영어와 일본어를 반복해야만 했다. 간단한 인사말이라도 전혀 모르는 외국 사람이 들으면 한국말과 일본말을 구분하기 어려운가 보다.
<몬스터 같았던 "막스" . 일본노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의 이름을 까먹었다-ㅡ->
그렇게 떠들며 가는 중에는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어느새 국경에 도착해서 여권을 검사받고, 이들은 곧 목적지에 도착해서 하차하고 있었다. 잠깐 만난 사이라도 꽤 친해져 있었고 느낌이 좋은 아이들이었기 때문에(구지 아이들이라고 하는 이유는 연령대가 16~18이었던 것) 작별인사도 구지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끝까지 장난을 치는 막스라는 녀석이 골치 아프기는 했지만^^
미국인인 크리스는 우리와 같이 류블랴냐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남기고 모두 내려버렸다. 우리는 같이 얘기하면서 가려고 가방을 이쪽으로 옮겨와서 신나게 가고 있는데 슬로베니아 차장이 티켓을 검사하러 왔는데 우리는 어제 그 호탕한 오스트리아인 아저씨가 끊어준 티켓을 보여주니 이건 그저 좌석 티켓이라고 한다. 역시 그랬던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았건만 결국 이렇게 꼬이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냐고 물으니, 1인당 10유로란다. 일단은 동전은 모조리 써버렸고, 유로는 큰 단위밖에 없던가 나는 이미 유로를 다 써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정말 식은땀이 절로 났다. 결국 일행이 10유로 짜리 하나 가지고 타협을 보니, 우리는 안심했지만 옆의 크리스는 둘이 20유로였다면 비쌌다고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이 정도로 지나가서 좋은 거라 말을 하며, 앞으로 도착할 슬로베니아에 대한 얘기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이윽고 5시간의 여행을 마치고 도착한 류블랴냐는 예상보다 1시간이나 지연이 되었다. 간신히 도착한 이 곳은 정말 여름햇살의 작열로 눈조차도 제대로 뜰 수 없었던 류블랴냐 역. 내렸던 곳에서 한참을 걸어서 간신히 출구에 도착했나 싶었지만 우리가 어디로 숙소를 잡아야 할지를 몰라서 결국 역 내의 인포센터를 찾았다. 우리는 익히 들었던 곳으로 움직이기로 했고, 크리스는 저렴한 야영장으로 간다고 한다.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고, 셀리카호스텔로 향했다.
<셀리카 호스텔의 외형. 정말 실내도 깨끗하고 세련되고, 인상깊었던 것은 리셉션 바로 옆의 방에 마련되어 잇는 좌식 방. 정말 오랜만에 동양의 풍취를 느낄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사람들도 번잡했다. 워낙에 더워서 이 시간에는 들어와 있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게다가 카페 에는 에어컨도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더더욱 그런 듯싶다. 우리는 딱 두 자리 남은 곳으로 배정받고 들어간 곳. 옥탑방은 정말 지옥이었다. 한 단위의 매트리스는 여기저기에 내팽겨쳐 있고, 반 이상은 침대에서 자고 있었지만 선풍기가 2대 정도 돌아가고 있었지만 정말 사우나가 따로 없다. 우리는 재빨리 나가기로 하고, 쭉 걸어가다 보니 여기에도 호스텔이 있다. 여기에 가격을 물어보니 1250sit(약10유로) 정도. 내친 김에 이쪽으로 예약을 하고, 다시 우리의 목적지로 가기로 했다.
<시내로 가는 길에 보이는 "용다리"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어디있냐고 물어보니 바로 앞. 이라는 대답을 들었던 나>
드디어 도착한 시내에서 우리는 먼저 밥을 먹기로 하고, 시내에 한 곳에서 간신히 찾은 ATM기계에서 필요한 만큼의 돈을 찾고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갈 요량으로 가 보니 번호를 눌러야 한다. 알고 보니 구매한 영수증에 밑에 핀 번호가 적혀져 있어서 이것을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중앙 광장에 있는 동상>
그렇게 나와서 일단은 성을 올라가 보자고 트레인을 타고 가기로 했다. 천천히 올라가는 트레인도 기분이 좋지만 조금씩 움직이는 트레인이 기분 좋기만 하다. 생각보다 높은 곳에 있었던 성은 다른 곳들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조금은 차분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타고 올라간 트레인 왕복으로는 판매하지 않고 편도로만 가능하다.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왔는데 내려갈 때는 별로 힘들지 않다>
<이런 길을 쭉 올라간다. 꽤 길었던 듯>
<성의 벽면에 붙어 있는 인상적인 모형?>
<조금은 단조롭지만 정감이 가는 곳이다.>
<셀리카가 연상되는 화장실 입구. 외관이 이렇다고 화장실을 무시하지 말자. 정말 깔끔하고 호텔만큼 깨끗하고 신식이다>
<성에서 바라보는 류블랴냐 시내. 조금은 우리나라 같다. 곳곳에 가로수나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몇 안되는 나라중의 하나. 빽빽해 보이지만 주변에 녹지나 나무들이 정말 많다>
쭉 둘러보고, 류블랴냐 성의 역사 영상물을 보고 나서 나가는 길에 만난 한국사람. 여기서 영화를 상영해 준다고 보고 가려다가 결국 말을 바꿔서 강가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헤메이다가 자리를 잡은 강가의 한 테이블. 우리는 간단하게 술을 시켜서 만나서 좋았던 일이나 앞으로의 행보나 얘기를 하며, 주변의 라이브 음악과 함께 흘러 다니는 분위기가 좋다.
<아직 완전히 아름답지는 않지만 정말 아름다운 강가의 모습들>
우리는 숙소까지 같이 와서 만난 사람과 헤어지고, 이윽고 들어간 숙소. 밑에서는 한창 파티가 있었기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서 씻고 쉬려고 했지만 밑에서 울리는 소리와 함께 잠에 들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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