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증거된 대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에 약속된 그대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날마다 순간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에 힘써야 하고, 본질적으로는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다만 그것부터가 내 힘과 의, 세상적 능력이나 방법들로는 불가라는 사실을 통찰하며 깨달고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실상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들을 순간순간 사모하고 의지하며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조금만 따지고 봐도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늘 깨어서 세상 끝 날의 새 하늘과 새 땅을 변함없이 바라보고 갈망하는 믿음과 소망부터 연약함과 부족함들 투성이인 우리 인생들의 힘이나 세상적 방법들로는 불가능인 것으로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야 온전히 가능한 것이고 생생히 유지할 수 있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고난과 환난들을 이길 수 있게 하는 것도, 유혹과 시험들, 온갖 죄악과 악한 세력들과 싸울 수 있게 하는 것도, 염려와 무서움들을 극복하게 하는 것도, 좁은 길과 십자가의 길의 아픔과 고통들을 감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여러 모양의 방해와 대적들, 제한과 한계들, 광풍과 홍수들, 심지어는 절망과 불가능들에도 낙심하고 포기하며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성령님으로 인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여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의 자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결단과 몸부림과 실천들도, 범한 죄악들에서 최대한 빨리 각성하고 자복하며 돌이킬 수 있게 하는 것도, 심지어는 순교의 두려움과 잔혹함과 처참함까지 피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성령님으로 인한 상상도 다 못할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들로 인해 가능한 것이고..
잘 통찰해 보면 세상 끝 날에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실질적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고 보이게 되며 그 속에서의 누림과 성취가 가능하게 하고 경험할 수 있게 함에 있어서도, 말씀에 약속된 대로 신령한 몸으로 부활케 되어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기쁨과 생명을 강렬하게 맛보게 되는 것도, 그 전에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어둠과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인생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됨과 함께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이신칭의의 구원이 가능함도, 사실상 태초에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가 정말 하나하나 나타나고 보이게 되며 모두가 경험할 수 있게 됨에 있어서도 직접적, 실제적으로는 성령님으로 인한 생생하고 풍성하며 기적적인 하늘의 힘과 권능과 역사와 누림으로 인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마다 직접적, 현실적, 실제적인 측면에서는 그러한 성령님을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더욱 더 사모하고 의지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고, 최대한 생생하고 충만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에 앞서 그 성령님의 근심이나 탄식이 되는 신앙이 아니라 반대로 그에 합당한 믿음이 되어 늘 충만하게 되고 불길같이도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에 있어서의 방법과 통로는 사실상 한 가지 외에는 달리 있을 수가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영이며 그 자체부터가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분인 것으로 다른 그 무엇보다 바로 그 성령님께서는 특별히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전적으로 직결되어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시 말하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매사에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일차적으로 덧입어야 하는 것이고..
진정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인간적인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바로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로 인해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울 수 있는 것이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킬 수도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실질적인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도 가능한 것이고 그와 함께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도 가능한 것으로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열정이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생생하심과 충만하심을 이차적, 계속적, 점진적, 점증적으로, 심지어 어떠한 때에서는 급증적, 폭발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어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케 되심과 함께 온갖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응답과 승리와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더욱 차고 넘치게 하면서 원론적으로는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울 수 있게 하고 더더욱 견고하고 치열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게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후서3:11~13)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6월 8일(토)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