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 외 1편
전선용
고드름을 생각하다가 베드로라고 쓴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그는
외골수,
땅을 지향한 죽음
고드름 같은 몇 번의 죄가 문신이 되어
하늘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영혼을 위해
잡아도 잡히지 않는 박해를 위해
고드름도 피땀을 흘린다는 사실
물구나무선 채 죽어간 그가
저녁 무렵 소름으로 자라 내 피부에 자랐다
거꾸로 매달린다는 것과
뒤집어야 바로 보이는 것들
시체 같은 겨울,
고드름은 흔적 없이 사라질 우리의
사자 굴이다.
봄의 궤도
노지 바람에 일어설 줄 모르는 꽃,
어머니 등은 노란 꽃가루 만발입니다
조문처럼 다녀간 별빛이 간지럼을 유발할 때
동백은 소문 없이 내 정수리에 피고 집니다
허세 부리는 욕창과 거드름 피우는 불면
돌아누울 때마다 지구는 무너지고
방언 같은 옹알이는 고장 난 테잎처럼 꿀렁댑니다
질주를 마친 생의 미등
몇백만 광 년 거리에서 온 기별이
정맥을 좇아 수액으로 흘러가고
기도가 으스러져 섬망이 될 즈음
내 허물, 내 죄는 눈덩이처럼 커집니다
동선이 모호해진 별의 움직임
자전이 힘들어 타래 풀린 실 같은 다리는
끈 떨어진 연입니다
퇴적된 봄밤의 궤적
애기똥풀 한아름 안은 어머니
이 밤, 아리랑 넘습니다.
― 전선용 시집, 『그리움은 선인장이라서』 (생명과문학 / 2023)
전선용
2015년 월간 《우리詩》 신인상 등단. 시집 『지금, 환승 중입니다』 『 뭔 말인지 알제』 등.
책소개
전선용 시인의 『그리움은 선인장이라서』 에서는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세계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보이는 현상적 세계의 정서적 영향력 있는 말도 잘한다. 밖으로의 ‘현상’과 안으로의 ‘무한’은 모두 타자를 의미한다. 일대일 대면 타자와의 관계에서 시인은 타자의 얼굴을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미지로 느끼는데 반해, 추상적인 타자나 스치듯 지나가는 다수 타자와의 관계에서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느껴지지 않는다. 후자와의 관계에서 전선용 시인은 사회공동체 정의를 부르짖는 목적으로 고통스러운 사회현실에 참여하고, 공감하게 된다.
전문가 서평
전선용 이번 시집 표제시가 주는 상징에 주목한다. 선인장은 가시가 많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 내한, 내열, 독립성이 강한 특질을 가지고 있다. 제 몸속에 가시를 숨긴 그리움을 노래한 ‘시인의 말’이 ‘왜곡과 편견’이라는 양날의 검을 손에 쥐고 뒤틀려 있는 세상을 바르게 펴고자 한다. 인간이 짐승이 되어가는 세상 여기저기서 뛰쳐나오는 들짐승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는 이타적 윤리의식의 시쓰기와 관련이 있다, 시인은 시 쓰기를 통해 “전열을 가다듬”고, “녹슨 몸뚱이를 숫돌”에 자신을 벼리면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자신의 부정적인 세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모순된 것들이 자신의 죄업으로 끌어안고 있다. 이어 그의 시는 선성善性, 고독, 성찰, 헌신을 들어 자책하며 외톨이로 내몰고 있다, 부정과 부패가 활개치는 세상에 죽비 같은 전선용의 시편은 읽는 이로 하여 기꺼이 무릎을 꿇고 환희의 고통을 맛보게 한다.
―전다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