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단, 아셀, 납달리 지휘관의 헌물
민 7:60-83
60 아홉째 날에는 베냐민 자손의 지휘관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헌물을 드렸으니
61 그의 헌물도 성소의 세겔로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 쟁반 하나와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62 또 열 세겔 무게의 금 그릇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63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이며
64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이며
65 화목제물로 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라 이는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의 헌물이었더라
66 열째 날에는 단 자손의 지휘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헌물을 드렸으니
67 그의 헌물도 성소의 세겔로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 쟁반 하나와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68 또 열 세겔 무게의 금 그릇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69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이며
70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이며
71 화목제물로 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라 이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의 헌물이었더라
72 열한째 날에는 아셀 자손의 지휘관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헌물을 드렸으니
73 그의 헌물도 성소의 세겔로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 쟁반 하나와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74 또 열 세겔 무게의 금 그릇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75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이며
76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이며
77 화목제물로 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라 이는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의 헌물이었더라
78 열두째 날에는 납달리 자손의 지휘관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헌물을 드렸으니
79 그의 헌물도 성소의 세겔로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 쟁반 하나와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80 또 열 세겔 무게의 금 그릇 하나라 이것에는 향을 채웠고
81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이며
82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이며
83 화목제물로 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라 이는 에난의 아들 아히라의 헌물이었더라
민 7:60-83 / 아홉째 날에는 베냐민 지파의 우두머리인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예물을 바쳤다. 61) 아비단도 성소에서 쓰는 세겔로 130세겔 나가는 은쟁반 한 개와 70세겔 나가는 은바리 한 개를 바쳤다. 그도 이 두 그릇에 곡식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가득 채워 바쳤다. 62) 또 10세겔 나가는 금잔 한개에 향을 가득 채워 바쳤다. 63) 또한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년된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바쳤고 64) 속죄제물로는 숫염소 한 마리를 바쳤으며 65) 화목제물로는 수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년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를 바쳤다. 이상이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바친 예물이다. 66) 열흘째 되는 날에는 단 지파의 우두머리인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예물을 바쳤다. 67) 아히에셀도 성소에서 사용하는 세겔로 130세겔 나가는 은쟁반 한 개와 70세겔 나가는 은바리 한개를 바쳤다. 그도 이 두 그릇에 곡식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바쳤다. 68) 또 10세겔 나가는 금잔 한 개에 향을 가득 채워 바쳤다. 69) 또한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년된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바쳤고 70) 속죄제물로는 숫염소 한 마리를 바쳤으며 71) 화목제물로는 수소 두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년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를 바쳤다. 이상이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바친 예물이다. 72) 열하루째 날에는 아셀 지파의 우두머리인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예물을 바쳤다. 73) 바기엘도 성소에서 쓰는 세겔로 130세겔 나가는 은쟁반 한개와 70세겔 나가는 은바리 한개를 바쳤다. 그도 이 두 그루에 곡식제물로 기름섞은 고운 가루를 가득 채워 바쳤다. 74) 또 10세겔 나가는 금잔 한 개에 향을 가득 채워 바쳤다. 75) 또한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년된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바쳤고 76) 속죄제물로는 숫염소 한 마리를 바쳤으며 77) 화목제물로는 수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년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를 바쳤다. 이상이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바친 예물이다. 78) 열이틀째 날에는 납달리 지파의 우두머리인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예물을 바쳤다. 79) 아히라도 성소에서 쓰는 세겔로 130세겔 나가는 은쟁반 한 개와 70세겔 나가는 은바리 한개를 바쳤다. 그도 이 두 그릇에 곡식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가득 채워 바쳤다. 80) 또 10세겔 나가는 금잔 한개에 향을 가득 채워 바쳤다. 81) 또한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년된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바쳤고 82) 속죄제물로는 숫염소 한마리를 바쳤으며 83) 화목제물로는 수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년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를 바쳤다. 이상이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바친 것이다.
본문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시므온, 갓,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에 이어서 베냐민,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지휘관들이 예물을 드린 내용입니다.
아홉째 날에 예물을 드린 자(60-65) 아홉째 날에는 베냐민 지파의 지휘관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예물을 드렸습니다. 아비단도 앞서 드린 지휘관들과 동일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이 드린 예물에 향을 채운 금 그릇이 있었습니다. 이 그릇에 담긴 향은 유향과 각종 향품을 섞어 만든 거룩한 물품입니다(출 30:34-37). 이 향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예물인 동시에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합니다(계 8:3-4).
열째 날에 예물을 드린 자(66-71) 열째 날에는 단 지파의 지휘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예물을 드렸습니다. 아히에셀도 앞서 드린 지휘관들과 동일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이 드린 예물에 번제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숫양이 있었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철저한 헌신을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그들은 이 제사에 가장 귀한 수송아지, 숫양, 어린 숫양을 드렸습니다.
열한째 날에 예물을 드린 자(72-77) 열한째 날에는 아셀 지파의 지휘관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예물을 드렸습니다. 바기엘도 앞서 드린 지휘관들과 동일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은 속죄하는 제물로 숫염소 1마리를 드렸습니다. 속죄제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들은 속죄의 제물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알고 드렸습니다.
열두째 날에 예물을 드린 자(78-83) 열두째 날에는 납달리 지파의 지휘관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예물을 드렸습니다. 아히라도 앞서 드린 지휘관들과 동일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이 드린 예물에 화목하게 하는 제물로 소 2마리와 숫양 1마리와 숫염소 5마리와 어린 숫양 5마리를 드렸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과의 화목을 매우 중시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용: 각 지파의 지휘관들이 드린 동일한 예물 내역이 반복해서 기록되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으며, 어떤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나누어 봅시다(시 95:2; 골 3:16). 특히 금 그릇에 담은 향은 기도를 상징합니다. 당신의 기도에 일관되어 온 기도 제목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스 9:5; 행 10:2).
지그 지글러가 쓴 책에서 [당신이라는 도둑]이라는 예화가 있습니다. 임마네엘 닝거는 화가였지만 생계를 위해 지폐를 위조하였습니다. 닝거는 채소가게에서 20달러 지폐를 건넸지만, 그날따라 점원의 손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고 점원의 손가락에 지폐 잉크가 번지며 그의 죄가 드러났습니다. 그의 집을 조사한 결과 다락방에 다량의 위조지폐와 그가 그린 초상화 세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후에 그가 그린 초상화는 한 장당 5,000달러로 경매에서 팔렸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20달러 지폐를 그리는 데 걸린 시간과 초상화를 그리는 데 걸린 시간은 동일했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가장 값진 것을 우리는 스스로 도둑질할 때가 있습니다.
< 설 교 >
베냐민, 단, 아셀, 납달리 지휘관의 헌물
민 7:60-83 / 조상수 목사
교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교회 재정에서 십일조가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됩니다. 십일조는 아브라함(창 14:18~20)으로부터 시작되어 성막과 성전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 십일조를 비롯한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은 가난한 이웃과 제사장과 레위인(신 14:28~29; 26:12~15), 국가를 위한 세금의 성격과(삼상 8:15~17) 공동체의 유지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사역(느 10:37~39)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 시대에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의 부름을 받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제사장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횡령하여 타락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라고 책망(말 3:7~12)합니다.
신약 시대로 넘어와서 십일조는 율법의 폐기와 함께 더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헌금의 한 종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약에서는 십일조에 관한 강조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과 사도들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백성다운 모습을 보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구약에 나타난 십일조와 헌금에 관한 정신을 신약 시대에도 이어가면서 성령이 인도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던 과부를 칭찬하셨고, 바울은 재정이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보낸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을 칭찬했고(고후 8:2),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헌신한 일들에 관해 칭찬했습니다. 물론 아나니야와 삽비라처럼 마음에도 없는 일을 벌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경우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십일조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헌금은 어떤 ‘종류’로 드리느냐가 중요한 모습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눅 6:28; 고후 9:8).
민수기 7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지 2년 1개월 2일(?)째에 있었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간을 흐름으로 민수기를 정리하면 가장 먼저 있었던 일이 바로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막이 완성되고(출 40:2, 17), 구름(영광)이 내려와(출 40:34) 하나님이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십니다(레 1:1). 그리고 제사법을 비롯한 여러 법을 백성들에게 알려줍니다(레 1~7장). 이후 성막 봉헌식과 제사장 위임식이 있은 다음 바로 지파별로 헌물을 바치게 됩니다(민 7장). 학자들이 정리한 시간의 흐름을 보면 중요한 장면을 찾을 수 있게 되는데, 바로 성막의 완성과 율법의 선포, 그리고 제사장이 세워졌을 때 비로소 헌물을 드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막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자기 멋대로 하나님께 헌물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올바른 질서와 거룩한 과정을 통해 실행되어야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지휘관들이 자발적으로 헌신(1~10절)했음에도 하나님은 더 많은 헌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러셨을까를 생각해 보면, ①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만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져오는 헌물의 양이 많아 모세가 그만 가져오라고 말합니다(출 36:6~7). 광야에 들어선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충분했습니다. ②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길 원하셨을 것입니다. 시내산에 머물 때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앞으로 38년을 더 광야에 머물 거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각자가 소유한 재물이 힘과 권력이 되지 않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만 의지하길 원하셨을 것입니다. ③ 시내산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은 광야를 관통해야 하는 어려운 여정입니다. 이 여정에서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헌금은 누군가의 강요나 강압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목사님은 십일조를 안 하는 성도는 암에 걸린다고까지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말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판단하는 행동이라고 생각됩니다. 헌금은 하나님을 향한 개인의 신앙 고백입니다. 헌금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사람’이 이유가 되어선 안 됩니다. 지금 시대의 헌금은 분명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사람들이 풍요로웠던 시대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훨씬 더 많았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선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지혜,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내 삶을 어떻게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헌금하면 복 주신다는 공식을 버리세요. 아벨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을 드렸음에도 형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지혜를 주셔서 감사하고, 무엇보다 주가 기뻐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헌신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려운 재정 상태로 팍팍한 삶이 되더라도 우리의 신앙과 영성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