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손이 펴지지 않았다
잡아야 할 것들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손으로 잡아야 하는 것들은 모두 사물이다
팩소주를 마셔본 기억은 없는 데
매번 꿈마다 팩소주 묶음을
배낭 아래에 넣고 여행을 떠난다
추전역을 지나면서
아직 오늘이 다 가지 않았다는 것과
더 기다릴 여력이 남아 있다는 것에 숨을 내쉰다
태백이 고향이라는 여자의 말을 듣고
사랑한다고 고백할 뻔했다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발부리에 차인 돌멩이를 주워 던지며
그리워할 사람이 없을 때가 좋았다고
말하려다 그만 두었다
손이 펴지지 않았다
항상 무언가를 쥐고 있어야 했던 손이지만
항상 비어 있다고 기억하려 했다
카슈가르에서 한나절
한 사람이라고 해두자
짧은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짧은 사랑의 기억이라고 해두자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마을
소륵국 카슈가르에 도착하여 너를 만났지
백년 찻집에서 홍차를 마셨고
알툰올다 식당에서 양갈비를 먹었지
그저 먹기만 했지
너를 만나기 전에 먹은 양고기보다
그때 더 많이 먹었을 거야
향비묘도 가지 않았고
구시가지도 걷지 못했어
사진 한 장 남기지도 못했네
유적지는 사라지고 바자르도 사라지고
오직 너 하나 한사람만 남았지
예약된 티켓을 한 손에 쥐고
너는 쿠차로,
나는 우르무치로,
카슈가르에서 한 나절이 그렇게 다 지나간 거야
짧은 사랑은 여기서 끝났지
기억도 여기서 끝나야겠네
카페 게시글
―···추천하는 시(동시)
김수목 시집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대표시
시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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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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