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술에 취해 있었을 거다. 눈이 하얀 원숭이를 만나 주거니 받거니 되지도 않는 말을 지껄이며 웃고 있었을 거다. 아니, 어쩌면 울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숭이의 괴성은 대체로 웃음소리라고 하는 편이니 웃었다고 해 두자.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추락한 시간만큼의 웃음이 있어야 최소한의 예의, 가득 찬 술잔의 술이 바닥에 닿아 흩어질 때까지 서로의 눈을 보며 울먹이듯 웃는 건 죽음에 대한 경의의 표시, 원숭이의 손이 검게 물들어 녹아내릴 때까지 술을 마셨을 거다.
―「하얀 눈이 붉어질 때까지」 부분
엄마는 내가 일찍 죽을 거라 생각했다. 밤낮없이 쏟아 놓은 흔적을 지울 때면 늙은 배롱나무 껍질처럼 생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같았지만 죽음의 흔적을 지우는 일은 엄마를 찾는 나의 울음인 듯 익숙해졌다. 새벽마다 엄마는 익숙하지 않은 모성애로 나를 흔들어 보았다. 나는 때론 늙은 할아버지의 숨결처럼 거칠었고, 생고기를 잘라 입에 넣어 주던 아버지의 손처럼 눅눅했다. 주방에서 끓고 있던 뱀의 비명은 새벽까지 산속을 헤매던 아버지의 발자국처럼 주위를 맴돌았고, 자라의 등에서 나온 다섯 개의 목은 밤새도록 꿈틀거리며 방바닥을 기어다녔다.
―「사자」 부분
밤은 닿지 못한 감각들이 검게 물들어 가는 시간
아직 끝나지 않은 이별들이 무서운 속도로 쏟아집니다
얼마나 많은 조각을 잘라야 먼 곳에서부터 지쳐 간 죽음을 위로할 수 있는 걸까요
얼마나 많은 조각을 꿰매야 가까운 곳에서부터 잊힌 이별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걸까요
예고된 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을 독백처럼 떠올리며 지금은 삐뚤어지는 중입니다
―「삐뚤어지는 중입니다」 부분
실패한 연금술 같은 아이들이
고픈 배를 움켜쥐고 뒤샹의 샘에 고인
물로 배를 채웠다
채워도 채워도 허기진 시간이 흘러갔다
마그리트는 없는 세계를 그렸고
달리는 없어질 세계를 그렸다
돈키호테가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썩은 고기를 구하러 긴 여행을 떠났다
막대사탕을 입에 문 아이가
구름을 빨고 있는 아이를 비웃으며 지나갔다
샘에 빠진 아이는 시간이 멈추자
익사한 얼굴로 떠올랐다
―「⚑ ⚑ ⚑ ⚑ ⚑ ⚑ ⚑」 부분
눈물에 젖은 꽃은 질 수 없어 녹이 슬었네
로 끝나던 마주 선 계절에게 자리를 내주고
서서히 사라진 날씨 같은 문장
그 한 줄이 버릇처럼 아파 책을 찢었다
찢어도 다시 피어나는 꽃잎
낡은 청바지의 밑단같이 허름해진 책은
낮 열두 시 무렵 뜨겁게 달아오른 체온처럼 날아가고
바람은 오와 열을 맞춰 목메어 울었다
―「녹슨 꽃」 부분
구멍에서는 기형의 기억들이
담쟁이덩굴처럼 걸어 나왔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입보다 큰 구멍에서 먼저 흘러내린 소음
소란을 덮어 버리고 몸을 관통해 흐느적거리던 너
기억 속 괴물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발바닥이 축축해지도록 울던 날이었다
―「떠난 이들의 이름 대신 울었다」 부분
젊은 노동자가 죽었고
추운 겨울 어린아이가 맨발로 등교했고
컴컴한 방에서 오래된 사랑을 버렸지만
우리는 모두 침묵했죠
침몰하는 선원들의 아우성이 들렸지만
조용히 하지 않으면 같은 죄의 늪에 빠질까
두려움 속에 벌벌 떨며 겨울바람에 쓰러진
감나무처럼 모가지를 꺾었죠
―「벌의 독백체」 부분
끊이지 않는 비명이 커질 때면
온몸을 구겨 귀를 막고 싶었다
최후의 곡선인 듯 태초의 사선인 듯
길게 늘어진 길을 막고 웅크린 몸으로 잠들고 싶었다
(중략)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끝없는 귀가
귀가 처량한 날이면 최초의 집으로 돌아가
잘못 쓴 글자들이 얼룩질 때까지 서럽게 울고 싶었다
―「마지막 귀가」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