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삶
최복선
녹음 방초가 꽃 보다 아름다운 시절.
산은 마음껏 자태를 뽐내며 초록의 향연으로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자폐성향과 지체부자유아가 다니는 학교에서 아이들 돌보는 일을
했었다. 처음에 비위약한 내가 몇 일 하다가 그만두게 되면 어떡
하나 걱정스러움과 두려움이 교차되었다. 괴성을 지르는 아이가
침을 흘리며 손놀림이 잦은 아이들을 보자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가 없었다.
한 반에 열 두, 세 명의 소수 인원이지만 시간을 맞추어 대, 소변
을 뉘어야 하고 밥을 먹는 일까지 보살펴야 하기에 봉사자 없이 선
생님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몹시 힘에 겨워 보였다.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과 생활한지 여러 날,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과 정이
들었고 경계하는 듯한 눈빛들은 차츰 나를 보고 웃어 주었다. 하
루만 결석을 해도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보고 싶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몸과 마음이 그들의 탓은 아닌데 그늘진 곳에서 협소한 교육
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소외당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
도록 항상 관심과 보호,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언
어로 전달도 할 수 없고 화를 내거나 아프다는 말조차도 할 줄 모
르는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 외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순하고 맑은 눈망울을 보면 내 자식에게 욕심을 부린다는
것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짝의 손을 꼭 잡은 열 세
명의 아이들과 물오른 야산을 오르내리는 아침 산행은 세속적인 것
을 잠시 접어 두어도 좋을 귀한 시간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가식
없는 마음으로 이 아이들을 사랑해야지. 이들을 보며 나는 어떤
도구로든 쓰여지는 사람, 작은 것도 담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리
라 마음먹는다. 아침 산을 오를 때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해 가면
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욕심과 허영심만 늘어가는 나의 내면이 부
끄러웠다.
나는 차오르는 욕심을 처내기 위해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제 할 일 잘하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자식들이 더 잘해 주기를 바라
는 어미의 욕심은 부당함을 인정하면서도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시대의 흐름을 쫓자니 아이들이 억눌리고 자율.
적으로 키우자니 마음을 나태하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되었다. 현
실의 기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였다. 공부하는 것 못지
않게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
미라는 이유로 어린 자식에게 강요와 희생을 요구했다. 건강하다
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고 하루에도 수 없이 되뇌여 보지만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곳의 아이들을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고 보살피면서 어미로서의
욕심과 이기심을 조금씩 비워낼 수 있었다.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 외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내 것과 나만을 위해서 앞 만을 바라보고 살아 온 여정(旅情)이
었다.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삶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여정이기를 소망한다.
산에 사는 나무는 서로 아옹다옹 시기하지 않는가. 키 작은 나
무가 큰 나무를 부러워하지 않고 큰 나무는 군림하려 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산이 끌어 안 듯이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사회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터전이 되었으면 한다.
1999. 5 집
첫댓글 내 것과 나만을 위해서 앞 만을 바라보고 살아 온 여정(旅情)이
었다.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삶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여정이기를 소망한다.
산에 사는 나무는 서로 아옹다옹 시기하지 않는가. 키 작은 나
무가 큰 나무를 부러워하지 않고 큰 나무는 군림하려 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산이 끌어 안 듯이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사회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터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