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재앙 / 계16:1-21
천재지변은 자연발생적이요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하나라도 우연히 되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천재는 옛날부터 죄악이 강성할 때 회개치 아니하는 무리의 경고로 내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그들이 악을 행하며 회개하지 않을 때에 전쟁과 기근도 그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몇 차례 경고하시고 기다리시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얼마나 세상이 악하고 타락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많은 기회를 주셨지만 결국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때 물로 전 세계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성에 살 때에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을 때 유황불로 심판하셨습니다.그렇습니다. 불신자들 중에서도 천재가 인간의 죄로 인하여 오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벌 맞을 짓 하지 말라”고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천재는 분명히 인간의 죄를 벌하시고 경고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16장에 보면 일곱 대접의 재앙이 나옵니다. 1절에서는 그 재앙이 어디로부터 오는 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땅에 임하는 심판이 하나님께로부터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앙의 내용이 2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 16:2>에 보면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며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대접의 재앙은 “악하고 독한 헌데”입니다.
심히 아픈 피부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세상 끝 아주 가까운 때에 적 그리스도들과 우상 숭배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계 16:3>에 보면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닷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대접 재앙은 바다의 어류가 몰살당하는 재앙입니다. 옛날 애굽에 내렸던 재앙 가운데 물이 피가 되는 재앙과 같은 것입니다. 바다의 물이 피가 되니 모든 어류가 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4-7절에 보면 셋째 대접을 쏟으매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지 못하게 만드는 벌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음료수에 대해서 그 귀중성을 인식하고 있는 때인 줄로 압니다. 사람이 물을 먹을 수 없게 된다면 몇 일을 살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극심한 공해로 물은 점점 못쓰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재앙은 공해 정도가 아닐 줄로 압니다.
여기서도 심판하시는 분이 누구이신 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심판자의 자격임을 알 수 있고 거룩하신 분이므로 죄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6절에 보면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가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가 시편에 흔히 나타나는 비례식 보응 법입니다. 다시 말해서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때에 악한 자들이 벌을 받는 것은 자기가 쌓은 벌이지만 “제단이 말하기를”한 것을 보아서 성도들의 기도 응답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되다”했는데 이것은 그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실히 임하였을 뿐 아니라 심판에 대한 약속이 완전히 실현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우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재판은 얼마나 불공평하고 잘못된 것이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하시고 의로우시므로 받는 자들도 당연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8절에서는 넷째 대접을 쏟는데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리니”라고 했습니다. 자연계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 아래서는 인간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에는 자연계의 천태만상도 해로운 것이 되고 맙니다.
여기서 진노의 대상은“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지 않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사랑이나 벌을 아무리 받아도 회개하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저버리고 맙니다.
인생은 전적 부패하였으므로 거듭나기 전에는 회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의 사악한 근성이 재앙을 받을 때 더 잘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러한 때에 오히려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앙의 목적은 크레다너스의 말과 같이 죄인들에게 회개의 동기를 주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10-11절에서 다섯째 재앙이 나옵니다.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햇빛이 어두워지는 재앙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 그리스도의 정치가 어두워지므로 그 백성이 어두운 정치에서 당하는 고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면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라고 했겠습니까? 상상할 수 없는 고초를 말하고 있습니다.
죄는 일시적 쾌락을 주지만 그 결과는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무서운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사실 계속되는 고통은 죽음보다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악한 자들은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세에 일어날 악한 시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런 불 회개의 고집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고집은 매우 악한 마음이요, 교만한 마음이요,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사과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고집은 없습니까? 만일 이런 고집이 있다면 속히 꺾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셔요” 이런 말을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크게 베풀어주십니다.
가인은 고집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있다가 결국 동생 아벨을 죽이는 끔찍한 살인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는 땅에서 유리 하는 비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롯 유다도 그 품은바 악한 마음을 끝까지 고집하다가 “제 길로 간” 가장 불행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의 예언적 경고를 듣고 회개하지 않고 그 방에서 뛰쳐나갔는데 그를 영접하는 것은 오직 캄캄한 밤뿐이었습니다. 악독한 일을 고집 하는 자의 앞길은 언제나 영원한 암흑입니다.
<레 26:21>에 보면 “너희가 나를 거스려 내게 청종치 않을진대 내가 너희 죄대로 너희에게 칠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처음 경고에 즉시 회개하고 겸손히 엎드릴 때에 더 큰사랑과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2-16절에서는 여섯째 재앙이 나옵니다.“유브라데라”고 한 것을 보면 이것도 강과 관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강이 말라서 동방에서 왕들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적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 연방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침략한다는 비유입니다.
그리고 13절에 보면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악령의 역사는 개구리같이 소란케 합니다. 평화롭지 않고 소요하며 성결하지 않고 추악합니다. 이러한 역사는 용의 입, 짐승의 입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탄과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귀신의 영들의 특징은 사람들을 미혹케 하기 위해서 이적을 많이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적과 달라서 그 목적은 악하고 그 방법은 거짓되다고 하였습니다.
<살후2:4>절에 보면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이적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 한때에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을 1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때가 도적같이 예고 없이 온다고 했습니다. 10월28일 이라고 떠버리고 광고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깨어서 자기 옷을 지키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깨어 힘써 기도하고(엡6:18, 벧전4:7, 마26:41)
주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 받고 의의 옷을 입었으니 더럽히지 말고 홀이라도 신앙을 버리고 방종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요약하면 깨어 힘써 기도하며 믿음으로 진리를 사수하며 자신을 아름답게 지키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자 만이 수치를 면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귀신의 영들이 적 그리스도의 나라들을 불러모으는데 그곳이 바로 “아마겟돈”이라는 곳입니다. 이것은 본래 “하르 메깃도”인데 거기서 바락과 드보라가 가나안 왕을 멸하였고(삿5:19)또한 거기서 아하시아 왕이 예후의 화살에 죽었고(왕하9:27) 또 거기서 바로느고가 유대 왕 요시야를 죽였다.(왕하23:29,대하35:22)
그곳은 유대인들이 국가적 슬픔을 표시할 때 말하고 있습니다(스12:11). 따라서 그곳은 온 세상의 비애를 상징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세계 최후 전쟁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명칭은 세상 끝날 에 하나님의 백성은 적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긴 승전 지에 대한 상징적 명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7-21절까지 보면 일곱째 대접이 나옵니다.
그 대접을 어디에 쏟는가 하면 “공기 가운데 쏟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탄의 근거지를 치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속한 나라들은 사탄의 권세를 받아 득세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 권세의 근거지를 치시매 이 세상 나라들이 완전히 무너질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번개, 음성, 뇌성, 지진이 나타난다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엄위 하신 대 심판이 나타날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심판 앞에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진다고 했는데 가장 크고 강대한 적 그리스도의 나라가 완전히 멸망할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우리의 부족을 겸손히 회개하고 늘 깨어 기도하여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의의 옷을 조금도 더럽히지 않고 우리의 생활을 성결케 하여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십자가의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