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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코너 스크랩 수필 윤정희의 시/詩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88 11.02.06 16: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간밤에 새벽까지 TV가 켜져 있다.

아내가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냥 둔다. 빛과 소리는 아내에게 달콤한 수면제이기에.

영화가 끝나고 아내는 나를 깨운다. 무섭단다. 왜냐고 물으니 무섭단다.

내 잠을 깨울까 봐서 무서운 이야기를 아침까지 미룬다.

 

시인을 사랑하는 여인과 시인과 동거는 해도 시를 싫어하는 여인이 주위에 있다.

누이는 김용택을 좋아한다. 그가 사는 곳까지 찾아간다. 그를 좋아하기보다 시를 좋아한다고 하나 시가 좋으면 시집을 살 일이다. 날마다 시를 쓰고 가끔 시를 읽어 주나 아내는 아예 듣기조차 싫단다. 친척들을 만나면 이런 말을 한다.

온종일 시를 읽어 주면 누군들 지겹지 않겠어요.”

사실 요즘은 시를 아내에게 거의 읽어 주지 않는다.

소귀에 경을 읽지.

또 다른 한 편 나도 내 시를 모르는데 그대인 들 알겠는가.”

그런데 아내는 아침부터 를 이야기한다.

 

윤정희가 많이 늙었어. 우리 나이 또랜데. 어미가 맡긴 손자를 기르고 있는데. 녀석이 할머니 알기를 우습게 아는 여니 아이들하고 똑같아.

 

(윤정희. 고왔다. 가슴을 설?지. 나도 늙었으나 여인은 참 늙었다. 엄앵란이나 현미보다 어리면서 어찌 이리 늙었는가. 보톡스 주사나 주름 좀 당길 만한 여유가 없었는지. )

나는 아내 말을 들으면서 생각에 빠진다.

(손자를 키워준들 무슨 소용. 품 안에서 예쁘지. 밖으로 돌면 다 애물단지인걸. )

 

윤정희는 예쁜 모자 쓰고 예뻐 보이는 노인인데 어느 날 동네 문화 교실에서 시를 배우게 돼요. 여기서 김용택이 시 강사로 나와. 지난번에 고모가 김용택이가 나온다고 신세계 극장에 갔잖아요. 보고 나서 하는 말이 졸려서 죽을 뻔했다기에 그런 줄 알았더니 김용택이만 보고 왔나봐.

 

(글을 쓰는 사람은 글만 써야 한다. 시 쓰고 영화 나오고 남은 시간에 쓰는 것이 시라면 아무나 쓰나. 김용택은 시인이 아니라 요즘은 아이들 가르친 일로 방송에다 파는 입담쟁이, 시동호인 관광객들에게 제 집 보여 주는 여행 도우미지. 언제 시를 쓰냐. 묵은 시 재탕하는 일은 가수만 하는 일이야. )

내 속으로 툴툴댄다. 남이 알아주는 시인을 이렇게 깍아 내린다. 반면의 진실은 있을 터.

 

윤정희는 길에서 꽃을 보면 메모를 하고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메모를 하고. 그러나 시 한 수를 못써. 윤정희가 간호인 노릇하는데 상대는 늙고 병든 남자로 김희라야.

몸 닦아 주는 일을 하면서 돈을 받아요. 어느 날엔 김희라가 돈 만 원을 주면서 자기 집 식구에게 말하지 말라는 거야. 그 집은 아래층은 슈퍼고 이 층이 살림인 구조인가 봐.

그렇게 생계를 가는데 손자는 몇 아이들을 집에 들여서 방문을 꼭 잠그고 할머니와 상대도 안 해. 어느 날 이 녀석들이 한 여학생에게 못쓸 짓을 해서 견디다 못한 여자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어. 학교는 쉬쉬하고 가해자 아이 부모들도 쉬쉬하면서 일 처리를 하려고 궁리를 했어요.

 

(우리 나이 또래도 이런 문제는 1년에 한 번 연말에 신문에 날 정도로 큰 뉴스였지. 지금은 수시로 일어난다. 이 애물단지들을 손지껌 없이 말로만 다루란다. 그래서 정화가 되는가.

굽은 나무를 말로 한다고 펴지나. 바로 잡아 펴야지. )

중간에 한 남자가 돈 마련을 하라는 거예요. 윤정희가 무슨 돈이 있어. 김희라가 청하는 일을 들어주고 돈을 얻어 주기는 했지만 아이는 결국 잡혀갔지. 문화센터에서 시강좌가 끝나는 날에 김용택 앞으로 꽃다발 하나와 시 한 수가 전해졌어. 바로 윤정희가 주고 간 거지.

윤정희는 손자 녀석이 죽게 만든 여자아이가 있던 다리 위로 가고. 여자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윤정희가 죽은 여학생 얼굴로 확 바꿔버렸어. 얼마나 무서웠다고.“

 

치매 초기 증세의 윤정희, 그런 징후에선 참으로 순수하여진다.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미워하여야 시 한 수를 쓴다. 자신이 죽어서 남긴 시 한 편이 남을 미워할 시일리는 없다.

 

나도 한번 보고 싶네. 우리 마나님께서 어쩐 일이세. 시를 다 보시고.”

영화 속에는 자기 시가 하나도 없었다고…….”

하하하 웃고 만다.

치매환자는 천국에서 산다. 그러니 자신이 죽을 이유가 없다. 단지 아직 반쯤 치매 환자는 아직은 지옥에서 산다.

길에는 집에는 많은 윤정희가 있다. 남자 윤정희 여자 윤정희.

나도 시를 쓴다. 하염없이 많은 시를.

그리고는 다 잊고 만다.

하나같이 낯설다. 어느 떠나는 날, 나도 누군가에게 꽃 한 다발에 시 한 수를 남길 때 진정한 시 한 수를 쓰려나.

 

나도 영화를 찾아봐야 겠네. 시 한 수 배우려니…….”

창밖엔 아침부터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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