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우리 지역은 긴 장마에서 벗어났다만 중부권은 국지성 호우로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안겨준 팔월 첫 주말이다. 일요일 점심나절 거제로 복귀 일찍 잠들어 새날을 맞았다. 씻어둔 셔츠를 다림질하고 콩나물무침과 고구마줄기볶음으로 아침밥을 해결했다. 전기밥솥 밥이 지어지는 사이 감자를 깎고 두부를 잘라 된장국을 끓였다. 남긴 된장국은 저녁과 내일 먹어도 될 양이었다.
다섯 시가 조금 지나 와실을 나섰다. 아직 여명이라 사위는 실루엣으로 남았다. 날이 덜 새어 골목은 희뿌연 어둠에 쌓여 있었다. 거제대로 횡단보도 건너 연사 들녘으로 나갔다. 한낮은 폭염이라 바깥 활동에 지장을 받겠으나 새벽이라 기온이 낮아져 들녘 산책에 어려움이 없었다. 농로를 따라 들판 한복판으로 나갔다. 우렁이를 잡아먹을 백로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였고 오키나와 남단에서 중국 대륙으로 향한다는 태풍의 간접 영향인지 바람이 불어와 상쾌했다. 들판에 자라는 벼들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잎줄기가 일렁거렸다. 벼 포기는 통통해져 곧 이삭이 패지 싶었다. 날이 조금씩 밝아오니 효촌마을 뒤 와야봉과 약수봉이 드러났다. 연초교 건너 수월지구 아파트가 보였다. 계룡산은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농로에서 연초천 둑으로 올랐다. 둑길에는 이른 새벽 산책 나온 이가 간간이 지났다. 연초천은 비가 내리 이후 며칠 지나서인지 흙탕물은 가라앉아 맑은 냇물이 흘렀다. 장맛비에 수량이 불어 넉넉하게 흘렀다. 냇가엔 밤을 샌 태공이 낚싯대를 여러 개 드리우고 찌를 응시하고 있었다. 자동점멸 보안등은 켜진 상태로 길섶에는 달맞이꽃이 밤을 새워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연효교를 건너 거제대로로 다가갔다. 찻길을 아직 출근 시간대가 아니라 차량 통행이 한산했다. 고현과 옥포 사이는 교통량이 많은 편인데 아직 이른 아침이라 통근버스나 시내버스가 운행하는 시간대가 아니었다. 연초삼거리 못 미쳐 횡단보도를 건너 학교로 행했다. 시야에슨 건너편 원룸이 들어선 마을이 들어왔다. 조선소로 나가 생업을 잇는 이들이 다수 머무는 곳이다.
교정으로 드니 주차장엔 할머니 세 분이 유모차를 밀고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마을에 사는 분들로 새벽에 잠이 없어 일찍이도 산책을 나왔더랬다. 장맛비가 내리지 않은 아침이면 이른 시간 교정에서 얼굴을 뵐 수 있었다. 나이 지긋한 사내가 축구 골포스트 안에서 맨손체조와 손뼉을 치며 운동을 했는데 오늘은 보이질 않았다. 당직 노인도 맨발걷기를 하는데 안 보였다.
한 달 전 교정 앞뜰 내가 심어둔 봉숭아는 세력 좋게 무럭무럭 자랐다. 그새 두엄도 내고 김도 매어주었다. 잎줄기를 불려가며 곧 알록달록한 꽃을 피우지 싶었다. 향나무 그루터기 아래와 국기 게양대 주변이다. 서편 울타리 펜스 가장자리와 뒤뜰 절개지 옹벽 위에도 심어두었다. 앞으로 김을 한 차례 더 매고 웃거름도 더 내줄까도 생각하는데 그 시기를 가늠 중에 있다.
교정 수목에서 여름을 장식하는 두 가지 꽃이 피어 있었다. 국기게양대 근처 두 그루 무궁화가 제철 피운 꽃이었다. 먼저 핀 꽃은 꽃잎이 시들어 떨어져도 새로운 꽃망울에서 꽃잎을 펼쳤다. 또 다른 꽃으로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였다. 자잘한 꽃이 피고 지길 반복해 개화기간이 길었다. 장마철부터 시작 한여름 지나 가을 들머리까지라 백일 동안 피는 꽃이다.
뒤뜰로 가서 쓰레기분리배출 장소에 들였다. 내가 청소지도를 맡은 구역이라 살피는 데다. 주말에 어느 부서에서 행사가 있었던지 빈 도시락들이 가득 나와 있었다. 분리배출이 잘 되었으나 일부는 내가 뒷마무리를 지을 것도 있었다. 교무실로 들어 실내등을 켜고 창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산기슭 숲에서는 매미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일과가 시작되려면 두 시간이 더 남았다. 20.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