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덕유]

                                동반자

                                                                         이종녀

바쁘다는 핑계로 모처럼 오늘에서야 시간을 내었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후배의 근황이 궁금하던 차에 반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미처 연락도 못한 채 조심스럽게 문을 두

드렸다 마침 둘째 아이가 쪼르르 달려나오며 전에 없이 반색을 한

다 그 동안 사람의 정이 어지간히도 그리웠던 모양이다 오는 길에

사온 과자 봉지를 아이의 손에 들려주니 고맙다고 꾸벅거리는 모습

이 너무나 대견스럽다.

아이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선 나는 언뜻 보기에도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옷가지며, 비위가 상할

정도의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집안은 안주인

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된 듯 싶다 아무래도 방안 환기부터 시켜야

겠기에 문이란 문은 모두 열고 훌훌 먼지도 털어 냈다 주방에 냄새

나는 음식 찌꺼기도 화단 옆 흙을 파고 묻어 버렸다. 그렇게 한참 부

산을 떨고나서야 나는 그녀의 딱한 사정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동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남편의 외도 그러다 보니 경제적인

이유에서 오는 삶의 회의는 자연히 남편에 대한 불신과 환멸을 가져

오게 한 것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애들은 어쩌고…………

차마 말을 잊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나에게 아이들은 고아원에 맡

기기로 했단다 그 순간 인간적 배신감에서 오는 어떤 비열함에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간이 이

토록 비겁하고 잔인하게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갑자기 깊은 낭떠러

지로 한없이 곤두박질 치는 기분에 심한 현기증이 일었다. 그렇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도 있다. 하지만 헤어짐에는 분명 시기

와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말 못하는 미물에게도 모성애가 지극하거늘 어찌 인간의

도리로서 감히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게 해주고 싶은

심정으로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지난날 내 삶의 일부분을 털

어놓았다.

어느 누구에게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때가 있었듯이 나

역시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쓰라린 아픔이 있었기에…………

결혼을 한 후 오래지 않아 입덧이 시작 됐다 당연히 기뻐 해야될

일이건만 나에게 있어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농촌 생활에 적응을 못

한 체 염증을 느끼고 있던 나는 어떻게든 이런 현실에서 벗어날 궁리

만 하고 있던 터라 계획 없이 찾아온 생명체는 결코 반갑지 않은 불

청객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삶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며 심지어는 작고 힘없는

생명에게까지 증오와 멸시를 서슴지 않았으니 그 얼마나 어리석고

잔인한 행동이었을까?

바람불어 몹시도 추웠던 날이다 비록 태어나지 않은 생명은 더 이

상의 불행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는지 결국은 엄마인 나에게 반항이

이종녀 217

라도 하듯 심한 통증을 일으키며 작은 생명은 스스로를 포기하고 말

았다.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하지만 이미 그때의 나에겐 인간이 갖춰야 할 도덕성 따위는 안중

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지쳐버린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

다는 충동이 몇 갑절 더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사흘 후 겨우 몸을

추스르고 병원 문을 막 나서려 하니 마침 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부르

셨다.

양지 바른 언덕에 묻어 줘요."

하얀 종이에 싸여 있는 조그마한 상자를 본 순간 뜨거운 피가 온몸

을 휘감고 마침내 죄인이 된 나는 애절하게 통곡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고 참회의 눈물이었다.

그 일이 있음으로 인해 나의 삶은 새롭게 존재했으나 그날의 아픔

은 언제나 슬픈 멍에가 되어 가슴속 깊숙이 남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숱한 사람들과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한

다. 옷깃을 스치며 지나는 것도 인연이라고 한다면 살을 비비며 사는

부부야말로 천상배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인륜과 도덕성을

망각한 채 쉽사리 가정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고 있어 사회

에서는 커다란 문제로 지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고단한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현실을 외면하고 싶

을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누구나 겪고 지나가는 홍역과 같

은 열병이건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평범한 진리를 외면한 채 살아

가고 있다.

남녀가 만나면 반은 희생이요 나머지 반은 사랑이기에 1+1=2가

아닌 1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합쳐지면 하나가 되고 그것은 곧

가족이라는 구성원의 원리가 된다고 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 듯 싶지만 요즘 세태에 보여지는 현실은 풀기 어려운 숙제 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이해

한다면 결코 이렇게 어리석은 문제만큼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다.

            2001  9집

[이현자]

남녀가 만나면 반은 희생이요 나머지 반은 사랑이기에 1+1=2가
아닌 1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합쳐지면 하나가 되고 그것은 곧
가족이라는 구성원의 원리가 된다고 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 듯 싶지만 요즘 세태에 보여지는 현실은 풀기 어려운 숙제 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이해
한다면 결코 이렇게 어리석은 문제만큼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