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제왕이라 불리는 수리부엉이입니다.
아래 내용은 과학자들의 의견에다가 제 개인적인 의견을 첨가한 것이므로 전혀 뇌피셜만은 아닙니다.
원래 바이러스라는 것은 동물(인간도 해당하지만) 특히 야생 동물을 숙주로 삼아서 살고 있는 미생물인데 개인적인 뇌피셜을 더해보자면 조물주가 동물들의 개체수를 조정하려고 바이러스를 심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물들이 대체적으로 인간에 비해 수명이 짧은 것이죠.
게다가 자연의 생태계는 정교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먹이 사슬로 구성되어 있어서 적절한 개체수
조절을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대략 상위 포식자들은 숫자(새끼 번식)가 적고 하위
피식자들은 개체수(새끼 번식)가 많은 법이죠.
요컨대 과학자들의 의견은...날이 갈수록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야생 동물들의 터전이 사라져서
야생 동물들이 죽거나 생존을 위해 부득불 민가 주위로 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멸종 위기와 생존 위기에 처한 야생 동물을 숙주로 삼고 있는 바이러스 또한 생존을 위해서
숙주를 갈아타게 되는데, 그 대상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죠.
의학이 발달하지 않고 전쟁과 기근이 끊이지 않던 옛날에(불과 100년 전만 해도)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4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0이 넘으면 오래 살았다고 환갑 잔치하면서
축하해주던 것이 불과 몇십 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중국넘들은 세계적인 희귀동물인 천산갑을 비롯하여 박쥐까지 잡아먹어대고 있는데,
바이러스들도 자연스레 숙주를 갈아타게 된다는 것이랍니다.
지금은 소,양,닭, 돼지, 오리 등등 가축으로 분류되는 많은 동물들이 도축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충분히 조리(익혀먹기)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위험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육류를 날것으로 섭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부터 부처 같은 선각자들이 육식을 금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도 바이러스 때문에 생지옥인데 의술도 발달하지 못하고 비위생적인 과거에는 소위
역병이라고 해서 엄청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해왔죠.
심지어 개와 고양이 같은 소위 반려동물들한테도 이름 모를 불치병이 옮겨와서 죽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야생 동물들은 야생의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놔두는 것이 상책이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것이 야생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좋은(자연스러운) 것이다.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무분별하게 야생 동물을 잡아먹으면 결국 양쪽 모두 화를 입게 된다.
야생 동물 속의 바이러스가 인간으로 숙주를 갈아타기 때문이다.
신(조물주)이 벌을 주는 게 아니라 인간들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옛날 예언서들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세계적인 역병이 여기저기 할 것 없이 창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나중에는 산 사람들이 오히려 죽은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된다'는
무서운 말도 나옵니다.
작금의 코로나바이러스만 해도 이대로 확장되면서 1년만 지나더라도(벌써 3개월)
거의 모든 산업이 마비가 되고, 자영업자들 거의 문 닫아야 하고, 실업자가 양산되면서
생지옥으로 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어지는 과정은 무정부 상태와 폭동 뿐이죠.
어쩌면 그토록 많이 만들던 좀비 영화처럼, 또는 과거의 예언서에서 언급하는 역병으로 인한
세계적인 대재앙이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병에 걸리건 안 걸리건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가 어쨋든 사라진다고 해서 인간들이 앞으로 정신을 차리게 될까요?
아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직전으로 돌아가서 하던 짓 그대로 하겠죠.
제가 이전에도 몇번이나 말씀드렸지만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富(돈)와 고도의 문명이
아니라 쾌적하고 살기 좋은 자연 환경입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세계적으로 공기질은 좋아졌다고 하죠.
(초)미세먼지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자기 집에 공기정화기나 산소호흡기
를 설치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까요?
지금부터라도 지구촌의 환경 파괴를 막는 일에 온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합니다.
때를 놓치면 모두가 그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
첫댓글 얼마전에 종영됐던 방법이란 드라마가 떠올려 집니다.
참 재미있게 보았는데.. ㅎㅎ
잘 읽었습니다.
거시적으로 성찰할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