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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은 가장 나이가 어린 청년인 후이(Huy) 님이 했습니다.
스님은 많은 지혜를 갖고 있는데, 비결이 무엇인가요?
“스님을 보면 참으로 현명하시고 박학다식하다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세상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 대해서도 잘 알 수가 있나요?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우선 고생을 많이 해야 합니다. 감옥에도 갇혀 보고, 왕따도 당해 보고, 비난도 받아 보고, 어려움도 겪어 보고, 굶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하게 되면 일단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아상(我相)이 사라집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는 붓다담마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붓다담마는 사물이나 현상을 부분적으로 보지 않고, 전체적으로 바라봅니다. 이것을 통찰적 지혜라고 해서 ‘통찰지’라고 합니다. 어떤 상황이든 전체적으로 살피면 아무런 괴로움이 없습니다. 이런 이치를 마하야나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공(空)이라고 하고, 테라밧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이라고 합니다.
또한 주어진 상황에 맞게 세세하게 판단하는 것을 ‘분별지’라고 합니다. 통찰지가 있으면 괴로움이 없고, 분별지가 있으면 대중을 교화할 수 있습니다. 대중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분별지가 필요합니다.
어떠한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볼 때 무엇은 옳고 무엇은 그르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바라보면 지혜의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사실을 ‘이런 일이 있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살면서 고생을 아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렇게 설명을 했지만 곧바로 이해가 안 될 거예요. 머리로 아는 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고, 아는 걸 바탕으로 직접 하나씩 경험을 해야 합니다. 물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식은 진리가 아니고 다만 세상이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정보입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저는 제 나이가 일흔이지만 경험한 것으로 따지면 300살 인지도 모른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제가 자란 환경이 많은 밑거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한국 농촌의 모습은 300년 전 사람들이 살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가 살아온 환경을 잘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300년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살아온 경험 자체가 저한테는 빅데이터가 되는 것이죠. (웃음)
그리고 저는 구호 활동을 하기 때문에 많은 나라를 다닙니다. 대부분 어려운 나라들을 방문하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는 그들과 같은 삶의 모습으로 생활을 합니다. 이런 활동들도 저한테 많은 데이터와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 같아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지난 열흘 동안 한국에서 공부한 게 도움이 됐습니까?”
“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견학하면서 배운 경험을 잘 살려서 여러분이 사는 곳에서 좋은 활동을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자는 것은 지금 당장은 좋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 놓고 보면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게 없습니다. 이런 것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 오히려 삶의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데에 장애가 됩니다. (웃음)
좋은 음식을 먹겠다, 좋은 옷을 입겠다, 좋은 집에서 자겠다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좋은 담배를 피우겠다, 좋은 술을 먹겠다, 좋은 마약을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담배라고 하더라도 담배를 아예 안 피우는 것보다 못하고, 아무리 좋은 술이라고 하더라도 술을 아예 안 마시는 것보다 못하고, 아무리 좋은 마약이라고 하더라도 마약을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모두 건강에 해로울 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중독이 되면 거기로부터 헤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붓다는 왕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세상 그 누구보다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집을 가졌지만, 그 중독성에서 벗어나서 아주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부처님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반면, 세상 사람들을 한번 보세요. 매일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 얼마나 많은 신경을 씁니까? 자기가 힘들게 노동한 돈을 전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집에 씁니다. 특히 집을 사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씁니다. 그러나 정토회에서 수행자로 지내면 일단 먹는 것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옷은 늘 똑같은 옷을 입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어디서 자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모두가 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들이 조금 더 건강하게 생활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행복해 보일지 모르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실제로 불행합니다. 이미 지나친 소비주의에 중독되어서 건강성을 많이 잃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만 하면서 자라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생활력이 떨어집니다.
여러분은 잘 먹고 뚱뚱한 게 좋아요? 여러분처럼 날씬한 게 좋아요? 세계에서 비만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베트남입니다. 이것은 베트남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가장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미국에 가보면 비만인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영양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음식을 줘서 해결할 수 있지만, 비만이 된 사람은 스스로 자각하지 않는 한 옆에서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이건 중독성으로 인한 문제이기 때문에 돈을 아무리 줘도 해결할 수가 없어요. 음식을 과다섭취해서 비만이 된 사람을 해결할 수 없듯이, 소비에 중독된 것도 치료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한국처럼 사회가 발전한 나라라고 반드시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은 스님이 베트남에 가서 활동을 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고 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네. 베트남에서도 즉문즉설과 같은 법회를 진행하시면 아주 인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제가 베트남으로 가서 활동을 할까요?”
“네, 꼭 오세요.” (모두 웃음)
스님의 질문에 베트남 청년들은 아주 기뻐했습니다. 내일 아침 발우공양 시간에 작별 인사를 하기로 하고 저녁 7시에 대화를 마쳤습니다.
저녁반 전법회원 법회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전법 회원들을 위한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전법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오전처럼 정토연수원에서 무변심 법사님이 정일사(정토를 일구는 사람들) 수련 입재에 대해 안내를 한 후, 전법회원 모두가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정일사는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이라는 전법회원들의 정기 수련 프로그램의 약자입니다. 출가한 스님들이 일 년에 두 번 안거를 통해 수행의 깊이를 더해 가듯이 정일사는 수행자인 전법회원들의 안거에 해당하는 집중 정진 프로그램입니다.
스님은 정진을 시작하는 전법회원들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전법회원은 모두가 수행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2주간 수행에 집중하는 안거 기간에 들어갑니다. 정토회의 정체성은 수행 공동체입니다. 즉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정토회는 사회실천 운동도 하고, 전법도 하고,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많은 일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활동이 정토회의 정체성이 아니에요. 정토회의 정체성은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자유롭고 행복해지도록 한 후 그런 토대 위에 전법도 하고, 어려운 사람도 돕고, 지구환경을 살리는 실천도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남을 위하기 이전에 자기를 아름답게 가꿔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행이 근본 바탕이고, 항상 수행이 먼저입니다.
과거에는 여러분도 돈이 먼저이고, 출세가 먼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삶에 지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잖아요. 그런데 부처님 법을 만나고 정토회를 만나서 수행이 먼저라는 관점을 가짐으로 해서 마음도 아주 가벼워지고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이 좋은 법을 이웃과 같이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여러분은 그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서 봉사를 하고, 보시를 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사회 활동과 전법 활동이 여러분에게 또다시 부담을 주는 일이 됐습니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좋은 일들이 여러분들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어서 그로 인해 도반과 갈등도 생기고, 마음에 부담도 되고, 인생이 쫓기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 거죠. 그래서 다시 세상살이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예전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직장을 그만둘까’, ‘이혼을 해버릴까’, ‘집을 나가버릴까’ 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지금은 ‘정토회를 그만둘까’, ‘전법회원을 그만둘까’, ‘임원을 그만둘까’ 하는 식으로 과거와 똑같이 마음이 돌아가게 된 겁니다. 그러나 ‘전법회원을 그만둔다’, ‘수행을 그만둔다’, ‘정토회를 그만둔다’ 이런 해법은 부부지간에 갈등이 있으니까 이혼해 버리는 해법과 하등 차이가 없어요. 직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만두어 버리는 해법과 똑같은 겁니다. 수행은 그런 식으로 문제를 푸는 게 아닙니다.
‘직장이 문제가 아니고, 남편이나 아내가 문제가 아니고, 그 원인은 나의 어리석음에 있다’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로 돌이켜서 세상의 관계는 그냥 두고도 내가 자유로워지는 길을 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 힘으로 전법도 하고, 사회 실천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거꾸로 이런 활동들이 부담이 되어서 또 수행을 놓치고 있어요.
항상 수행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일 년 중 두 차례는 혹시 우리에게 이런 모순은 없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또 사로잡히고 지쳐서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거죠. 그래서 일만 하기에도 벅찬 상황일지라도 이 기간 동안은 추가로 정진을 해야 합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추가로 정진을 하는 것이 힘든 일 같죠? 그런데 여러분은 옛날에도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서 불교대학도 다니고, 경전대학도 다니고, 실천 활동도 했지 않습니까? 그때도 무척 바빴지만 내적 스트레스가 없어졌잖아요. 그런 것처럼 정진이라는 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입니다.
불교대학 진행하랴, 경전대학 진행하랴 무척 바쁘겠지만, 이 기간만이라도 정진을 더 우선시해야 바쁜 가운데 수행자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활동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 활동을 오래 지속할 수 있어요. 아무리 좋은 일도 중간에 지쳐서 나가떨어지면 일시적인 효과만 나지 결국은 활동이 중단될 수밖에 없어요.
개인을 위해서도, 정토회를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여러분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고 건강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나도 좋고 너도 좋게 됩니다. 그런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정일사 기간에는 집중해서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처럼 3개월은 정진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2주는 정진을 하자는 의미에서 정일사 프로그램이 마련된 거예요. 정진을 하면서 각자 본인이 가진 문제점을 도반과 나누며 함께 풀어 나가자는 취지입니다. 오늘부터 2주간 정일사 정진이 진행되니까 여러분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활동을 하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밤 9시가 되어서 법회를 마쳤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베트남 청년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발우공양을 함께 하는 것을 끝으로 베트남 청년들과 작별 인사를 한 후 오전에는 인도 성지순례 실무준비팀과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울산교육청 초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