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信信也-믿을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疑疑亦信也-의심할 것을 의심하는 것도 믿음이다.
貴賢仁也-어진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어짊이고,
賤不肖亦仁也-못난 자를 천하게 보는 것도 어짊이다.
言而當知也-말하여 바로잡는 것도 앎이고
默而當亦知也-침묵하여 바로잡는 것도 앎이다.
故知默猶-이 때문에 침묵을 안다 함은
知言也-말할 줄 아는 것과 같다
순자(荀子) 비십이자편(非十二子篇)
청양고추보다 멕시코고추를 더 요구하는 인간사회 !!
논어(論語) 제7편 술이(述而) 20장
子 不語 怪 力 亂 神.
공자께서는
괴변(怪變)과 폭력(暴力) 세상을 어지럽히는 반란(反亂)
그리고 귀신(鬼神)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공자(孔子)의 정치사상 정치철학은 고대 중국 주(周)나라 주공(周公)의
이성(理性)과 인간성(人間性) 각성(覺醒)과 문물제도(文物制度)에
바탕을 둔 인문정신(人文精神)과 합리주의(合理主義) 실용(實用)
철학(哲學)이며 현실적인 것이다.
공자(孔子)의 사상은 이상야릇하고 초자연적(超自然的)인 것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다른 종교가 하듯이 보여주지 않았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
불교에서 인간에게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 극락세계 등
그러한 관심을 배제(排除)하였다.
위에 논어 본문(本文)에
怪 力 亂 神(괴 력 난 신)
넉자가 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의 넉자(四字)를
▷괴력(怪力) 두자를 떼어 읽어 “도리에 어긋난 대단한 힘(勇力)”
▷난신(亂神)은 “옳지 못 한 신(神)”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 넉 자를 따로따로 읽는다.
공자(孔子)는
“괴력난신(怪力亂神)” 이 네 가지를 말하지 않는 이유를
“가르쳐서 착한 길로 인도(引導)하는데 유익(有益)함이 없어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성인(聖人)은 특별하고 남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보다
대수롭지 않고 예사(例事)로운 것(平凡)을 말한다.
괴상한(怪)것은 말하지 아니하고
덕(德)을 말한다.
초인적(超人的)인 힘(力)을 말하지 아니하고,
질서로 다스림(治)을 말한다.
어지러운 난(亂)을 말하지 아니하고,
땅위의 주인인 사람을 중심으로 말하며
이상야릇한 신(神)을 말하지 아니한다”고
옛 지식인들(古註)은 논어(論語)의 이 장(章)의 의미를 옳게 설명 하였다.
액션(action)과 서스펜스( suspense) 스릴(thrill)!!
이 세단어가 눈만 뜨면 마주하는 TV 화면이다.
또 이 단어가 붙는 장면이라야
칭찬(稱讚)과 찬양(讚揚) 아우성의 댓글이 붙는다.
잘 만들어졌다고 칭찬 받고 성공한 영화나 TV 화면의 대부분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의 괴상한 스토리 폭력적인 언행 부도덕하고
난잡하게 얽힌 인간관계 인간역사에서 한 번도 현실(現實)이 되어 본적이
없는 귀신이야기 등의 내용이다.
예를 들어 최근 TV를 점령한 “파묘(破墓)”등이다.
돈벌이 흥행(興行)을 위해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자들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의 강도(强度)를 가능한 한 높이려고 한다.
청양고추보다 멕시코 하바네로(habanero)고추를 요구하듯
갈수록 강한 양념이 배인 세상이야기를 더 요구한다.
스릴(thrill)에 맛 들린 사람들은 갈수록 강한 황홀감 흥분 설렘이 있는
내용을 요구한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맨 끝(極點)을 향해 올라갈 수밖에 없다.
2500년 전 공자(孔子)는 인간의 품성(品性)을 예견(豫見)하고,
인간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이야기는
어쩌다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사람의 마음을 악(惡)하게 할 수 있음을
염려하여 아예 제자들을 가르칠 때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입에
담지를 않았다.
불교나 기독교가 유교(儒敎)를 나쁘게 말한 것도 여기에 원인이 있다.
이런 공자(孔子)의 영향으로 중국에서는 소설(小說) 희곡(戲曲)등
구전문학(口傳文學 이야기문학)의 발달이 늦어졌다고 역사가들
문학평론가들은 말하고 있다.
대신 동양은 사람의 온순하고 인정이 두터운(淳厚) 정서(情緖)를
좋게 쌓아 가는데 도움이 되는 시(詩)가 크게 성(盛)했다.
신라 백제 고구려에서부터 조선조까지 훌륭한 시인들이 많다.
이야기를 특별히 가려서 좋아한 서양(西洋)이 셰익스피어(Shakespeare)
같은 극작가(劇作家)를 세상에 내어 보낸 반면에
동양의 중심이었던 중국에서는 이백(李伯), 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
같은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걸출한 시인(詩人)이 배출된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시(詩)라고 해서 다 순하고 후한 것도 아니다.
이야기라고 해서 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인 것도 아니다.
염려스러운 것은 지나치게 자극적(刺戟的)으로 변화되는 문화가
사람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어느 방향으로 갈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