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서울행 기차에 올라
유리창 무심코 바라보다가 헉 소스라치네
커다랗고 짙붉은 서녘 해에
종일토록 경작했던 하루가
맥 없이 스러져가는 먼 수수밭이네
저문 江이 한사코 기차를 따라오지만
어두워지는 저 강물빛, 저 강의 얼굴이 이제는 슬프지 않네,
저 강물을 만나며 내가 울었던 건
… 사 람 때 문 이었네
그러나 이 저녁 어둠 밀물 쳐 든 막막허공에
동, 동 동동… 이승인 듯 저승인 듯 따라오는 둥근 저 등불은
다정하지 못한 운명, 축복의 등 비출 일 없는
남은 내 길을 위로하고 싶은
그 사람인가
부고도 없이 죽은 그 사람인가
〈안영희 시인〉
△ 1943 광주 출생
△ 1990 시집『멀어지는 것은 아름답다』로 작품 활동 시작
△ 시집 '내 마음의 습지','가끔은 문 밖에서 바라볼 일이다',
'물빛창','그늘을 사는 법','내 마음의 습지','어쩌자고 제비꽃'
△ 도예개인전『흙과 불로 빚은 詩』경인미술관
△ 현재《문예바다》편집위원
△ 문예바다 문학상 수상
사진 〈Bing Image〉
모 닥 불
안 영 희
아무도 혼자서는 불탈 수 없네
기둥이었거나 서까래,
지친 몸 받아 달래 준 의자
비바람 속에 유기되고
발길에 채이다 온 못질투성이,
헌 몸일지라도
주검이 뚜껑 내리친 결빙 등판에서도
불탈 수 있네
바닥을 다 바쳐 춤출 수 있네
목 아래 감금된 생애의 짐승울음도
너울너울
서로 포개고 안으면
사진 〈Bing Image〉
봄
안 영 희
우리들의 눈물에다 색색 물감을 풀기 시작하는 당신
사진 〈Bing Image〉
찔 레
안 영 희
누가
지등紙燈을 걸고 있니
불 꺼진 기인 회랑에
누가 질주하다 넘어져 운
불과 바람의 사계 돌아봐, 돌아봐 하는 거니
부재인 듯 종일토록 머릴 박은
노동의 손을 씻으며
시나브로 지워지고 있는 이 저녁답
사람아, 나도 저 흰 꽃이고 싶다
가만한 향내 허기 지운 저 눈빛으로
문득 읽히고 싶구나
지친 귀로의 그대에게
사진 〈Bing Image〉
숯 불
안 영 희
우리는 왜 온전히 타지 못했을까
컥컥 숨차고
목이 아파 울었을 뿐
아무리 애 태워도 매운 연기만 피어올랐다
그때는,
무엇이 되기엔 너무 이른
준비 없는 열정, 생나무 가지들이었을까
햇빛과 바람의 거리 알 수 없는 눈보라의 골짜기
천만 개 밤을 헤매느라
그 피 삭고 물기 다 말려
꽃처럼 아름답게, 꽃보다 처절하게
불로 피어나는 몸
사진 〈Bing Image〉
철 새
안 영 희
새벽 산길을 가네
덜 떨친 잠과
더께 진 미혹의 유리창,
내 영혼
햇푸성귀 잎사귄 양 헹궈 올리며
샘물 찰박대던 새소리들
들리지 않네
나무들 울울창창하던 때
새들의 시간, 하고 내가 이름 불렀던
바로 그 시간대인데
없네, 지금 저 숲에는 그 이쁜
새들의 기척이라곤 없네
아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네
그대 떠나가 버린 빈숲,
우리가
그 누구의 생애에도
지 나 가 는 철새임을 알지 못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