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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종말론 : 제 1 장 성도의 염원 (2)
3. 이 세상과 오는 세상
인류는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이 세상으로 추방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정한 일정한 기간동안 죗값을 치러야 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 엡 2: 2 -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세대)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고전 15: 19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야고보 사도는 이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가르치고 있다.
* 약 4: 4 - 간음한 여인들아(간음한 사람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하셨다.
* 요 3: 16-21 -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정죄)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정죄)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참)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 요 8: 2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요 18: 36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 엡 1: 21 -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 요1 2: 15-17 –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리고 이 세상은 끝 날이 있다. 다라서 성도들은 오는 세상에서의 삶을 염원한다.
* 요 12: 31 -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 계 11: 15 -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 히 2: 5 -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여 구속받기를 원한다.
* 마 12: 32 -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1] 이 세상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의롭다고 하심을 얻었는데 왜 죽는가? 성도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도가 죽는 이유는, 주의 재림의 때가 아직 안 되었기 때문이다. 주의 재림의 때가 되면, 죽은 성도들은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며 살아 있던 성도들은 죽지 않고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 살전 4: 16-17 -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어떤 이들은 성도들의 영은 구원받았으나 몸이 아직 구원받지 못하였고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그 몸이 죗값으로 죽는다고 말한다.
성도들의 몸의 구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 롬 8: 23 -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救贖)을 기다리느니라.
그러나 성도들의 몸이 그 죗값으로 죽는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赦罪)와 칭의(稱義)는 성도의 영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영육 전체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육의 모든 죄를, 또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다. 우리의 영뿐 아니라, 영육의 연합체인 ‘우리’라는 인격체가 의롭다고 하심을 얻은 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도들의 죽음은 죄의 형벌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죽음은 결코 슬프고 두려운 사건이 아니다. 성도는 죽은 후 그 영혼이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성도의 죽음은 오히려 기쁨과 기대와 소망의 사건이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도 이 땅에서 여러 가지 고난들을 경험하지만, 그러한 고난들은 슬픈 일들만이 아니고 또한 많은 유익이 있는 일들이다.
고난은 성도들의 인격을 단련시킨다. 성도들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주시는 마지막 고난이며 마지막 훈련의 과정이다. 죽음이 있기에 성도들은 더욱 깨어 있고 더욱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될 수 있다. 육체적 죽음은 성도에게 큰 유익을 주는 사건이다.
(1) 육체적 죽음은 몇 가지 점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다.
① 육체적 죽음은 각 사람의 생애의 마침이다.
죽음으로 마감된 그의 일생은 하나님 앞에서 평가될 것이다.
② 육체적 죽음은 각 사람의 영혼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는 죽을 때 그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가고, 불신자는 죽을 때 그 영혼이 지옥으로 들어간다.
③ 육체적 죽음은 각 사람의 영원한 상태로 고정시킨다.
그 후에는 그 상태를 변경시킬 수 없다.
육체적 죽음 후에는 사람의 구원이 가능하지 않다.
* 눅 16: 26 -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고정된 큰 간격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 히 9: 27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 육체적 죽음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각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성도는 자신의 생애를 아름답게 마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최종적인 심판은 인간의 사후, 즉시, 개별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이 세상의 마지막 날 백보좌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포된다.
* 롬 14: 10 -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 단 7: 10 -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 계 20: 12-15 -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일단 생명이 끝나면 더 이상 최후 심판에 영향을 끼치는 회개와 범죄가 없다.
* 시 6: 5 -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 눅 16: 25-26 - 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 히 9: 27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육체적 죽음을 통하여 영과 육이 분리되어 영혼은 중간기 처소로 들어가고, 육은 완전히 부패하여 본래의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성도들은 첫째 부활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새 육체를 갖게 된다.
* 전 3: 21 - 인생의 혼(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영)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 전 12: 7 -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 고전 15: 44, 51-53 -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2] 중간기
인간이 죽은 후 부활할 때까지 영혼이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있는지 여러 가지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1) 로마 가톨릭의 견해
① 천국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된 후에 선행과 공적을 쌓은 자는 즉시 천국으로 간다.
② 지옥
영세를 받지 못한 성인이나 영세를 받은 후 치명적인 죄를 지은 자는 즉시 지옥으로 간다.
③ 연옥(煉獄, Purgatory)
영세를 받았으나 완전하지 못한 신자는 고통의 장소인 연옥에서 정화를 거처 천국으로 들어간다.
연옥은 완전히 성화되지 못한 신자들이 죽은 후 들어가 얼마 동안 불의 시련을 통해 정화(淨化)된다는 곳이다. 그것은자신의죄에대한 보속(補贖)이다.
천주교회 교리서는, “고백의 성사로 지옥의 벌은 언제나 사함을 받으나, 세상과 연옥의 벌까지 다 사함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 유한한 벌의 사함을 받기 위해서 신부는 보속(補贖)을 정해준다.
고해 성사를 받은 사람은, 우리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죽으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자기 죄에서 오는 벌을 보상해야 한다.”고 말한다(카톨릭 교리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1967, 148쪽.).
또 그 책은, “대죄(大罪)는 없으나 소죄(小罪)가 있거나 속죄를 다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천국으로 직접 가지 못하고 연옥에서 단련을 받는다.”고 말한다. (카톨릭 교리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1967, 194쪽.).
초대의 어떤 교부들은 정화의 불을 언급했으나, 대 그레고리 교황이 최초로 연옥 교리를 명확하게 언급하였다. 연옥은 지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추정한다. 이 교리는 외경 마카비 2서 12: 42-45에 의존한다.
거기에는 이렇게 말했다. “유다(마카비)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은 이천 드라크마를 모아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 그가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연옥 교리는
ⓐ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인간의 헛된 고안물이다.
ⓑ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들에 배치된다.
ⓒ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공로적 선행이나 교회의 독자적 권세라는 비성경적인 교리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세 말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인 위클리프와 후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인 루터와 칼뱅은 연옥 교리를 단호히 반대하였다.
루터가 작성한 1537년의 슈말칼드 신조는, 교황을 “적그리스도,” 미사를 “가장 크게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연옥을 “용의 꼬리에서 나온 해로운 새끼 우상”이요, “사탄의 미혹”이라고 선언하였다. (루이스 벌코프, 기독교 교리사, 274쪽.).
칼뱅은 연옥을 ‘사탄의 치명적 고안물’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로 만드는’ 오류라고 강하게 비평하였다. (기독교강요, 3. 5. 6).
④ 선조 림보
구약시대의 성도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부활 때까지 기다리며 머문 장소로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뒤 이곳에 내려가 그들을 해방시켜 천국으로 끌어 올리시고 부활하셨다.
⑤ 유아 림보
영세를 받지못하고 죽은유아들이 특별한 형벌이나 행복이 없이 영원히 지내는 장소.
림보(limbus)는 ‘변두리’라는 뜻으로 지옥과 연옥의 변두리를 가리킨다. 천주교회에 의하면, 선조 림보(limbus patrum)는 구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구속(救贖)을 완수하시고 거기 내려오시기까지 기다렸던 곳이며 ‘아브라함의 품’ 혹은 ‘낙원’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또 유아 림보(limbus infantum)는 그리스도인의 자녀나 이교도의 자녀나 유아 시에 죽은 모든 세례 받지 않은 자녀들의 영혼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거기는 하나님을 뵈옵는 복도 없지만, 또한 지옥이나 연옥의 고통 같은 적극적 고통도 없다고 보았다. 그들의 영혼은 영원히 거기에 거주한다고 한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림보 교리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인간적 고안물에 불과하다. 선조림보의근거로 제시되는 베드로전서 3: 18-20은 난해 구절로서 교리적 근거가 되기에는 너무 불확실하다. 그 구절의 가장 적절한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홍수 전에 살았던, 그리고 베드로의 당시에 옥중에 있었던, 그 불순종자들에게 성령으로 노아를 통해 전파하셨다는 것이다.
(2) 성경적 견해
세상의 마지막 날,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영원한 축복과 형벌을 선고받기까지 일단 머무는 처소에 대하여 성경은 결정적인 확증을 말하지 않는다.
이 세상이 존속하는 동안 죽었던 영혼들이 부활의 때까지 머무는 곳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과 지옥의 중간기적 상태인 낙원과 음부를 말한다. 즉 성도들의 영은 낙원에, 불신자들의 영은 음부에 들어간다.
낙원은 이 세상에 비하여 비할 데 없는 즐거운 곳이요, 음부도 이 세상에 비하면 분명히 고통이 있으나 장차 도래하는 오는 세상에 비하면 그림자에 불과하다.
* 눅 16: 22-25 -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 눅 23: 4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 고후 12: 4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 계 2: 7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 계 6: 9-11 –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 계 7: 9-10 –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 계 20: 13 -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3) 영혼불멸
① 보편적 신념
인간 영혼의 불멸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보편적 신념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대체로 영혼의 불멸을 긍정하였다.
세계의 각종 종교들은 인간 영혼의 불멸을 인정한다. 고대의 헬라 철학자들도 인간의 영혼은 육체의 죽음으로 분해될 수 없는 불멸적 실체라고 보았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이 영원을 갈망하는 것은 그것을 충족할 어떤 것 즉 영혼의 불멸을 암시하며, 또 봄에 만물이 소생하는 자연 현상도 영혼의 불멸을 암시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다른 이들은 우주의 도덕 질서가 내세의 심판을 요구하며 이에 근거하여 영혼이 불멸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② 자유주의 신학의 부정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영혼불멸을 부정한다. 예를 들면, 라인홀드 니이버는, “영혼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헬라 사상의 유산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다.
또 폴 틸리히는, “인간의 자연적 특질로서의 불멸성은, 비록 그것이 플라톤의 교리일 가능성은 있을지라도, 기독교 교리는 아니다.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1964, II, 66.)”. “불멸성의 상징이 이 유행하는 미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곳에서, 그것은 기독교에 의해 근본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원에의 참여는 ‘죽음 너머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의 자연적 특질도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1964, III, 409.).
오스카 쿨만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개념[영혼의 불멸]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Oscar Cullmann, Immortality of the Soul or Resurrection of the Dead?,London: Epworth, 1958, p. 15.).
③ 성경적 증거
인간 영혼의 불멸은 성경에 밝히 계시되어 있는 진리이다. 성경은 다음 네 가지 사실들에서 인간 영혼의 불멸을 분명히 증명한다.
ⓐ 성경은 인간의 죽음의 묘사를 통해 영혼의 불멸을 입증한다.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영혼이 몸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 전 3: 20-21 –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 전 12: 7 -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성경은 또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고 묘사한다(창 15: 15. 25: 8. 25: 17. 35: 29. 49: 33. 민 27: 13. 삿 2: 10 등).
* 창 15: 15 -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 창 25: 8 -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모이매].
이것은 분명히 영혼이 무(無)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열조들의 영혼들의 집결지가 있음을 암시한다.
분명히, 이러한 묘사들은 사람의 몸이 죽은 후 그 영혼이 계속 존재함을 증명한다.
ⓑ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 영혼 불멸을 입증한다.
성도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해, 시편 73: 24은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라고 입증한다.
영광 속으로 영접되는 영혼은 의식을 가진 존재임이 분명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영광이 그에게 영광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예수께서도 함께 처형되던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눅 23: 43). 낙원의 즐거움도 영혼이 계속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한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5: 8에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 간증하였다.
악인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해서도, 시편 9: 17은 “악인이 스올[지옥]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라고 증명한다.
또 예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고 증명한다. (눅 16: 23).
악인의 죽은 후 형벌과 고통은 영혼 불멸을 전제한다. 그렇지 않다면 형벌과 고통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 성경은 부활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서도 영혼 불멸을 증명한다.
다니엘 12: 2은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라고 입증한다.
사도 바울도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간증하기를,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라고 하였다(행 24: 15). 의인과 악인의 부활은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 성경은 심판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서도 영혼 불멸을 증명한다.
* 마 10: 28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이런 말씀은 영혼 불멸을 전제한다. 사람은 육신이 죽어도 그 영혼은 불멸한다. 육체적 죽음 후에 그 영혼은 선악 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내세를 생각하며 지금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
(4) 사람의 죽은 후 상태
사람의 몸이 죽은 후부터 부활 때까지의 영혼은 사람의 최종적 상태인 부활에 비추어 볼 때 아직 과도기적 상태에 있다. 그 때 영혼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사람의 육체적 죽음 후의 영혼의 상태에 관한 성경적 견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1에 잘 진술되어 있다. : 의인의 영혼들은 그 때에 완전히 거룩해져서 가장 높은 하늘로 영접되어, 거기서 빛과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들의 몸들의 충만한 구속을 기다리고, 악인들의 영혼들은 지옥에 던지워서, 거기서 고통과 전적인 어두움 속에 머물며 큰 날의 심판 때까지 보존되어 있다. 몸들과 분리된 영혼들을 위해 이 두 장소 외에 성경은 다른 아무 곳도 인정치 않는다.
① 의인의 죽은 후 상태
의인은 죽을 때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해져서 천국에 들어가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거기서 몸의 구속의 날을 기다린다.
그 때 의인이 누리는 영광은 그 정도에 있어서 최종적 천국의 영광과 다를지라도, 동일한 성질의 영광이다. 의인의 죽은 후 상태는 참으로 복되다.
ⓐ 구약성경의 증거
구약성경은 구약 성도들이 죽은 후 영광과 안식의 세계에 들어감을 증거 한다.
* 시 73: 24 -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죽은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성도가 몸이 죽은 후 영광 가운데 영접할 처소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이다.
* 시 16: 10-11 - 10 이는 내 영혼을 스올[음부, 지옥]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은 죽음 후의 생명의 길을 전망하였다.
* 시 49: 15 -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음부, 지옥 혹은 무덤]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 사 57: 2 - 그들은[그 의인은 죽어]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였다.
* 신 33: 3 -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 도다.
* 시 73: 23-24 –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 시 119: 103, 127 –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이러한 교제를 통해 확실히 영생을 얻었고 천국에 들어갔다. 칼뱅은 적절히 말하기를, “확실히 그들은 하나님의 영생의 나라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 안에 연합되었고, 그 연합은 영생의 복 없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기독교강요, 2. 10. 7).
구약성경이 증명하는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은 구약시대의 성도들도 천국 영광에 참여하였다는 예들이다.
* 창 5: 24 -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왕하 2: 11 -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갔다.
ⓑ 신약성경의 증거
신약성경도 같은 진리를 증언한다.
* 눅 16: 22 -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 되매
아브라함의 품은 소올[음부, 지옥]와 대조되었으므로 음부의 일부가 아니다.
* 고후 5: 8 -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 빌 1: 23 -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 히 12: 23 -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그들은 다 하늘 곧 천국에 있다!
* 눅 23: 4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낙원은 확실히 천국과 동의어이다.
* 고후 12: 2, 4 –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 계 2: 7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 히 4: 10 -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② 악인들의 상태
악인은 죽은 후 그 영혼이 지옥에 던져져 고통의 형벌 가운데 거하며 거기서 마지막 심판의 날을 기다린다.
악인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들어갈 지옥(쉐올 לוֹא 혹은 하데스 ᾅδης)은 마지막 부활 후 영육의 결합체가 들어갈 지옥(게헨나 gέεννα, 불못)과 같은 성질의 형벌의 장소이다.
악인의 죽은 후 상태는 참으로 불행하고 비참하다.
ⓐ 구약성경의 증거
구약성경은 많은 구절에서 악인이 죽은 후 ‘음부’(陰府, 쉐올 לוֹא)에 들어간다고 표현하는데, 그 말은 지옥을 가리킨다. 즉 악인은 지옥에 던져진다.
성경에서 죽음이 포괄적인 의미가 있듯이, 쉐올이라는 말은 포괄적인 의미가 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몸이 묻힐 무덤을 가리키기도 하나, 또한 악한 자들의 영혼이 들어갈 지옥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것은 어떤 구절에서(예를 들어, 창세기 37: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야곱이]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음부]로 내려가[죽어 혹은 무덤에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그 외에도 흠정 역 영어 성경에서 쉐올을 ‘무덤’으로 번역한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창 42: 38. 44: 29, 31. 삼상 2: 6. 왕상 2: 6, 9. 욥 7: 9. 14: 13. 17: 13-16. 21: 13. 시 6: 5. 30: 3. 31: 17. 49: 14-15. 88: 3. 89: 48. 141: 7. 잠 30: 16. 전 9: 10. 아 8: 6. 사 14: 11. 38: 10, 18. 겔 31: 15. 호 13: 14.)
무덤(무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히브리어는 케베르 ר이다.)을 가리키지만, 다른 구절에서 명백히 악인의 미래의 형벌의 장소 즉 지옥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에서 쉐올이라는 말 외에 악인을 위한 미래의 형벌의 장소를 가리키는 다른 말이 없다. 그러므로 옛날 영어 성경(KJV)은 쉐올을 grave(무덤)로 31회, hell(지옥)로 31회, pit(구덩이)로 3회 번역하였다.
쉐올이 지옥을 가리키는 구절은, 악인에 대한 형벌의 선언에 사용되었거나 형벌의 장소로 언급되거나 영적인 죽음과 관계되거나 천국과 대조되는 경우 등이다. 대표적 예는 다음과 같다.
* 시 9: 17 - 악인들이 스올[음부, 지옥]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 사 14: 15 - 바벨론 왕에 대해 -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음부, 지옥]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덜어짐을 당하리로다.
* 욥 11: 8 -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 욥 26: 6 - 하나님 앞에는 스올[음부, 지옥]도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 잠 7: 27 - 그 집은 스올[음부, 지옥]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 사 24: 22 -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 같이 모이게 되고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
이 말씀은 신약성경의 증언과 일치한다.
ⓑ 신약성경의 증거
신약성경은 악인이 죽은 후 어두운 지옥에 감금되어 고통을 당한다고 증언한다. 악인의 죽은 후 상태를 증언하는 신약성경의 대표적인 구절은 누가복음 16: 19-31이다.
* 눅 16: 19-31 –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 구절은 예수께서 친히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대해 증언하신 가장 중요한 말씀이다. 만일 이 구절이 비유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증언하는 바는 너무 구체적이고 분명하기에 다른 해석을 할 수 없다.
누가복음 16: 19-31은 분명히 다음 네 가지 진리를 증거 한다.
㉠ 사람의 영혼은 불멸하다는 것이다.
부자도 거지도 죽었으나(22-23절) 그들의 죽음 후에 두 세계가 있다.
죽은 그들의 영혼들은 의식을 가진 채 안식과 고통의 두 대조되는 상황에 부닥쳐 있었다.
㉡ 세상에서의 삶과 죽은 후의 상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호화로이 즐기며 살았고(19절) 좋은 것을 누렸고(25절),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었고 헌데로 고생했고(20-21절) 고통 속에 살았다(25절).
그러나 죽은 후에, 부자는 음부(하데스)에서 뜨거운 불 가운데서 고통을 당했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안식과 위로를 얻었다(22, 25절). 여기의 ‘음부’(하데스)는 분명히 지옥이다.
㉢ 사람의 죽은 후의 상태는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6절,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카스마 메가 에스테릭타이 χάσμα μέgα ἐστήρικται, 고정된 큰 간격이 있어서]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죽은 후에 제2의 기회는 없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전도의 절박한 필요성이 있다.
㉣ 하나님이 뜻하신 구원의 방법은죽은 자가 살아서 전하는 것, 즉 기적을 통한 방법이 아니고, ‘모세와 선지자들’(29, 31절) 즉 그들의 글인 성경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이처럼 누가복음 16: 19-31은 악인이 죽은 후 지옥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언한다.
따라서 신약성경에 하데스(ᾅδης)라는 말은 구약성경의 쉐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주로 지옥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옛날 영어 성경(KJV)은 하데스를 hell(지옥)로 10회, grave(무덤)로 1회 번역하였다.
* 벧후 2: 9 -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이 구절은 베드로후서 2: 4과 더불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후서 2: 4은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말한다.
악한 천사들은 지옥, 어두운 구덩이 즉 어두움의 사슬에 묶여서(전통 사본) 심판 때까지 있다. 지옥은 어둡고 속박되어 있는 곳이다.
이처럼 불의한 자도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보존되는 것이다. 그들이 있는 곳은 확실히 악한 천사들이 감금된 곳과 같은 지옥이다.
* 유 1: 6 - 또 자기 지위[혹은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역시 악한 천사들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 중에 큰 날의 심판 때까지 감금되어 있다.
악인의 죽은 후 상태에 대한 성경 진리는 참으로 두렵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를 회개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각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확보하고 확신해야 한다. 또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힘써 전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