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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1: 43. 열매 맺는 백성 - 마 21: 46. 무리를 무서워하니
마 21: 43. 열매 맺는 백성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
이 비유의 요점은, 의롭고 선한 행실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의롭고 선한 행실이 있는 신약교회가 그것을 대신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의롭고 선한 행실과 삶이며, 참된 구원은 그런 행위와 삶으로 나타난다.
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통치가 유대 지도자들의 권세 밖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 자격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옮겨지는 혈통상의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행 13: 46 –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 행 18: 5-6 –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 벧전 2: 9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은 하나님의 권세로 율법을 전달하던 특권을 가진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 권한을 박탈당하고 그 나라의 의와 성령의 열매를 맺는 백성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특권과 사명을 갖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긴 너희'는 율법사, 서기관 등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자들'은 예수의 제자들로 볼 수 있다.
2]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1절의 주인이 올 때의 강해를 참조하십시오.
마 21: 44. 돌 위에 떨어지는 자 -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
메시아께서는 돌에 비교되었다.
* 단 2: 34-35 -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이 돌은 구원과 심판의 돌이다.
악하고 완고한 자도 이 돌 위에 떨어지면 심령이 부서질 것이다.
1]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구절은 사 8: 14,15와 단 2: 35의 내용을 배경으로 한다.
* 사 8: 14-15 – 14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15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 단 2: 35 -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예수는 모퉁이의 돌로서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지만 악한 자들에게는 멸망을 가져다주는 돌이 되신다.
칼뱅(Calvin)은 이 돌을 유대 백성들의 외고집의 돌멩이로 이해하여 그리스도께서 는 그의 견고하심으로 그 돌을 파멸케 하시고 더욱 영광을 얻으실 것이라고 하였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와 '이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면'의 경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견해들이 있다.
Ⓐ 전자는 통회하는 심령으로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자요, 후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비천한 출생과 지위 때문에 실족한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그리스도를 향해 공격적으로 대적해 오는 자라는 견해. (A. C. Williams).
Ⓑ 전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왜곡된 지식으로 인해 그를 용납하지 않는 자, 후자는 예수와 그의 말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자라는 견해. (Bruce).
Ⓒ 전자는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 위해 모의를 꾸미는 사악한 자들이며, 후자는 그리스도를 넘어뜨리려고 질주해 오다가 그분께 떨어지는 자, 즉 그 분의 강력한 반격을 받게 되는 자들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 (Calvin).
Ⓓ 전자는 그 돌에 대해서 반항하는 자, 후자는 그 돌이 추궁하여 심판한 자를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Barclay)가 있다.
본문의 말씀은 의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유대 교권주의자들에 대한 예수의 심판 선언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돌 위에 떨어진다.'라고 함은 예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그들의 불신앙이 스스로에게 넘어지게 하는 거침돌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박살내다'로 번역되는 헬라어 '쉰들라스데세타이(*)가 의미하는 바는 그대로 해를 당하여 파멸에 이르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의 뜻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러 오실 종말의 때를 예언하시는 것으로, 그날에 악한 자들은 키질의 결과로 날아가 버리는 쭉정이와 같이 구별되어 영원한 불구덩이로 들어가게 됨을 의미한다.
* 마 3: 12 -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시 1: 4 -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2]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말씀하신 악한 농부의 비유를 현실적으로 적용시킬 단계에 와 계셨다.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인 것은 건축자들이 돌을 버린 것과 같고, 그 버린 돌이 버린 자들을 깨어지게 하리라는 것으로 비유의 말씀을 종결지으셨다.
(1) 머릿돌과 거침돌
①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됨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여기서 건축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버린 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을 뜻하며 머릿돌이 되었다 함은 부활과 승리를 의미하고 있다.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시고 그것이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신기한 일로 보일 것이라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는 3일만에 부활하여 오늘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버림받은 돌은 우주적 교회의 머릿돌이 되시고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부활할 모든 성도는 이 머릿돌을 중심으로 하여 신령한 성전(교회)을 이루게 될 것이다.
* 벧전 2: 4-5 –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② 버린 돌이 거침돌이 됨
그러나 멸망하는 자들, 즉 유대인들과 불신자들에게는 이 버림받은 돌이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될 것이다.
* 벧전 2: 8 –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버림받은 돌, 즉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는 머릿돌이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깨어지게 하는 거침돌이 된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정죄가 되는 것이다.
* 요 3: 17-19 –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것은 구속 사역의 신비다.
(2) 회개의 기회
① 자기들을 가리키는 줄로 앎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비유로 말씀하신 의도가 여기에 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죄를 책하시기는 하셨으나 그들이 멸망 당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 벧후 3: 9 -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마음은 오늘날의 모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 행 2: 38-39 –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예수께서는 그의 대적자들에게 다시 한번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 기회를 오히려 악용했다.
회개의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죄를 깨달았을 때, 그 때가 바로 회개의 기회이다. 그 이후에 회개할 기회가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② 회개하지 않고 거역함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비유를 통하여 그들의 죄를 알았으나 그들은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를 박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회개한 사람들과 같지 아니했다. 도리어 그들은 크게 노하여 예수를 박해하려고 했다
그들의 분노는 그 이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에게도 나타났다.
* 행 5: 33 -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예수 그리스도는 무지한 자와 불신자에게는 거침돌이 되고 박해자들에게는 그들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돌이 될 것이다. (마 21: 44) 더 참혹한 형벌이 저들에게 내려질 것이다.
(3) 비겁한 교권주의
① 예수의 뜻을 따르지 않음
대제사장들과 장로와 바리새인들은 교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 교권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지만 이들이 부패하고 타락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교권을 남용한다.
이렇게 되면 교권은 '자기 권력'으로 전락한다.
* 렘 5: 31 -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교권주의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진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조직과 이권 수호에 있다. 교권주의에 항거하여 일어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오늘 다시 교권주의화하고 있다. 슬픈 일이다. 종교가 부패하면 교권주의자들이 발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② 사람의 뜻을 따름
교권주의의 비겁성은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을 따른다. 단적으로 말하면 교권주의자들은 인기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인기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충성심도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의 소신에 대해서도 결행력이 없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점거하려고 했으나 군중들이 무서워 그들의 생각을 결행하지 못했다. 그들이 군중들을 무서워한 것은 군중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예수의 무죄함을 아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죄인은 의인을 두려워한다. 무죄한 자는 하나님(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으며 '죄인'으로서의 인간은 이 하나님 앞에서 원천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다.
교권주의자들은 이 두려움을 세속 권력에 편승함으로써, 이권을 장악함으로써, 인기주의에 굴복함으로써 대치하려고 하나 그것은 허탄한 노력일 뿐이다.
마 21: 45. 예수의 비유 -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
유대 지도자들은 이 비유가 가기들을 가리킨 것인 줄 알았다.
1]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지금까지 예수께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신 두 비유는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경고의 말씀이다.
두 비유를 통해 드러난 사악한 인물들이 바로 종교 지도자 자신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듣고 아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잘못된 자신들의 모습을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를 죽이고자 완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 21: 46. 무리를 무서워하니 -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백성들의 반응을 염려하여 체포할 수 없었다.
1]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가 지금 예루살렘 성안에 있으므로 성전 경비원을 불러 그를 쉽게 체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경우와도 같이 예수를 의의 선지자로 여기는 백성들의 반응을 두려워하여 공식적인 석상에서 체포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가룟 유다의 배반에 의해 산에 계신 예수를 밤에 은밀히 체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백성들에 대한 예수의 지지도가 어떠했는가를 바로 보여준다.
요 11: 53에 의하면 산헤드린 공의회원들도 나사로가 부활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부터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하고 그 명분을 찾기 위해 계속 예수를 따라다녔음을 보게 된다.
* 요 11: 53 -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그들에게는 이미 겟세마네에 계신 예수를 체포하기 훨씬 이전부터 예수를 죽일 죄목과 명분이 구상, 모의 되어 있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의 권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임을 알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둘째, 돌이신 예수
* 단 2: 34-35 -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돌이시다.
그 돌은 완고한 심령을 부숴 구원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를 멸망시키기도 한다.
셋째, 성도와 기도
우리는 기도를 통해 택자들의 구원, 회개와 믿음, 우리 자신의 성화, 참된 교회의 건립과 성장이 있기를 기대해야 한다.
넷째, 성도의 신앙생활
신앙생활은 처음보다 끝이, 또 입술의 고백보다 실제적 행위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끝이 좋고 열매가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의롭고 선한 행실과 삶이며, 참된 구원은 그런 행위와 삶으로 나타난다.
의롭고 선한 열매가 없는 자들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