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앞둔 금요일
구월 둘째 금요일이다. 주중을 와실에서 보내고 주말을 앞둔 금요일은 퇴근 시각 창원으로 복귀가 예정된다. 광복절 직후 2학기가 시작되어 어느덧 4주를 보내 한 달이 흐른 셈이다. 금요일 아침은 와실을 나서기 전 해 놓는 일이 한 가지 있다. 한 주간 와실에서 비운 반찬 담았던 통을 챙겨 두었다. 이번에는 계절이 바뀌어 조금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 해 얇은 이불까지 봇짐에 쌌다.
금요일 퇴근 시각이면 이웃 학교 근무하는 카풀 지기가 내가 머무는 동네로 오기로 되어 있다. 금요일도 다른 날 아침과 마찬가지로 이른 시각 와실을 나섰다. 새벽밥이다시피 아침을 일찍 해결하고 좁은 방에 우두커니 있느니 들판을 빙글 두르는 산책을 먼저 하고 교정으로 들어섬이 일과의 시작이다, 어둠이 사라리지 않은 골목에서 연사삼거리로 나가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고현과 옥포 사이 찻길과 나란한 농로에서 들녘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사방에 싸인 어둠은 서서히 걷혀 가는 미명이었다. 어제는 짙은 안개가 끼어 가시거리가 짧아 바로 코앞만 보였는데 하루 사이 아침 안개는 사라졌다. 계절이 바뀔 때 하천 주변 들녘에는 안개 짙게 끼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어제만큼 짙게 낀 안개는 아니었지만 연초삼거리와 약수봉으로는 엶은 안개가 피어났다.
들녘 한복판을 걸으니 멀리 수월 고층 아파트 창엔 불빛이 새어 나왔다. 거제대로에 드물게 다니는 차량은 전조등에서 불빛이 비쳤다. 들판 가장자리에서 연초천 둑으로 올라서니 날이 희뿌옇게 밝아왔다. 천변에는 이른 새벽 산책을 나선 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조정지 댐에 가두어진 냇물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아침이면 헤엄쳐 놀던 흰뺨검둥오리들은 먹이 활동을 나선 모양이었다.
연효교를 앞둔 운동기구에는 몸을 푸는 중년 사내가 있었다. 당국에서는 둑길에 쉼터를 조성하고 체육 시설을 갖추어 놓아 산책객들이 더러 이용했다. 늦은 봄날 노란 금계국이 화사했던 천변 둑에는 제철을 맞은 코스모스꽃이 피어 눈길을 끌었다. 개량종 코스모스인지 잎줄기가 그리 높이 자라지 않고도 알록달록한 꽃송이를 달았디. 길섶의 코스모스꽃에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연효교를 건너 효촌마을 앞으로 갔다. 연사 들녘보다 모내기가 일렀던 효촌마을 앞들이다. 모를 일찍 내어 그런지 벼들은 이삭이 먼저 패고 고개도 먼저 숙여 황금 들판이었다. 둑길을 따라 효촌교 가까이 가니 북녘에서 날아온 개리를 볼 수 있었다. 개리는 흑기러기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겨울 철새다. 어제는 냇물에서 헤엄을 쳐 다더니 오늘은 냇바닥에서 나래짓을 펼쳤다.
개리는 가금으로 기르는 거위와 생김새가 닮았고 우는 소리도 같아 ‘괙! 괙!’거렸다. 하천이나 호숫가에서 풀을 뜯어 먹는 개리는 갯기러기로도 불렸다. 캄차카에서 몽골에 걸쳐 서식하다 날씨가 추워지면 남녘으로 내려와 겨울을 난다는데 인가 가까운 곳에 지냄이 특이했다. 오리보다 덩치가 커서 남획되어 개체 수가 현저히 줄어 국제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에는 취약종에 올라 있다
개리가 무탈하게 잘 지냄을 확인하고 효촌교를 건너 연효교로 다시 내려가 연사천 둑길을 걸었다. 와실을 나설 때 흐린 하늘이었는데 빗방울이 성글게 떨어졌다. 아직도 못다 내린 비가 있는지 가을 들머리 지겹도록 내린다. 여우비처럼 내려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도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었다. 교정으로 들어 뒤뜰에 봉숭아 그루를 뽑고 심어둔 맨드라미를 살피니 꽃대가 올라왔다.
일과를 마친 퇴근 후가 기대된다. 카풀 지기와 접선해 거가대교를 건너기 전 대금산 주막에서 곡차를 몇 병 마련해 갈 작정이다.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초등 친구와 먼저 퇴직한 예전 근무지 동료가 기다린다. 둘은 막걸리 마니아로 풍미가 좋은 대금산 곡차 맛을 잊지 못한다. 그간 내가 몇 차례 챙겨 가 시음한 적이 있다. 이번 팔월에 정년을 맞은 친구도 합석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21.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