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닥친 한파
성탄절이 지난 임인년 세밑 십이월 넷째 월요일이다. 연말에 강력한 한파가 닥쳐 남녘 해안까지 한낮에도 영하권으로 내려간 겨울다운 날씨다. 일요일 점심나절 카풀 지기와 거가대교를 건너와 일찍 잠들고 맞은 새벽이다. 초저녁 일찍 잠들었으니 새벽이라기보다 한밤중 잠을 깼다. 거제 생활을 마감하게 되는 소회를 몇 줄 글로 남기고 손흥민이 뛰는 프리미어리그 축구 시합을 봤다.
날이 밝아오려면 시간이 남아 자연인 재방송을 시청하다 출연자가 지어 먹는 야외 밥상을 보고 나도 덩달아 아침밥을 지어 먹었다. 설거지와 세면을 마쳐도 어둠이 가시지 않아 좁을 와실에서 면벽 수도를 하듯 시간을 보내면서 사흘 뒤 원룸에서 철수할 짐을 꾸릴 계획을 세워 봤다. 어제 주인장이게 세밑에 방을 비운다는 문자를 보냈는데도 회신이 없어 나중 전화를 넣을까 싶다.
와실에서 쓰던 짐은 단출하기 그지없다. 십여 년 전 입적해 한 줌 재로 사라지신 법정 스님보다 내 살림이 더 적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 스님은 차를 즐겨 드셔 다기가 있었을 테니 나는 차를 마시지 않아 찻잔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침구를 비롯한 최소한의 옷가지와 냄비와 수저를 비롯한 밥공기는 갖추었다. 약차를 달여 먹은 주전자는 아직 멀쩡해 버리긴 아까웠다.
내가 연초의 연사 와실에 둥지를 틀어 보낸 생활의 편린은 생활 속에 남겨가는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임 첫해는 ‘연초에 튼 둥지’라는 제목을 달았고 작년의 글 모음은 ‘섬에서 섬으로’였다. 올해 남긴 글은 ‘산골 소년, 바다로 가다’로 정해 봤다. 여기다 운문 부스러기를 모은 ’둔치 풍경‘의 원고도 상당해 프린트 출력물은 보자기로 싸려면 그 부피가 만만하지 않다.
짐을 꾸리는 일은 수요일 퇴근 후에 해도 되기에 미리 구상만 해 놓았다. 여섯 시 반이 지날 무렵 와실을 나서니 골목은 어둠이 가시질 않은 때였다. 평소 같았으면 연사삼거리로 나가 연사 들녘과 연초천 천변을 산책하고 교정으로 들었으나 추위가 매서워 동선을 줄여 학교로 곧장 향했다. 날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속에 교정으로 드니 일곱 시 전인데 배움터 지킴이는 출근했더랬다.
지킴이 양반과 주말을 보낸 인사를 나누고 교정 앞뜰 연못으로 가니 밤새 뿜어져 나온 분수대 주변은 고드름이 달려 설국을 연상하게 했다. 본관을 돌아 뒤뜰 쓰레기 분리배출 장소를 둘러보고 현관을 밀치고 실내로 드니 한기가 가득해 난방기를 켜놓고 헌팅캡은 쓴 채 있었다. 나는 머리숱이 적어 겨울이면 이마가 시려와 모직으로 된 모직으로 된 모자를 방한용으로 씀이 버릇이다.
내가 지내는 문화보건부실 난방기의 성능은 시원찮아 실내가 따뜻해지려면 시간이 걸려 목도리와 모자는 한동안 벗질 않고 노트북을 켜 뉴스를 검색하고 메일을 열람했다. 월요일은 수업이 4시간이라 하루가 바삐 지나갔다. 교실에 드니 정기고사 이후 학생들은 긴장이 풀려 느슨했다. 아이들 다수가 코로나를 빌미로 가정학습을 신청해 자리가 비워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일과를 마치고 쓰레기 분리배출 장소로 내려가 교실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날씨가 추워 환경소년단 도우미가 나타나지 않아 배움터 지킴이 양반이 도와주어 고마웠다. 퇴근 시간이 되어 교정을 나서니 날씨가 추워도 아침에 두르지 못한 연초천 천변 산책로로 나갔다. 볼에 스치는 바람이 차가워도 연초삼거리가 가까운 효촌교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연효교로 되돌아왔다.
조정지 댐에 가두어진 냇물은 주말에 닥친 강추위에 얼음이 얼어 투명한 빙판을 이루어 오리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초가을부터 연초천을 찾아와 먹이활동을 하다 냇물에 헤엄쳐 다니던 개리들도 보이질 않았다. 연효교를 건너 연사 들녘으로 들어섰다. 벼를 거둔 이후 깊이갈이를 해둔 논바닥은 서릿발이 숭숭 솟아 있었다. 내가 머무는 석름봉 아래 연사리는 산그늘이 내렸다. 21.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