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그립다
김 상 립
학창시절에 본 아버지의 술자리는 늘 부러웠다. 진정 술을 즐기신 아버지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드셨다. 간혹 우리집 사랑방에서 가까운 친구들과 자리를 함께 하셨는데, 푸짐한 상차림은 아니어도 언제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차고 넘쳐서 옆에서 보는 사람까지도 즐거웠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면 역사 속의 인물이나 고전에 관한 얘기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고, 사이 사이에 운(韻)자를 띄워놓고 즉흥시(漢詩)를 지어 순서대로 몸을 좌우로 흔들고 무릎까지 탁탁 쳐가며 읊었으니 선비들의 술자리로는 손색이 없었다.
분명 돌아가며 다른 친구 집에서도 이와 비슷한 술자리가 이어졌을 것이다. 나는 누가 뭐라고 하던 최고의 술 맛은 좋은 술자리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괜히 비싸고 화려한 술집을 찾으려 애쓰기 보다는, 좌석을 한층 더 격조 있고, 재미나게 만드는 방법에 마음을 쓴다면, 어딜 가나 환영 받는 술꾼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와 대작(對酌)한 적이 없어서 직접 분위기를 맛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른이 되면 아버지의 술자리를 꼭 닮아 보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하지만 청년시절에 내 술 마시는 스타일은 전혀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 당신은 술자리를 가리는 편이었는데, 나는 술이 있다면 결코 사양하지 않았다. 당신은 평생 소주만 좋아하셔서 술 자리가 파할 때까지 소주만 찾았는데, 나는 닥치는 대로 마시는 잡탕 술꾼이었다. 당신은 늘 꼿꼿한 자세로 술을 마셨고, 술 드시는 양에 비례하여 모든 행동은 더 진중해지셨다. 드물게 대취(大醉)하신 날, 기억을 잃기는커녕 방문 여닫는 소리나 발걸음이 평소보다 더 조용 하였다. 나는 술이 거나해지면 목소리도 커지고 말수도 많아 졌다. 신명이 나면 아무데서나 노래도 불러대고, 좌우간 조용한 술꾼은 아니었다.
내가 중년을 넘어서자 술 먹는 자세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 했다. 여태껏 즐겨 마시던 위스키나 브랜디 같은 술이 차차 싫어 지고, 막걸리나 소주가 당기기 시작했다. 술 마시는 양도, 회수 도 줄었다. 술이 거나해지면 즐겨 부르던 노래도 시들해졌고, 대신 예술에 관한 얘기나 깊이 있는 인생사가 재미 있었다. 술 자리라면 아무데나 끼지도 않았고, 보다 조용하고 속 깊은 자리를 원했다. 때마침 나는 대구부근의 모 회사에 임원으로 부임하게 되었고, 막상 자리를 옮기고 나니 지연도, 혈연도, 친구도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 내려놓고 편안하게 술 먹을 기회는 사라지고, 거의 공적인 자리만 남아 술 먹는 재미를 잃어갔다.
평소 아버지는 늘 반주를 찾았고, 밖에서 술을 드셨어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작은 잔으로 소주 한 두 잔을 마셨다. 당신은 취중에도 잠을 깨어 침실 주변 벽지 아무데나 꿈 속에서 지은 시를 붓으로 적어놓고는 다시 잠이 드는 버릇이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아버지에게 사연을 물었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란 짧은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나는 결혼 초부터 집에서는 거의 술을 먹지 않았고, 불면이 와도 술을 찾지 않았다. 그러니 아버지의 경지에 다가갈 기회조차 없었다.
당신은 80고개를 넘어서도 매일같이 소주를 드셨다. 연세가 높아지니 친구들과 술자리 하기도 어려워져서, 아주 특별한 일 없으면 집에서 혼자 반주(飯酒)로만 굳세게 술을 찾으셨다. 평소처럼 그렇게 잡숫다가는 칠순을 넘기기도 어려울 것이라 속으로 걱정이 많았는데, 전혀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 아버지는 술의 힘에 항복하여 술을 마시는 게 아니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 스스로 택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만약 아버지 같이 술을 대할 수만 있다면, 삶이 좀 단축되더라도 그렇게 억울할 것도 없겠다 싶어, 진짜로 술을 즐길 방법을 고심 하기도 했다. 하여 내가 퇴직하고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디며 술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할 기회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 하게도 술 먹는 일에 마음이 크게 쓰이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도 두어 잔 먹고 나면 그뿐이었다. 도저히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니 술을 일부러 찾지도 않았고, 굳이 피하지도 않은 채 그럭저럭 지내게 되었다.
2019년 봄부터 피부트러블이 심하게 찾아와 독한 약을 먹게 되니, 의사는 술을 먹지 말라 했다. 그 후 더 위중한 병을 얻어 아예 술을 끊은 지 3년이다. 사실 그 세월 나는 엉뚱한 일로 심기가 상하기도 했다. 힘든 투병은 제외하더라도 가끔 찾아오는 술 허기가 나를 붙잡고 시비를 건 까닭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아주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 깊은 정을 깨우친 사내가 불면의 밤을 안고 괴로워하듯, 나도 진짜 단주(斷酒)를 하고 나니 아쉬움이 커져서 멍 한때가 찾아왔다. 그를듯한 안주감만 봐도 술 생각이 나고, 멋진 자리만 봐도 또 술 생각이다. 평소 술을 먹던 사람이 아예 술잔을 입에다 대지도 않으려니 그 구차한 변명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절친한 모임에도 가기가 망설 여졌고, 술 하는 지인을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나로서는 사는 재미 하나를 통째로 잃어버려 기(氣)가 많이 꺾였다. 술 대신 뭐가 되었건 대타(代打)라도 하나 찾아야 하겠지만, 내 건강이 여의치 못하니 심기마저 울적 하다.
자식이란 나이를 먹으면 아버지를 닮게 된다는 말을 하지만, 나는 술을 두고 아버지를 닮고 싶었지만, 끝내 닮지 못하고 말았다. 이젠 나에게도 저녁 잠이 일찍 찾아 오고, 이른 새벽에 깬다. 세상은 잠들어 있는데 나 혼자 깨어 있는 날이 많아 졌다. 과연 이런 처지로 내가 술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는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막상 먹어서는 안 되는 술이 자꾸 그리워지는 것은 보통 병이 아니다. 그래서 틈틈이 술 생각이 나면 그 처방으로 아버 지의 술자리를 생각하기로 했다. 술을 그렇게도 사랑했지만 결코 술에 먹히거나 빠지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초연했던 술 사랑은 이제 나의 유일한 위안이 되고 있다. (2022년)
첫댓글 세월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선생님!...
이젠 술도 마음 대로 마실 수 없는 세월이 되었군요...
술... 그리운 이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마시는 술... 참 좋지요...
그런데 자꾸만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요. 옆지기가 걱정할 만큼요...
술을 마음 대로 마시지 못하고 그리워만해야 한다니요... 참 씁쓸합니다... 휴... ~*~...
놓친 고기가 크다고 ㅎ
사람 살이가 언제나 그렇지요.사람이 옆에 있을 땐 귀함을
모르고 예사로 생각하다가
막상 떠나면 소중함을 알듯이...일도, 사랑도, 술 먹는 일도
다 맥을 같이 하나 봅니다. ㅎ
술로 하여 세상사를 부드럽고 여유롭게 만든 이도 많았지만, 그 반대의 현상으로 휘몰려 가 모든 걸 다 망치고 마는 이 또한 많았거늘, 이게 술의 두 얼굴인가 봅니다.
선생님의 지금과 같은 조치가 마땅하고 마땅하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건강 완벽하게 회복하신 뒤 다시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自遣(자견) 스스로를 위로하다 / 李白(701∼762)
對酒不覺暝 (대주불각명) 술잔을 마주하여 해지는 줄 몰랐는데
落花盈我衣 (낙화영아의) 꽃잎은 떨어져 옷깃에 수북하네
醉起步溪月 (취기보계월) 취한 몸 일으켜 달 비친 개울가 걸으니
鳥還人亦稀 (조환인역희) 새들은 돌아가고 인적 또한 드물구나
이백의 글을 보면 술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낭만의
극치로 끌고 간듯합니다.ㅎ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