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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참보육부모연대에 쓴 글입니다.
아동학대에 대해 썼지만, 아동학대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든 아이들이 당했고 당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이는 절대로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제 글을 읽으면 모든 아이들이 조금씩
상처입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교육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바뀌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 아이가 속해 있는 작은 곳이라도 바꾸어야 합니다.
그것도 어렵다면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우리 아이들을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결코 선생님의 판단처럼 단정지어지는 그런 아이들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잘 자랄 수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은 이미 상처입었습니다. 그들의 상처를 잘 살피고 잘 보살펴야 합니다.
교사가 바뀌어서 믿을 수 있고 안전한 학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사의 직접적인 폭행보다 더 무섭고 잔인한 아동학대는 방임입니다.
교사가 때렸다면 아이는 부모에게 때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6세때 처음으로 간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아무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머리를 마구 폭행당한
아동을 향해 선생님은 울지도 화내지도 소리지르지도 때린 아이를 때리지도 않는다면서 너무도 마음이 넓고 착하다고
칭찬했기에 그 아동은 교사의 말에 속아서 부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한 말은 배가 아파서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소아과 선생님은 아이가 스트레스라고 말했지만, 유치원을 믿은 엄마는 그 말을 무시하고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겠습니다.
그 끔찍한 폭행현장을 직접 목격했지만(7세 12월경에) 엄마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그냥 넘겼습니다. 단지 때린 아이가 과제가 되지 않아서 너무도 화가 나서 자신의 아이의 머리를 마구 폭행했으며 바로 앞에 있었던 선생님은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모든 친구들은 슬쩍 쳐다보았을뿐 아무도 그 끔찍한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끔찍한 폭행은 제가 막음으로써 끝이 났지만, 그것이 아동학대라는 사실을 초등2학년 6월에 학교에 학교폭력을 신고하고 조사해 줄 수 없다는 말에 교육청에 전화하고서야 알았습니다.
교육청 학교폭력 담당자는 유치원 아동간의 학교폭력은 학교폭력이 아니라, 선생님의 방임에 의한 아동학대라면서 증거가 없으면 무고로 당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경찰. 우리 주소 관할 경찰은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그리고 저에게 무고가 아니라고 저에게 용기를 주었지만, 병설유치원 관할 경찰은 방임에 의한 교사의 아동학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경찰을 설득하여 신고했지만, 아동전문기관의 전문가 또한 냉정한 현실로 인해 우리 아이의 문제가 아동학대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해바라기센터에서 비디오 촬영을 했지만, 그 담당자 또한 아이가 진술을 거부한다면 판사가 아동학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말했습니다. 단지, 유치원선생에게 경고의 의미가 있을 것이며, 제 아이를 위해 상담을 해 줄 것이라 했습니다.
여러 날 지나서, 제가 진술하러 가서 여러 시간 동안 진술하면서 아동학대로 인정되기 어려우며, 가해자인 유치원교사가 무고를 말했으며 경찰은 그 사실을 저에게 알려준다고 말했습니다. 밤 11시가 넘어서 저는 신고를 취소했습니다. 그 억울함은 ...
제 아이는 그 억울함이 더 큽니다.
교감선생님의 소개로 제 아이는 학교에서 무료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담선생님은 도움이 필요한 많은 학생들이 있는데, 지금의 제 아들은 그들보다는 도움이 덜 필요하다면서 절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선생님을 설득했습니다. 제 아이의 억울함을 분노를 설득했습니다. 제 아들은 12번의 상담을 받았고 선생님은 저에게 제 아들이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불길의 겉불만을 잡았을 뿐이라면서 집에서 많은 노력을 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아이의 상태를 보면서 다시 상담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제 아들의 상태가 궁금하겠지요?
겉으로 보면 아주 멀쩡합니다. 그러나, 가슴엔 억울함과 분노가 있습니다. 아이는 유치원에 가기 싫었지만, 저를 위해서 갔습니다. 아이는 폭행을 당했지만, 선생님의 거짓말에 속아서 자신이 피해자임을 말하지도 울지도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거짓말은 7세 2학기에 담임이 바뀌면서 밝혀졌고 아이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아이는 맞고도 울지 않고 때리지 않는 착하고 마음이 너무도 넓은 아이에서, 맞았다고 때린 아이를 때리면 맞은 아이가 더 나쁘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아주 마음이 넓고 착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1월에 아이는 유치원 가기를 거부했고, 저는 아이의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다른 유치원으로 옯길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복도에서 아이를 지켜 보았고, 아이를 위해 교실로 들어 갔으며, 교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맞고도 맞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울지 못하는 아이가 또 한 명 있었습니다. 때린 아이는 맞은 아이가 맞을 짓을 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가 그 이유였습니다. 전 그 아이에게 친구를 때리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일방적인 폭행을 선생님은 모른체했고, 친구들 또한 그 무서운 상황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그곳에 존재했고, 그 폭행의 시간이 지나면 아무일 없었듯이 그렇게 지냈습니다. 폭행은 잠깐 일어나는 의식해서는 안되는 그런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습니다.
제 아이와 그 아이만이 희생자가 아닙니다.
제 아이를 돕지 못한 정의로운 아이는 저에게 제 아이를 돕지 못한 미안함을 표현했습니다.(초등 2학년때)
가해아동의 엄마와 가해아동에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절 본 유치원 여자 아이는 저에게 불만에 가득찬 눈길을 보냈습니다.(유치원때)
그것을 그대로 지켜본 남자아이는 자신은 때리지 않았다면서 너무도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초등 2학년때)
유치원에서 싸우던 여자아이는 엄마가 머리만은 맞지 말아라고 했다면서 울었습니다. 거의 절규했습니다.(유치원에서)
교사의 방임은 아동학대이며 너무도 심각합니다.
교사는 아동이 서로 때리고 맞으면서 그렇게 사회성과 인성을 키운다고 말합니다.
우리부모들은 서로 때리고 맞으면서 인성과 사회성을 키우라고 유치원에 보낸 게 아닙니다.
교사가 폭력을 행사한 아동을 도우려고 했다면 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된 아이는 과제를 했을때 몰라서 해도해도 과제가 안될때 분노를 폭발시켰습니다. 그래서 그 분노가 너무도 커서 제 아이는 머리를 기억이 나지 않을정도로 맞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치원교사는 자신이 머리를 맞아본 적이 없어서 제 아이의 머리가 무쇠인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슬픈 것은 제 아들은 4명 중에 셋째였기에 선생님은 4명 중에 1명이 잘못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식이 없는데, 맞는 아들이라도 있는게 부럽다는 듯 말했습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제 오해일 수 있습니다.) 가해아동도 큰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 6월에 소식을 들었는데, 방과후 수업시간에 혼자 앉아 있으며 혼자 일어서서 두 팔을 휘저으면서 소리를 지른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 아이 옆에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방임에 의해 이 아이 또한 큰 상처를 입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잘못하면 자신의 아이가 그 죄를 받는다고 말했기에 전 그 선생님을 정말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뒤에 밝혀진 진실은 선생님에게 자신의 죄를 받을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벌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전 이 선생님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대다수의 선생님이 이런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되는 아이가 모든 아이를 때리는 것보다 특정한 한 아이만을 때림으로써 교실의 평화를 유지하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너무도 힘들어서 2학기때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저의 나머지 3명의 아이들 모두 병설유치원에서 방치에 의한 아동학대를 당했습니다. 이 선생님을 신고한다면 다른 선생님들 또한 신고해야 합니다. 그들은 제 아이가 배를 수시로 손으로 발로 맞는데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그 모습을 보면서 전혀 문제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장난으로 여긴 것 같습니다.) 제 아이에게 침을 뱉은 사건을 항의하러 갔을때, 다른 아이가 와서 자신은 얼굴을 주먹으로 맞았다고 하소연했지만, 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기에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고를 무시한 저로 인해 제 아이들은 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첫째인 여자아이는 친구가 왕따를 시키고 놀렸습니다. 선생님은 제 아이가 울었지만, 우는 것을 알지 못했고 여자 아이들이 그냥 그렇게 노는 것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들이 인성에 큰 상처를 입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제 아이는 그때의 상처로 인해 분노가 있으며, 누가 놀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친구를 놀립니다. 놀리지 말라고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유치원때의 그 고통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해 아동은 초등학생이 되어서 친구를 심하게 놀려서 항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유치원 선생님은 놀리는 아이를 리더쉽이 강하다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그 리더쉽이 친구를 놀리고 왕따를 시켜서 생겼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저 또한 딸의 상처를 작년에 제 아들의 상처를 알게 되었을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막내. 막내가 희망을 보여 주었습니다.
막내는 3년을 유치원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2년은 맞아서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면서 울었고, 피해아동이 그렇듯이 밤마다 깨어서 울부짖었습니다. 저는 교육청에 전화하고 병설유치원의 원장(교장)선생님과 상담하고 원감선생님과 상담했습니다. 담임과도 상담했습니다. 직접 유아에게 친구가 아프니 때리면 안된다고 알려주고, 놀고 싶을 땐 놀자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똥침으로 너무도 괴로워할때, 선생님은 저에게 아무리 말해도 안된다면서 저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똥침을 하고 고추를 만지는 아이가 어쩌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아이를 힘들게 하는지, 그리고 아이를 너무도 사랑하는 존재가 아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고추를 비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는 너무도 그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아이의 말은 언제나 아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무시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 담임에게 알렸고 담임은 엄마에게 알렸습니다. 이제 그 아이는 어떤 문제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행복한 미소를 얼굴 가득 띄우며 진정한 웃음을 짓습니다. 언제나, 나쁜 놈 취급을 당했던 아이는 더 이상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아주 참을성이 있고 친구를 배려하는 아주 착한 아이 그 자체입니다.
제 아이를 때리고 유치원에 있던 다른 아이를 때렸던 반의 대장 또한 이제 아이들을 때리지 않습니다. 때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제가 그 아이의 엄마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맞고 때리면서 인성과 사회성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맞고 때리면서 상처입는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제 그 아이는 친구를 때리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저에게 제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면서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또한 선생님께 늘 혼나면서 너무도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그 아이는 친구를 때리지 않고 맞지도 않으면서 즐겁게 지냅니다. 아이들은 모두 유치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진정으로 좋아합니다.
전 선생님에게 글자를 모르는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 알렸습니다.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알렸습니다. 선생님은 처음에 저를 설득했지만, 그 뒤로 대책을 세우신 것 같습니다. 아이는 글자를 몰라서 너무도 힘들어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친구에게 배우고 배운 것을 저에게 자랑합니다. 때렸던 친구를 아이는 지금은 때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극도로 싫어하고 미워하지만, 폭력이 사라진 현재 피해자인 제 아들은 가해자인 그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자신을 때렸던 기억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고, 현재는 그들과 좋은 친구입니다.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담임선생님과 원장선생님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바뀌어야 합니다.
저 아이는 폭력적인 아이다라고 평가만 할 것이 아니라, 왜 저 아이가 저런 행동을 하는지 아이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 아이는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보호해야 할 아동일 뿐입니다.
저 아이는 사회성이 부족해서 맞고 놀림을 당하는구나라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아이에게 물어야 합니다. 아이를 도와야 합니다. 종이접기를 못하면 못한다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설명해야 합니다.
글을 모르면 초등학교 가서 유치원교사인 자신이 욕먹을 것을 걱정하지 말고, 그 아이의 수준에 맞추어서 교육해야 합니다. 아이가 못한다고 바보취급하고 없는 것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야 합니다.
구구송을 노래 부르게 하여 수학을 암기과목으로 인식하게하고 수학을 아주 못하는 바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보다는 걸으면서 하나 둘 숫자를 세든지, 색연필의 개수를 세든지 하여 자연스럽게 수학의 기초를 가르쳐야 합니다. 수학의 개념은 숫자를 세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덧셈 기호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아들은 수많은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교사의 무지에 의해서.
아동은 보호받으며 교육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교사들은 아동을 교육하기보다는 줄세우기만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아이만을 중요시 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다 알아들었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자신의 능력만을 과시합니다. 교실을 그럴듯하게 꾸미고, 그럴듯한 과제를 무보에게 보여주는 것만을 중요시 합니다. 부모가 어떻게생각하는냐만을 중요시합니다. 유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을 더 중시합니다.
어려운 말을 알아 듣는 것 같은 아이가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 아이는 결코 그 어려운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 속에서 바보 취급 당합니다.
초등3학년 4학년인 아이는 지금도 저에게 단어의 뜻을 묻습니다. 초등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못 알아들을 것 같은 단어는 설명해야 하지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잘하는 소수의 학생이 그 단어의 뜻을 알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그렇게 지나갑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이 알아듣지 못한 말 때문에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자존감을 짓밟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선생님도 자신의 이러한 행동을 알지 못합니다.
모든 선생님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동학대를 수시로 저지르고 있습니다. 못 알아 듣는 아동이 있다면 그 아동을 위해 설명해야 합니다. 다 아는 척 하는 아동 또한 그 의미를 모르고 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어쩌면 그 어려운 말을 쓰는 선생님 스스로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한체 그저 남이 쓴 교재를 읽고만 있는 게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교육에서 소외되는 아동이 없도록 교사의 방임에 의한 아동학대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동이 선생님 말을 듣지 않고 딴 짓을 하는 이유는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에게 반항하기 위해 그들이 딴짓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부모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부모 말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너무도 많은 상처를 입습니다. 그들이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할 정도로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떠들고 딴짓 하는 것은 유치원 선생님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가르쳐도 그들이 배우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교사는 그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쩌면 교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모르는 지도 모릅니다.
교사는 아동이 힘들어하면 아동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떠들고 딴 짓 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학생이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오해합니다. 그 학생에게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말하고 비슷한 발음의 한글로 발음을 적어 주고 아이에게 읽으라고 한다면 아이는 떠들지 않고 공부할 것입니다. 아이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해결해 주고, 아이가 소외당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님들.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을 무시한다면 당신은 어떤 마음일까요? 당신만이 소외된다면 당신은 좋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은 소중하고 현명합니다. 아이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이유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유치원교사에게 의논할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물어야 합니다. 전 교사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교사의 잘못된 인식과 거짓말로인해 제 아이들을 모두 상처입혔습니다. 제가 아이들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교사의 방임에 의한 아동학대로 제 아이들이 상처입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전 교육감에게 학부모들에게 유치원의 위험성을 알려 줄 것을 부탁했지만, 게시판만 폐쇄되었습니다.
부모님들, 자신의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아이들의 장점을 특징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아이는 말이 느려, 한글이 느려, 수학을 못해가 아니라,
우리 아이는 눈치가 빨라, 운동을 잘해, 나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구나, 이렇게 이것을 이해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아이의 놀라운 능력에 아이를 칭찬해야 합니다. 남들이 한글을 모른다고 걱정하는 말은 무시해야 합니다. 아이의 성장속도는 개인에 따라 너무도 다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한 가지는 그들이 초등학생이 되면 한글을 익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유치원에서 한글을 모른다고 바보취급을 당해서 초등학생이 되어 할 수 있는데도 못한다는 생각에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게 하는데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3학년인 제 아들은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바보가 아님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바보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자신은 맞아도 되는 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며, 자신은 놀림을 당해도 되는 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또한 유치원에서 자신은 기분이 나쁘면 때려서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는 친구는 때려도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되고, 친구를 놀리고 왕따시켜서 친구가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선생님은 아동을 돕지 않는 존재라는 인식도 갖게 됩니다. 몰라서 딴짓을 하면 학생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선생님에 익숙해집니다.
유치원 선생님은 모든 공교육의 문제점의 시작점입니다. 우리 아이를 망치는 최초의 공교육입니다.
반대로 유치원선생님이 아동을 적극적으로 돕고 소외시키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다면 우리 공교육은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도 사교육도 아무 의미를 갖지 않게 됩니다.
유치원에 가면서 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인성을 배우기 위해 다른 교육기관을 알아보고 맞지 않기 위해 태권도를 보내고.
이것이 현실입니다. 모든 공교육의 문제는 유치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유치원에서 상처입은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너무도 힘듭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가해자로서 피해자로서 방관자로서 그들은 모두 정상적이지 못한 경험을 하고 상처를 입습니다.
운동장에서 하루종일 모래놀이만을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 아이를 무시했습니다. 제 아이의 유치원에서의 끔찍한 학대를 인식하기 전까지 그 아이는 그저 무시해도 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제 아이의 상처를 인식했을때 그 아이의 상처도 인식했습니다. 전 그 아이에게 제 아이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제 그 아이는 더 이상 운동장에서 모래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친형과 함께 그렇게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은 여전히 고통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 아들의 고통이 여전히 존재하기에.(나머지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아들에게 그 친구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머리가 아닌 몸을 폭행당했습니다. 제 아들은 머리를 너무도 심하게 폭행당했기에 선생님의 말에 속아서 당했기에 그 고통은 더 큽니다. 그리고 제 아들의 고통을 이해해주는 타인을 만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아들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제 압니다.
아동학대는 교사의 처벌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동학대는 교사를 교육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습니다.
교육은 의자를 빼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아동과 대화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교육해야 합니다.
한글은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유치원은 아동이 소질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하는 곳이지, 그들이 잘하는지 평가하고 잘하는 학생을 칭찬하고 못하는 학생을 무시하는 곳이 아님을 교육해야 합니다.
아동은 맞으면서 때리면서 사회성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면서 서로 이해하면서 서로 배려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면서 바람직한 인성과 사회성을 배움을 가르쳐야 합니다.
멋지고 그럴듯한 어려운 말을 나열하는 것이 좋은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단어를 설명하고 아이들이 다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는 것이 바른 교육법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사가 잘못된 교육을 받았음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교수가 잘못된 교육을 교사들에게 했음을 알려야 합니다.
거칠고 장난이 심하다가 아니라, 그들이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며, 어른이 그 아이에게 한 장난을 그 아이가 친구들에게 하는 것임을 교사들에게 알려서 그 아이를 비난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그런 영향을 끼친 어른을 알아내어 그 어른에게 올바른 것을 알려 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임을 교사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수학이 어려워졌다고 말하지만, 수학을 잘하는 제가 본 바로는 교과서에 교육과정에 전혀 맞지 않는 어려운 문제가 끼어 있을 뿐입니다. 잘못된 교과서를 만든 교육부를 비난할 문제이지 수학이 어려워진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 과정의 수학을 익힐 수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수학을 90점이상 맞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교육한다면. 사교육이 아니라 선생님이 제대로 교육한다면.
모든 학생이 90점이상을 맞을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선생님들이 인정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줄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다 해야 합니다. 그 공부를 바탕으로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소질을 개발하고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모든 학생들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쓸모없는나쁜 인간 취급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아동복지법에서 아동은 18세미만인 사람이며, 보호자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해서는 안됩니다.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이 아동학대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방임하고 있습니다.수업에 참여할 수 없어서 참여하지 못하고 딴 짓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비난만 할 뿐 전혀 돕지 않습니다. 나쁜 놈 취급을 받는 가해 학생의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피해학생이 피해를 보고 있음에도 그들을 무시합니다. 그들과 대화하여 무엇이 문제인지 함께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기 싫다면 부모에게 알려야 합니다. 아이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알리고 아이가 나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알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야 합니다. 그러나, 교사는 부모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들이 학생을 지도하는 법을 알았다면 그들은 학생을 지도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학생을 지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과거의 잘못된 지도방법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교사는 올바른 지도법을 배워야 합니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올바른 지도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올바른 지도법은 학생을 무시하지 않고 소외시키지 않고 학생을 돕는 것입니다. 학생과 대화하여 학생에게 해결책을 묻고 학생이 올바를 길을 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학생이 공부하는 법을 모르면 공부하는 법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생님또한 공부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알게 된 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영어는 발음을 한글로 적어서 학생에게 읽게 해야 합니다. 뜻은 직역을 해야 합니다. 굿 럭은 행운을 빕니다가 아니라, 좋은 행운으로, 해피 벌스데이는 생일을 축하합니다가 아니라, 행복한 생일로 직역해야 합니다.영어를 외우라고 할 것이 아니라, 외워질때까지 읽어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35번이상 읽으면 외웁니다. 이 외우는 횟수는 날이 갈수록 작아집니다. 단어는 직역을 통해 자연스럽게 문장에서 외워지도록 해야 합니다. 문법 또한 읽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익혀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말의 문법을 억지로 외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익혔듯이.
수학. 수학을 못한다는 인식을 없애는데 너무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토리텔링이라고 긴 문장이 나오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없는 학생들에게 좌절감만을 심어주는 문제입니다.
덧셈 기호는 사람들의 약속이므로 무조건 외워야 함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덧셈 기호는 더하라는 사람들의 약속일뿐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님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손가락으로 계산하면 안된다면서 선생님들은 혼내시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십진수는 손가락이 열개라서 생긴 것 같습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계산하는 것을 혼내서는 안됩니다. 발가락을 사용한다고 혼내서도 안됩니다. 그들이 지식을 인식하는 방법을 인정하고 그 유용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수학은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학문이며, 우리의 두뇌에 휴식과 놀이와 즐거움이 되는 그런 학문입니다. 수학은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규칙과 반복입니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학문일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수학을 잘하려면 많은 시간동안 수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유치원에서 어린이집에서 상처입은 아이들로 인해 힘든 부모님들.
이것은 시작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상처를 경험삼아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교사를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 길은 교사를 교육하는 것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사를 처벌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교사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크게 작게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저의 아이들을 맡았던 모든 유치원 교사들을 원칙적으로하면 처벌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교사를 교육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유치원에서 상처입은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가서 다시 상처입었습니다. 이 상처는 교사가 바뀌지 않으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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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가 화를 내고 거칠게 행동한다면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아이의 도움의 외침입니다. 아이는 결코 나쁜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한다면 그것 또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는 공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의 그 뿌듯한 얼굴을 본다면 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참보육부모연대사이트에 가입했다가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카페지기로부터 약간의 항의의 쪽지를 받았습니다.
이 곳은 다양한 생각을 허용하는 곳 같습니다.
제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더라도 자신의 아이의 상처를 한 번은 봐 주셨으면 좋겠
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모자라다라거나 느리다라고 평가한다면 그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평가는 선생님의 무지로 인한 잘못된 평가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신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평가가 잘못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의 장점을 보고 아이가 학교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이를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지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상처입지 않고 서로 도우면서 그렇게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세상이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었으면 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말씀드려 볼까요?
교사가 화를 내고 거칠게 행동한다면 교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이 문제는 교사 자신의 문제일 수 있지만, 교사가 속한 공교육 조직의 문제점일 수 있습니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싫어한다면 할 수 없어서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항의를 받으실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사의 전문성이 발휘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신 듯 싶습니다. 학부모가 가르쳐야 한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많이 불편합니다. 교사들이 왜 저럴까에 대한 고민을 좀 더 많이 해보셔야 할 듯 싶습니다.
제가 만났던 교사들은 모두 학생을 위해 노력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그들과 대화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이 알았다면 결코 아이들을 상처입히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아이가 몰라서 딴짓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유치원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설명을 3번이상 하였습니다. 알아들은 아이는 자리에 가서 과제를 하라고 말하고 남은 아이들에게 똑같은 설명을 하였습니다. 3번정도 설명했을때 모든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가서 과제를 열심히 했고, 모두들 만족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좋은 분들입니다. 그들은 아이들의 환한 웃음과 만족감을 보면서 자신도 만족감을 느끼는 그런 분들입니다. 선생님도 그 어떤 누구도 비난받기 전에 먼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다툼은 지도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툰 아이 모두를 불러서 모든 아이들이 보는 중에 서로의 생각을 말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두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충고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면서 바른 사회성과 인성을 키우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인식의 전환이 너무나도 많은 변화를 교실에 가져 왔습니다. 유치원교실이라고해서 이 사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선생님을 존경하고 믿을 수 있으려면 선생님의 인식은 바뀌어야 합니다. 그들은 잘못 배운 교육에 대한 바른 인식
이 꼭 필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선생님과 학생들의 도움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전 선생님은 여전히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교육부가 왜 제 말을 언제나 무시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안됩니다. 학생도 상처입고 교사도 상처입는 이대로는 안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