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홀로 낚시를 한다는 뜻으로, 산수화 같은 풍경을 일컫는 말이다.
獨 : 홀로 독(犭/13) 釣 : 낚을 조(金/3) 寒 : 찰 한(宀/9) 江 : 강 강(氵/3) 雪 : 눈 설(雨/3)
자연을 묘사하여 마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빼어난 시가 있다. 산수를 유람하며 자연 속의 아름다운 정경을 노래하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시인의 심경을 산수자연시(山水自然詩) 들이다.
중국 동진(東晉)의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 때에 싹이 트고 당(唐)나라에서 꽃을 피운 자연시파는 왕유(王維)나 맹호연(孟浩然) 등에서 절정을 이뤘다.
무려 4만 8900 수의 전당시(全唐詩)를 남긴 시의 시대 당에선 물론 산수전원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고 다양한 주제가 있지만 그림을 그리는 듯한 자연시에서 더욱 이끄는 맛이 있다.
자연시의 전통을 잇는 왕맹위류(王孟韋柳)란 말도 있는데 뒤 세대의 위응물(韋應物)과 유종원(柳宗元)을 포함한 것이다.
차고 시린 눈이 산이고 들이고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눈 덮인 추운 강가에서 홀로 낚시를 하는 노인이 있다. 이 장면을 그린 잘 알려진 시가 유종원의 '강설(江雪)'이다.
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 온 산엔 새들도 자취 끊겨 고요하고, 모든 길엔 사람의 행적도 사라졌네.
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 외로운 조각배에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낚시질 하는구나.
천산(千山)은 물론 굽이진 산이고, 逕은 지름길 경, 徑(경)과 같다. 蹤은 발자취 종, 簑는 도롱이 사, 짚이나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옛날 농부의 비옷을 말한다.
오언절구의 제일 처음 구절 천산조비절(千山鳥飛絶)을 소개하면서 나왔듯 이렇게 이미지가 바로 뜨는 멋진 산수화의 작가 유종원은 한유(韓愈)와 함께 고문(古文)운동을 일으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함께 들어가며 한류(韓柳)로 불린다.
하지만 혁신정치 집단에 참여했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어 오랫동안 변경생활을 하며 울분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욕망과 번뇌에 가득 찬 속세를 초월하여 대자연에 은거한 낚시꾼 늙은이는 외로운 배와 도롱이와 삿갓을 씌워 유종원 자신을 나타낸다.
차가운 눈을 맞으면서 무심히 강에 낚싯대를 드리운 늙은이의 모습에서 중앙에서 밀려난 정치적 실의와 고독감을 이겨내려는 정신력도 나타내고 있다.
번잡한 사회에서 은퇴하여 초야에 묻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꿈꿀만한 내용이다. 이런 풍광을 그리면서 도저히 재주가 못 미친다고 자탄하는 조선 중기의 명신 신흠(申欽)의 멋진 시도 함께 보자.
塡壑埋山極目同, 瓊瑤世界水晶宮. 골 메우고 산을 덮어 눈 닿는 덴 모두 같아, 온 세계는 구슬이요 집들은 수정궁궐.
人間畵史知無數, 難寫陰陽變化功. 인간 세상 화가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음양의 조화만은 그리기가 어렵다네.
백설이 덮인 천지는 감상만으로 족하다.
⏹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 은둔하며 사는 낚시꾼의 삶을 말하는 것으로 당대의 오언절구의 절창으로 꼽히는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이란 작품에 나온다.
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 온 산에 새 날지 않고, 온 길에 사람 발자취 없는데.
孤舟사笠翁, 獨釣寒江雪.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 홀로 낚시질하는데 차가운 강엔 눈이 내린다
이 시를 읽으면 쪽배에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늙은이가 눈 내리는 가운데 낚시질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펼쳐 놓은 듯 떠오른다.
'온 산(千山)'과 '온 길(萬徑)'로 광활한 정경이 펼쳐지지만, 이 시어들은 '외로운 배(孤舟)'와 '홀로 낚시질한다(獨釣)'는 것과 대비되어 고독을 유발하며, '절(絶)'과 '멸(滅)'은 세상의 절대적 고요와 평화를 체감하게 한다.
전반부가 정적으로 초연하고 고고한 경지를 느끼게 해주었다면, 후반부는 눈과 노인을 등장시켜 동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노인의 주변은 눈으로 뒤덮였고, 산도 길도 새하얗다. '눈(雪)'은 순결과 탈속한 경지를 암시하며, '차가운(寒)'은 정치적 고뇌와 갈등을 거듭해 왔던 작자 내면의 고독을 의미한다.
'한강설(寒江雪)'은 이 시의 화룡점정이다. 그리고 온갖 세상의 풍파를 겪어온 작자의 마음이 바로 '독조(獨釣)'라는 시어에 오롯이 녹아 있다.
이는 유종원이 총명한 어린 시절을 거쳐 나이 서른에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고, 정치 개혁에도 적극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여 영주사마(永州司馬)로 귀양 갔다가 다시 유주자사(柳州刺史)로 옮기는 등 부침이 심한 삶을 살았던 것과 관련된다.
치열한 삶을 보낸 회한이 이 시에 녹아들어 있는 듯하다. 낚시질하는 노인으로 표상되는 시인은 세상의 속됨을 벗어나 그저 늘 변함없는 자연과 동화되고자 한다. 담담하고 그윽하며 청아한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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