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가 안 되는가
유 안 진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종교이고 누구나 다 알면서도 어려워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철학이고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 과학이고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글자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는 것이 시-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말해도 되는가?
-『세계일보/詩의 뜨락』2024.03.29. - 잡지 ‘시로 여는 세상’(2024년 봄호) 수록
되는가 안 되는가 [詩의 뜨락]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종교이고 누구나 다 알면서도 어려워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철학이고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 과학이고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글자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는 것
www.segye.com
되는가 안 되는가 / 유안진 『세계일보/詩의 뜨락』 ▷원본 바로가기
자 화 상
한 생애를 살다 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비와 이슬이 눈과 서리가...... 강물과 바닷물이 누구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엉이 우는 이 겨울도 한밤중 뒤뜰 언 밭을 말 달리는 눈바람에 마음 헹구는 바람의 연인 가슴속 용광로에 불 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미쳐볼 뿐 대책 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수록 새우 젓갈 맛나듯이 때 얼룩에 절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때 묻히고 더럽혀지며 진실보다 허상에 더 감동하며 정직보다 죄업에 더 연연하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웠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멀리멀리 떠나 갈수록 가슴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갈 데까지 갔다가는 돌아오는 것이다 하늘과 땅만이 살 곳은 아니다 허공이 오히려 살만한 곳이며 흐르고 떠도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리 문득 돌아보니 나는 흐르는 구름의 딸이요 떠도는 바람의 연인이어라.
- 〈출처〉김귀녀 시인의 방 / 유안진 詩 모음 -
〈유안진 시인〉
△ 196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 시집 ‘달하’, ‘다보탑을 줍다’, ‘터무니’ 등 △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숙맥노트 - 예스24
숙맥노트
www.yes24.com
유안진 시집 〈숙맥노트〉 서정시학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