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장터로
처서가 지나니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서늘해졌다. 팔월 끝자락 넷째 일요일 새벽 텃밭을 돌보려고 길을 나섰다. 닷새 전 씨앗을 뿌려둔 가을 채소들이 궁금했다. 집에서부터 걸어 옛 도지사 관사 앞의 가로수 길을 걸어 도청 광장을 거친 법원에 이르니 날이 밝아왔다. 그쪽에서는 동녘에 해당하는 비음산 위로 하늘에 아침놀의 붉은 기운이 서려진 구름이 잠시 비쳐 눈길을 끌었다.
텃밭에 오르니 광쇠농장 친구는 집에서 필요하다는 깻잎을 따서 내려간 이후였다. 그 나머지 텃밭을 가꾸는 동료들은 아무도 나타나질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일전에 심어둔 가을 채소 무와 배추는 싹이 터 파릇한 떡잎을 펼쳐 자랐다.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낮추어 자세히 살펴보니 벌레가 멱을 잘라 먹은 흔적이 보였다. 내가 텃밭에서 할 과제는 벌레를 막으려는 약을 뿌릴 일이다.
가루로 된 약을 뿌리기 전 호미로 김을 매주었다. 가을이 되니 잡초가 기승을 부리질 않아도 비를 맞아 단단해진 이랑의 흙을 부드럽게 해주었다. 이후 파종하고 뿌려준 약을 한 번 더 여린 싹에다 흩어주었다. 무와 배추는 이런 약을 뿌리질 않으니 벌레가 꾀어 죄다 갉아먹어 농사가 어려웠다. 지난 장마철 잘 자라던 열무였는데 약을 뿌려주지 않았더니 거둘 것이 한 줌도 없었다.
무와 배추에 약을 뿌리고 다른 채소를 심은 구역을 살폈더니 쪽파는 움이 트고 아욱과 상추는 아직 싹이 트려는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호박은 넝쿨로 뻗어나가다 늙은 호박에 이어 애호박이 맺히기도 했다. 나와 이웃한 광쇠농장의 배추도 싹이 트고 있어 아까 뿌려준 약을 그곳에도 흩어주었다. 텃밭에 올라가 한 일은 김을 매고 무와 배추에 붙는 벌레를 쫓는 약을 뿌려준 일이었다.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고 남은 일과는 갯가 산책을 나설 요량이었다. 법원 앞에서 성주동으로 건너가 진해 장천동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안민터널을 통과해 진해구청을 지나 장천동 종점에 내렸다. 이순신 리더십 센터를 지나 진해 바다 70리 길 진해항 구간으로 갔다. 산업부두 앞 바다에는 여러 척의 화물선이 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시야에 안민고개와 시루봉이 들어왔다.
진해 바다는 바람이 없는 날이라 물결이 일지 않아 고요하기가 호수 같았다. 방파제에는 몇 낚시꾼이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소죽도 공원 산책로를 돌아가니 속천항과 진해루가 가까이 보였는데 그쪽으로 가질 않고 이동으로 들어섰다. 이동운동장에는 공을 차는 젊은 건각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요일이면 아침마다 뛰는 조기축구회 회원들인 듯했다.
에너지환경과학공원에서 이동을 거쳐 찾아간 곳은 경화 장터였다. 3일과 8일에 서는 경화장은 근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오일장으로 내가 가끔 들리는 장터다. 생활권에서 가까운 창원 시내의 소답장이나 상남장보다 규모가 컸다. 마산 댓거리에 일요일마다 열리는 장터는 농산물 중심인데 경화장은 수산물과 잡화도 많았다. 경화장에서 생선을 사 갈 생각이라 미리 몇 군데 둘러봤다.
나의 일과는 하루가 무척 빨리 시작해 새참을 지나 점심때나 마찬가지였다. 경화 장터에서 전을 부치고 국수를 말아 파는 ‘박장대소’ 주막을 알고 있다. 내보다 연상인 엄 씨 주인장은 부재중이고 그의 아내가 나를 첫 손님으로 맞아주었는데 일 년에 한 번 될까 말까 뜸하게 들렸다. 명태전을 시켜 놓고 맑은 술과 맥주를 섞어 잔을 채워 안주가 나올 즈음 옆자리에도 손님이 앉았다.
주막을 나와 시장을 한 번 더 둘러보며 햇고구마와 연근을 샀다. 내가 텃밭에 심어 놓은 고구마는 달포쯤 지나야 캐지 싶다. 선도가 좋아 보이는 오징어와 한치가 있어 그 가운데 한치를 샀다. 이후 아까 봐두었던 조기는 만 원에 세 마리였는데 삼만 원은 아홉 마리에서 덤으로 한 마리 더 얹어 열 마리였다. 재래시장이나 오일 장터에는 현금으로만 통하나 요즘은 상품권도 가능해졌다. 22.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