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개국하자 이씨 조선을 거부한 고려 충신들의 반 이성계 세력화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고려 왕위를 복위 하려는 세력으로 무장 투쟁을 도모한 그룹, 려말 고위공직자 그룹으로 이성계를 부정하는 세력으로 현실 정치에 협조를 하지 않는 두문동 은거 그룹, 이성계를 부정하되 아예 먼 원지로 떠나 자기들만의 세상을 구축한 담안 그룹등
역시 우리 충정공 (휘 안세) 께서도 두문동 72현중 한분으로 이성계의 부름을 거부하고 낙향하여 인동에서 은거한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담안 이다. 우리 주변 곳곳에 담안이라는 동내가 산재한다.
담안의 세상은 고려다. 고려가 패망하자 고려에서 관료로 있던 사람들이 개성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여 동내 주변에 담을쌓고 담밖은 조선이고 담안은 고려라는 상징적인 이조 반대 세력으로서 이조에 저항을 하였던바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담안이라는 동내의 형태로 남아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조 500년을 거치면서 담안 이라는 형태의 동내 이름이 없어지지 않고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선왕조의 지속가능한 존속을 위해서 국가에 충성을 강요하는 모범 사례로 장려 했기 때문이다.
사육신이 그러하듯 당장은 나에게 불충이 밉게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에 충성하고 변절하지 않는 충성심은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서 본보기로 국가에서 예우하고 대접을 함으로서 유사시 정변이 일어 나더라도 현조에 대한 변절한 마음을 갖지 않게 하려는 전략적인 당근책일 것이다.
밀양 인근에도 여러 곳에 담안 이라는 동내가 존재 한다. 담안은 일명 장안 일명 고려동 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며 동내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담안은 변절하지 않은 절개의 상징이 되었다.
경남 함안 산인면 재령이씨 집안의 고려동 일명 담안이 그 유명한 사례이다. 자손에게는 고려 충신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는 한편 변절하지 않는 절개를 지킨 집안으로 자긍심을 가지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함안 고려동(담안) 재령이씨 문중에도 우리 장문과의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중현의 시문을 정리한 율간실기는 이중현의 후손 이수형이 간행을 하였는데 인동장문의 사미헌 장복추 선생이 고려동 재령이씨 문중에서 간행한 율간실기에 발문을 한 것으로 보면 조선 후기 사미헌 장선생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실감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