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의 비밀 (고후 4:7-12)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이 시간에 “질그릇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님을 진실로 모시고 하나님 잘 경외하며 산다면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하신 예수님의 은혜로 다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학개 선지자는 예수님을 만국의 보배라 했고(학2:7), 예수님께서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하셨습니다. 요일5:4에도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했습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그런데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되 질그릇에 주신다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흙으로 빚어 구워 만든 투박하고 잘 깨지는 천한 그릇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 만드신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하나님이 없이는 무가치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깨닫고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진리의 핵심이 있습니다. 질그릇이 아니면 보배를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질그릇임을 깨닫고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 때 하나님이 진실로 우리의 보배가 되십니다.
질그릇임을 깨닫고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일까요?
1. 큰 능력입니다.
본문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심히 큰 능력이라 했습니다. 이 능력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요 죄와 마귀와 지옥과 사망과 저주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능력의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질그릇이 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처럼 혹은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그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고전1:27-29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후12:9-10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만 교만 태만 다 버리고 자기 부족을 깨다랑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를 일생 연단하시는 것도 바로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진정 자기 부족을 알았으면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약4:6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2. 큰 보호입니다.
8-9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성도에게도 시련이 있지만 주님을 의지할 때 다 이길 수 있게 해주십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용광로 불속에서도 찬송하게 하시듯 불같은 환난에서도 우리 심령에 어느 것 하나 다치지 않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한 사도 바울 얼마나 많은 시련을 받았습니까? 그러나 그에게서 스트레스의 흔적이란 조금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고후11:23-28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함께 하신다면 큰 은혜입니다. 우리 심령만 보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체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그래서 고전6:13에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했습니다. 우리 몸을 주를 위해 헌신하면 주님께서 우리 육체를 위해 살아주십니다.
어느 성도는 임신 4개월이었는데 47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해 산소호흡기를 떼고 임종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애기들이 뱃속에서 꿈틀거릴 때마다 산모의 뇌파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뇌사 상태에서 깨어나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런 다음 그의 간증입니다.
“나는 의식이 가물가물해 질 때쯤 뱃속에서 괴로움으로 요동치는 아이들의 태동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었고 나는 절망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순간 내 마음에 ‘너의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 너의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라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를 살려 주셔서 이 애기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늘 안타까운 것은 성도들의 교육을 세상에 맡길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이 너무 타락하여 그대로 놓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치유도 가르치고, 모세의 어머니처럼, 해외 우리 교포들처럼 국가관도 가르치고 역사도 가르치고 그렇지 않으면 사탄에게 귀한 성도들과 교회를 다 내주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잠4:6-9에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습니다.
3. 큰 임재입니다.
10-11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예수를 위해 수고하고 핍박 받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고난과 핍박을 받아봐야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났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충만하든지 그 영광이 우리 영혼에만 머물지 않고 육체에까지 나타난 것입니다. 역대하 7장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낙성식을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크게 나타났습니까?
대하7:1-2에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찬양했습니다.
그런 영광이 예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자에게도 나타납니다. 예수와 함께 죽을 것들은 불신앙, 불순종, 내 생각, 내 주장, 자만, 태만, 교만 그런 것입니다. 즉 질그릇처럼 자기 부족을 깨닫고 의지하는 자에게 입니다. 그래서 딤후2:11-12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흔히들 이 시대를 가리켜 가치관이 혼란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귀한지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윌리암 템풀은 “이 세상은 마치 어떤 장난꾼이 남의 상점에 들어가서 쇼윈도에 벌여놓은 상품들의 정가표를 모두 바꾸어놓은 현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장난꾼은 비싼 물건에는 낮은 가격표를 붙여놓고 반대로 싼 물건에는 높은 가격표를 붙여놓았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보배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보배이십니다. 주님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질그릇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질그릇의 비밀을 깨달아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열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큰 능력, 큰 보호, 큰 생명의 임재를 넘치게 받아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