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과 이어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 날에는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들고 스스로 떡을 먹을 테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만 불리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 말은 전쟁 후에 예루살렘 성이 망하고 그곳에 거하는 남자가 적어서 여러 여인이 호적에 등록시켜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여인들이 남자의 호적에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수치와 모욕감을 당하고 또 성적으로 학대를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이지 않아도 되니 그 이름으로만 살게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1). 그만큼 하나님의 심판 후에는 예루살렘은 황폐하게 되고 무질서하게 될 것임을 예언합니다. 하지만 2절부터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여호와의 싹’은 폐허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여줍니다. 그 싹은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며 그것으로 새로운 시작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싹이 피난하고 돌아온 자들을 위하여 음식을 제공하여 생명을 줄 것입니다(2). 이 싹은 황폐한 이스라엘을 회복한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또 그 날에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들이라고 칭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심판과 소멸의 영으로 죄악을 제거하고 더러움을 씻겨 깨끗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3-4). 이 예루살렘성도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성령으로 씻겨지고 거룩하게 된 백성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고 늘 동행하셨던 하나님을 구름과 빛 기둥으로 보여주셨던 것 같이 그 날에는 성전이 있는 시온 산과 모인 백성들 위에 항상 함께 있을 것입니다. 또 초막이 있어서 그늘이 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될 것입니다(5-6). 이것도 우리 가운데 오셔서 초막을 치시며(요1:14),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성령으로 영원히 함께하시는 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마1:23).
오늘 말씀은 앞에서 말한 심판의 말씀들과 하나님의 심판이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고 멸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에 초점이 있다는 것을 보게 합니다. 그 일은 궁극적으로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이루실 것임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 날’은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의 모든 날들을 의미하며 마지막으로 심판하러 오실 날을 바라보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회복과 거룩함을 위한 심판은 일어났고,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사람들은 더러움과 죄를 씻음 받고 정결한 자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함께하시고, 피하는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십자가의 심판으로 구원을 얻은 우리의 정체성을 기억합시다. 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바라보며 주님을 피난처로 삼아 살아가는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