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미
12시간 ·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민족의 동질감>
우리는 간혹 ‘남과 북은 이질감이 너무 깊어 함께 살 수는 없어’라는 말을 아무런 생각없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정치, 경제 시스템이 다르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과 북의 동포들이 대화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들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북녘의 동포들과 말을 나누다 보면 이질감은 커녕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같을까’하는 동질감만 느끼게 됩니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2015, 네잎클로바)에 담은 이야기입니다. (윗사진은 함경남도 함흥의 마전 해수욕장을 떠나며, 아랫사진은 평양의 맥주집에서.)
[북한(조선) 여행은 개인 맞춤관광을 제외하곤 모두 패키지 여행이다. 북한의 외국인 관광을 담당하는 ‘조선국제려행사’에 지불하는 여행비는 베이징-평양 왕복 비행기표·호텔비·식사비·국내선 비행기를 포함한 교통비와 관광지 입장료 등이 포함돼 있다. 열흘을 기준으로 1인당 대략 2500달러에서 3000달러 정도 한다. 여행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아리랑 공연 티켓(좌석에 따라 100~250달러), 고구려 고분석실 관람료(120달러 정도) 그리고 안내원과 운전기사를 위한 팁 정도다.
식사 때마다 맥주나 소주 등 주류가 제공되지만, 공식 일정에 없는 술집에 간다든가 혹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식사 대신 여행자가 원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경우에는 본인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하루 일정을 끝내고 안내원들과 운전기사에게 맥주를 대접하는 일은 우리들의 즐거운 여정 중 하나다.
이런 자리에서 나는 우리가 한 민족이요, 동포요, 형제자매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자녀교육·부부관계·부모님 모시는 일·직장·친구관계 등 사람 살아가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자면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라는 생각만 든다. 여기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이내 이런 사람들과 수십 년을 떨어져 살며 서로가 총을 겨누고 있다는 현실을 체감한다. 이 현실이 너무 허무해 가슴이 뻥 뚫어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희망도 품는다. 누군가 아무리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해도 우리는 서로 만나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금세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연히 만났던 재미동포 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분은 "이제 남과 북은 말도 점점 달라지고 이질감이 너무 커 함께 살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물었다.
"할머니, 미국에 사시면서 언어가 불편하시지는 않으세요? 영어 잘 하세요?"
"내가 무슨 영어를 해. 여기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영어는 잘 안 되네."
"답답하시지 않으세요?"
"답답하지. 난 그래서 한국 텔레비전만 봐. 한국 비디오 빌려다 보고."
"저도 여기서 박사학위까지 했지만 여전히 영어는 불편해요. 우리말이 너무 편하고 정겨워요. 미국은 정말 우리하고 다르지요?"
"다르고 말고. 이 사람들은 말도 안 통하고 생각하는게 우리하고는 아주 달라, 다르고 말구."
"한국으로 가셔서 사실 생각은 없으세요?"
"아냐, 난 여기가 좋아, 여기서 살다 죽을거야."
"이렇게 말도 안 통하고 이질감이 큰 나라에서 계속 사실 수 있으시겠어요?"
"…."
이 재미동포 할머니께서는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전혀 다른, 그야말로 이질감이 극에 달하는 미국에서 잘 살고 계신다. 과연 '남과 북은 이질감이 커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이 설득력 있을까.]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2015, 네잎클로바, 96~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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