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친구들을 만나러
구월 넷째 금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전날 다녀온 여정을 글로 남기고 대산 꽃단지 장미꽃을 소재로 시조를 다듬었다. “포플러 높이 자란 모산리 강변 둔치 / 김매고 물을 주어 땀 흘러 가꾼 꽃밭 / 도린곁 강가였지만 반겨주는 꽃이다 // 경계선 너머에는 물억새 이삭 패던 / 모래흙 꽃단지에 늦게 핀 장미 송이 / 초가을 철을 잊고도 / 요염하게 보였다” ‘가을 장미’ 전문이다.
날이 밝아오는 여명에 흐렸던 하늘이 개면서 베란다 밖으로 정병산에는 아침 안개가 걸쳐졌다. 연일 내린 비로 대기 중 습도가 높고 일교차가 커져 새벽에 안개가 잠시 피어올랐다. 여름 장마철에는 산허리를 감싸던 안개가 가을에는 산마루에서 산등선을 따라가면서 보기 드물게 일자형으로 번져갔다. 산마루에 구름처럼 뭉실뭉실 피어오르던 안개는 시간이 점차 흐르니 사라졌다.
아침 식후 일전 도서관에서 빌라다 둔 책을 펼쳤다. 철학과 삶을 연결하며 대중과 가슴으로 소통하는 젊은 철학자 강신주가 쓴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이었다. 그는 ‘가슴으로 애절하게’ 편에서 “행복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는 한, 고통, 불행, 불만족의 상태에 있어도 우리 삶은 계속된다. 삶에서 고통이 1차적이고, 행복이 2차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라고 했다.
강신주는 불교 철학 핵심 사유의 하나인 ‘고(苦)’를 행복보다 먼저 경험할 가치 체계의 대상으로 봤다. 그는 또 사랑은 타인의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즉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려는 의지이자 감정으로 풀어냈다. 아침나절은 집에 머물며 책을 펼쳐 읽었다. 점심 끼니까지 집에서 해결하고 못다 읽은 책을 안고 용지호수로 나갔다. 남은 부분은 용지호수 편백림 쉼터에서 마저 읽었다.
편백림에서 아침에 인상적으로 본 정병산 안개를 시조로 남겼다. “가을이 오는 길목 잦았던 비 그치고 / 추분이 다가오니 일교차 부쩍 커져 / 아침에 피어난 안개 정병산에 걸쳤다 // 모처럼 드러나는 햇살이 퍼져가자 / 산마루 걸친 구름 삽시간 사라지고 / 하늘은 파랗고 높아 당겨 보인 산이다” ‘가을, 아침 안개’ 전문으로 휴대폰 카톡‘ 나에게 쓰기’를 활용해 저장을 마쳤다.
용지호수 공원 편벽나무 쉼터에서 삼림욕을 겸하는 독서와 글쓰기를 했다. 공원 언덕에서 산책로로 내려서 호숫가 따라 걸었다. 날씨가 서늘해져 구름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가을 햇볕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한 마리 노랑나비가 가드레일 바깥 호수의 수련을 배경으로 내려앉아 폰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나비 사진은 언젠가 쓰게 될 시조 글감으로 삼아도 될 듯했다.
호숫가를 한 바퀴 걸어 잔디밭 구석 어울림 도서관을 찾아 아까 읽었던 책을 비롯해 집에서부터 챙겨간 대출 도서를 반납했다. 도서관을 찾아간 김에 오늘 자 지방지를 펼쳐 보고 서가의 눈에 띈 ‘평균의 종말’을 꺼내 읽었다. 두어 시간 머문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가질 않고 원이대로 용호동 상가 버스 정류소로 나갔다. 저녁에 초등 친구들과 격월로 모이는 자리가 예정되어서다.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저녁 장소 댓거리 한참 못 미친 어시장에서 내렸다. 가게에서는 추석 제수가 될 마른 생선을 가득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활어를 파는 대야와 수족관에는 조개와 활어가 펄떡였으나 오가는 손님은 한산했다. 장어구이 거리에서 합포 수변공원으로 나가니 마창대교와 인공섬이 드러났다. 김주열 열사 시신이 떠올랐던 자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저녁 모임 고깃집에 닿으니 친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현직 시절에는 더러 빠지기도 했으나 퇴직 후는 꼬박꼬박 얼굴을 내민다. 고향 의령에서도 세 친구가 합류하니 스무 명 가까이 되었다. 쇠고기를 구워 술잔을 채워 안주로 삼았으나 나는 받아둔 첫 잔을 비우지 않고 지켰다. 추석을 쇤 시월에 친구들과 목포로 소풍을 다녀오고 해가 바뀌기 전 베트남을 다녀올 일정이 기다렸다. 23.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