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소풍
小珍 박 기 옥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의 일이다. 학습자는 일본,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에서 온 주부들이었다. 여름 방학이 되자 동해안으로 소풍을 가게 되었다. 남편, 아이들도 합류하여 교사들까지 모두 50여명이었다.
한여름이라 바깥 날씨는 무더운데도 버스 안은 시원하고 쾌적했다. 일행은 너나 없이 팍팍한 삶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즐거움으로 들떠 있었다. 나름대로 멋도 내고 밝은 얼굴들이었다. 주부들은 가족 단위로 앉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무심한 남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회포를 풀고 싶어 했다. 특수한 가족 구성원을 거느리고 있는 처지라 나름대로 동류의식이 작용했으리라.
버스가 막 출발하려는데 뒤쪽에서 ‘잠깐만요. 아조씨, 잠깐만요’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일본여성 히로미였다. 그녀는 ‘아저씨’를 ‘아조씨’로 발음한다. 내가 깜짝 놀라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바깥을 연신 가리키며 아이를 안고 버스에서 황황히 내린다. 시어머니가 그녀를 붙잡으려고 뒤쫓아 온 것이다. 일제히 목을 내밀어 창밖을 본다. 시어머니가 히로미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박는다. ‘소풍은 무슨 소풍, 일손이 딸려 미치겠구만.’ 결국 히로미는 시어머니한테 끌려가고 만다. 남편은 왜 같이 안 왔느냐고 물었을 때 ‘그냔 죤 바빠서요 --’ 하더니.
감포에 도착하니 차 안에서 환호성이 일어난다.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차 안에서 토막잠을 즐기던 주부들은 말괄량이 소녀들같이 일제히 바다에 뛰어든다. 3년 만에 바다를 보았다는 이도 있고 5년 만이라는 사람도 있다. 주부들은 바지를 적시며 물놀이에 정신이 없다. 순식간에 아이들은 아빠 담당이 되어 얕은 물가에서 뛰어놀기 시작한다.
해변에 앉아 주부들 차지가 된 바다를 바라본다. 자연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첫 해외 경험에서 나는 그곳 바다가 내가 늘 보던 바다여서 감동했었다. 10시간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갔음에도 하늘과 들꽃과 바다가 그대로인 것이 눈물겨웠다. 마치 내가 자연을 데리고 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이 나를 안고 그곳까지 가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지금 저들이 저렇게까지 바다에 환호하는 것도 고국의 바다를 보기 때문이 아닐까. 고국에서 봐오던 바로 그 바다라서 낯설지 않고 긴장되지 않고 편안한 것이 아닐까. 저들의 마음은 어느새 고국으로 달려가고 있으리라.
“선생님 커피 드세요.”
언제 왔는지 판티앙이 커피를 들고 서 있다. 베트남 여성이다. 키가 크고 덩치도 클 뿐 아니라 성격 또한 활달하여 수업 분위기를 잘 이끈다. ‘한국 생활에서 어려운 것’에 대한 글짓기 시간에 주정뱅이 남편이나 치매 걸린 시어머니 얘기를 쓸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명절 음식을 직접 만들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인상적이었다. 명절만 되면 그녀는 일찌감치 시댁에 가서 나물 다듬고 전거리도 챙겨놓는데, 뒤늦게 나타난 손윗동서와 시누이들이 아이들이나 돌보라고 하며 밀어내는 모양이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녀는 조카들만 돌보았다고 했다. 친조카, 사촌 조카들을 데리고 집 뒷산에 올라갔더니 고향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더라고 쓰여 있었다.
“선생님. 저기, 저게 뭐지요?”
아이 하나가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우리들 중 누군가의 아이임에 틀림없었다. 판티앙이 총알같이 튕겨나가고, 술 먹던 남편들이 달려 나오고, 구조대원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아이는 다행히 무사했다. 판티앙의 여섯 살 난 아들이었다. 아빠가 아들을 돌보지 않고 술 마시는 동안 밖으로 나와 물장난하다 빠졌다고 한다. 남편은 판티앙 보다 열일곱 살이나 나이가 많은데다 알콜 중독자다. 지금 그는 자기 아들이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도 술에 취해 해롱거리며 다른 사람에게 수작을 걸고 있다. 판티앙이 소매를 걷으며 남편에게로 다가간다.
“얏! 이 걸레 같은 놈!”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알 수 없다. 흥분한 그녀가 남편을 쌀가마처럼 들쳐 메더니 바다를 향해 힘껏 던져 버리고 만다. 사람들이 놀라 아우성치며 우루루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돌아가는 버스 안.
이번에는 아예 가족 단위로 좌석이 배치되었다. 익사 소동 끝이라 버스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다. 일행은 모두 지친 얼굴로 자는지 마는지 눈을 감고 있다. 판티앙만이 두 눈을 부릅뜨고 아들을 무릎에 누인 채 남편에게 한쪽 어깨를 내어 주고 있다. 부자(父子)는 깊이 잠들어 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더 없이 편안한 얼굴이다.
갑자기 ‘꺼이, 꺼이’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판티앙이 온몸으로 내는 설움에 찬 울음소리다. 슬픔도 전염이 되는 것일까. 자는 듯이 보였던 일행이 하나씩 둘씩 흐느끼기 시작한다. 가슴 속에 꾹꾹 눌러둔 저마다의 설움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삽시간에 버스 안이 울음바다로 출렁인다.
젖어오는 눈을 들어 창밖을 내다본다. 멀리 금오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빈 하늘엔 구름 몇 점이 한가롭게 떠 있다. 날씨가 어찌나 화창하고 맑은지 구름 위에 산이 솟아있기도 하고, 산 위에 구름이 걸려 있기도 하다. 저 구름은 이들의 슬픔을 알까. 이역만리 타지에 시집와서 민들레 홀씨처럼 고독하게 흩어져 사는 이들의 아픔을 알까.
버스가 시간에 쫓기는지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힘들고 고달픈 하루도 석양을 등지고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