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0월 23일 그것은 정의봉이었을까
1996년 10월 23일 11시 반 경 인천 중구 신흥동의 한 아파트. 슈퍼마켓에 가려고 집의 여주인이 문을 연 순간 누군가 거칠게 문 안으로 파고들었다.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한 손에는 장난감 권총을, 한 손에는 ‘정의봉’이라 쓰인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여주인을 위협하면서 안방으로 몰아 넣고 노끈으로 묶어 둔 후 자신의 진짜 표적을 찾기 시작했다. 표적은 옆방에 누워 있던 근 여든의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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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을 몰아쉬는 노인 앞에서 살기등등한 남자가 물었다. “네가 안두희냐?” 노인은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할 만큼 쇠약해 있었다. 하지만 이 남자가 왜 자신을 찾는지는 분명히 직감했을 것이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60년대에는 목에 칼을 맞은 적도 있고, 자신을 찾아 온 이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은 예사로 겪은 노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정의봉을 든 남자 역시 “내가 안두회오만 무슨 일이요?” 따위의 답을 기다릴 여유도 생각도 없었다.
남자는 노인의 두 손을 묶은 후 가차 없는 몽둥이질을 해 나갔다. 퍽퍽 소리와 윽윽 소리가 엇갈리면서 노인은 머리가 깨져 나갔고 곧 축 늘어지고 말았다. 1948년 백범 김구를 쏘았던 안두희, 그 후 처벌은 커녕 군에 복귀했고 군 복무 후에는 군납업자로 변신,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로 살았던 안두희는 그렇게 파란 많은 인생을 마감한다. 그를 때려죽인 범인은 뜻밖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평범한 시민 박기서였다.
부천과 서울 영등포를 오가는 버스를 운전하던 그는 아내와 고3이 된 딸을 부양하면서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성실하게 일하던 가장이었다. 말도 없고 내성적인 성격으로서 평소에 백범이 어쩌니 나라가 어떠니 일언반구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저승사자로 돌변하여 안두희의 집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사건 후 자신이 다니던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했고 성당 신부와 함께 경찰에 출두한다. 그의 말은 간단하면서 단호했다. “안두희는 김구 선생을 암살해 놓고도 뻔뻔스럽게 이 땅에서 살아왔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산다는 자체가 부끄러웠다. 그래 놓고도 안두희가 진실을 밝히지 않아 분개하여 결행했다.”는 것이다.
종종 “전두환 같은 놈이 제 명에 죽으면 안되는데.” 등등의 말을 심심찮게 하는 이로서 나는 박기서의 분노를 이해한다. 하늘에 닿는 죄를 지었으면 하늘의 죄를 받아야 하는데 이건 하늘의 죄는 커녕 인간의 법조차 우롱하며 평생을 배 두드리며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복장 터지는 일인가. 불감청일망정 고소원이라고 차마 내가 할 일은 못되고 누군가 정의봉이든 정의검이든 아니면 정의총이든 휘둘러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솔직히 여러 번 했음을 고백해 둔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박기서의 행동을 ‘의거’라 지칭할 수 없으며, 그가 정의봉으로 정의를 세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회의적이다.
우선 안두희는 끈 떨어진 갓이었다. 그가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떵떵거리던 시절에 그의 목덜미에 몽둥이가 내려쳐졌다면 그 몽둥이를 기꺼이 정의봉이라 불러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기서 앞에 누워 있던 안두희는 그 누구로부터 보호받지도 못하고, 기댈 권력도 사라진 여든 노인 자연인에 불과했다. 자신에게 내리쳐지는 몽둥이를 피할 기력조차 없는 한 노인을 무방비 상태에서 타살한 것은 인간의 존엄함을 유린하는 행동이었다. 그의 몽둥이질 한 번마다 민족 정기가 푸르게 살아났는지는 모르나, 인간의 존엄함은 시커멓게 멍들어 갔다.
민족 정기든 정의 구현이든 아니면 지고지선의 무슨 명제이든, 그것들이 인간의 존엄함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 그 장엄한 광휘는 일시에 사그라든다. 완벽한 항거 불능 상태의 노인을 민족 정기 구현을 위해 때려죽이는 일이 정당하다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빨갱이를 처단하는 일도 적어도 그 편에서는 응당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정의 구현을 위해 사적인 처벌이 용인된다면 그 정의는 수천 갈래 수만 갈래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민족 정기의 실종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병적인 망각이었다.
적어도 안두희의 머리가 깨져 나가던 순간 그는 사회적으로 가장 고립되고, 그 초보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약자였다. 그를 대상으로 한 정의의 폭발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박기서씨의 정의봉이 세운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거대한 음모의 기획자는 어둠 속에 묻혀 있고 수혜자들은 박기서씨 등 정의파들이 한탄하는 대로 지금도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는 사회에서, 안두희 같은 말단의 촉수들을 때려죽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욕 먹을 각오하고 덧붙인다면 그것은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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