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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 인권위에 영진위 고발
공식의결 없이 ‘특정 사상 배제’ 문구 삽입...외부압력 정황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실행자 유인촌...문체부 개입 유력
“영진위 지침 본질은 정부 비판 차단”
▴30일 오후 1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영화진흥위원회의 블랙리스트 부활을 고발한다’ 기자회견에서 명숙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견은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독립영화협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영화배우조합,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등 6개 단체가 주최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사전검열을 제도화해 논란이 인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사업’에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고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한 영화 및 교육프로그램으로 구성하여 진행할 것”이라는 공지를 내렸기 때문.
문제는 ‘정치적 중립’과 ‘특정 이념·사상’의 범위가 모호하여 검열 기제로 작용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영진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부 비판적인 예술인들을 검열했던 전력이 있는 만큼, 블랙리스트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시민단체들, 인권위에 영진위 고발
화요일 오후, 시민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진위를 인권위에 고발했다.
이날 회견을 주최한 ‘블랙리스트 이후’ ‘한국영화배우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등 6개 단체는 “영진위의 지침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기관장이 나서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까지 했던 영진위가 윤석열 정권 아래서 또 다시 검열을 시도하는 것이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이들은 △‘2024년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사업(미래관객 육성사업)’ 사전검열 진상조사 △사전검열 사태 재발방지 대책 수립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공식의결 없이 ‘특정 사상 배제’ 문구 삽입...외부압력 정황
‘영화계 블랙리스트 문제해결을 모색하는 모임’ 활동가이자 인디스페이스 디렉터로 재직 중인 원승환 관장은 “미래관객 육성사업에서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하라는 공지가 나오기 전 1차 영진위 임시회의 자료에는 사전검열에 해당하는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며 “누군가의 지시로 특정 이념·사상을 배제하라는 문구가 뒤늦게 삽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영진위가 ‘특정 이념·사상 배제’를 적시한 것은 지난 3월 27일. 그러나 앞서 1월 5일에 열린 영진위 1차 임시회의에서는 해당 문구와 관련된 의결 과정이 전무했다는 말이다.
영진위의 1차 임시회의가 ‘미래관객 육성사업’ 개요를 결정하는 마지막 공식회의였음을 감안하면 임시회의 이후 영진위에 비공식적인 압력이 가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인 셈.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실행자 유인촌...문체부 개입 유력
이에 블랙리스트 소송단장을 역임한 민변 강신하 변호사는 “영진위 같은 문체부 하위 기관에서 공식 절차 없이 마음대로 사업 개요를 바꿀 수는 없다”며 “상위 기관인 문체부의 개입 정황이 분명해 보인다”고 짚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 작성에 복무한 유인촌 장관이 윤석열 정부의 문체부 장관으로 재직 중인만큼 문체부 개입 의혹은 배가되는 실정이다.
이어 강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에서도 ‘표현행위자의 특정 견해, 이념, 관점에 근거한 제한은 가장 심각하고 해로운 제한’이라 판시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중립’ ‘특정 사상’ 등을 판별하는 기준이 모호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말이다.
강 변호사는 “이번 영진위 사업공고 방식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자행된 블랙리스트의 부활”이라며 “그에 따르면 정부 비판적 영화나 교육 역시 배제될 위험이 생긴다”고 밝혔다.
“영진위 지침 본질은 정부 비판 차단”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활동가는 미래관객 육성사업이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임을 상기시키며 영진위의 해당 지침이 청소년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짚었다.
“특정 사상을 배제한다는 명목으로 영진위의 자의적 해석에 맞춰 영화를 선별하는 일은 오히려 청소년들 스스로 생각할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어 명숙 활동가는 “이미 윤석열 정부는 재작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윤석열차’라는 풍자만화로 입상한 고등학생의 작품에 ‘엄중경고’를 내린 바 있다”며 “결국 영진위 지침은 정부 비판적인 영화들에 대한 검열로 이어질 것”이라 지적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백재호 대표 역시 “과거 블랙리스트 시국의 가장 해로운 측면은 ‘창작자들이 작품을 만들 때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자기검열을 하게 됐다는 것”이라며 “이 같은 검열은 영화뿐 아니라 전체 사회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영진위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의 사업들에도 시행되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들은 회견 직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영진위 검열 사태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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