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국가 안보의 초석(礎石)이다
< 이 글은 경우신문 2017년 2월 28일 자 6면에 보도된 글 입니다.>
송학 김시종
최순실로 나라 안이 혼란스럽다.
촛불 민심은 전 국민의 심경(心境)을 대변할 수 없다. 200만 명이 연일 촛불을 태우며 시위를 하더라도 5,100만 명의 뜻을 대변할 수 없지 않겠나 싶다. 말 없는 대다수 국민은 침묵을 지키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정치꾼은 촛불의 향방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며, 혹시나 자기한테 닥칠까? 싶어 전전긍긍하며 부화 내동하는 작태가 안쓰럽기도 했다. 정치는 언제나 국민의 눈높이 아래에서 멤, 돌고 도는 듯해 한심한 모양새를 보는 것 같다. 국민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헌법기관에 몸담고 있으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은 국회의원은 영혼도 없는지 묻고 싶다. 언론과 종편은 최순실로 떠들썩하며 지면이나 지상파를 도배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상을 대변인 노릇을 하는 듯하다.
시국이 어수선하고 치안이 혼란스러울수록 경찰은 고달파진다. 촛불 속에는 종 북, 좌파 세력, 전교조 등이 극성을 부린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수백만 명이 모인 군중집회에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한국인의 시위 문화에 대한 성숙도를 보는 듯했다. 촛불에는 다양한 국민의 소리가 담겨 있다. 현 정부를 전복하려는 고정간첩이나 종북 세력은 박 대통령을 하야, 구속 또는 탄핵 부류, 현 시국을 걱정스럽게 우여 하는 세력, 문화 행사를 관람하거나 말없이 인파 속에 시국을 관망하는 사람 등 다양한 군중이 촛불을 주도하며, 대권 후보자는 시위 문화를 선동하여 대권 운동을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이를 때일수록 경찰관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질서 유지와 시위 문화 정착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엄동설한에 광화문, 세종로 등지에서 질서 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시국이 어지럽고 혼란할수록 경찰은 확고한 국가관과 사명감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해야만 나라 발전을 위한 제일 나은 방법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고도화된 종 북 좌파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NL계나 PD에 대한 이념 교육을 철저히 하여 공산주의 이론 면에서 그들을 제압할 수 있어야만 한다. 유신 시절 지식인을 탄압하면 좌파성향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었으나, 지금처럼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시점에 이데올로기 논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면 단단한 이론 무장이 불가피할 것 같다.
젊은 경찰은 현 시국에 대한 예단(豫斷)한 정황을 알 수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나, 해방 전후의 시국 상황이며, 어떻게 하여 6· 25동란이 일어났는지 올바르게 알아야만 한다. 한국은 경제 발전과 자유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란 말을 종종 듣고 있다.
우리는 선진국 문턱에서 좌우 갈등과 민노총의 시위 문화로 인한 일자리를 해외로 돌리고 있는 것이 오래된 이야기이다. 학력 수준은 높아졌고, 시시한 일자리는 하기 싫어 한탕 문화가 성행하는 것도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현상(現狀)이다.
월남이 공산화된 것도 내부의 적이다. 티우 수상의 비서실장도 간첩이었고, 군 고위층 장성도 간첩이었다고 한다. 미국이 그 많은 군수 물자를 지원하고도 공산화된 것은 역사는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김정은을 추종하는 내부의 적을 척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도 머지않아 위태로운 국면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내부의 적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무한한 열정과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위장 탈북자 가운데에도 간첩이 있을 수 있고, 혼란한 시국을 틈타 촛불을 확산키 위해 고정 간첩망에 지령문을 보내는 북괴의 지령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은 국가 안보의 초석인 것처럼 무한한 국가관과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하여야 이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한 가지 부언한다면 生 爲 祖 國 生, 死 爲 國 民 死.
“ 사는 것도 조국을 위해 살고, 죽는 것도 국민을 위해 죽는다 ”는 집념(執念)만 있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며, 국운은 상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