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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라 (막3-20)
2024년 6월 18일 (화요일)
찬양 : 주님 내길 예비하시니
본문 : 막4:21-23절
강사수련회 3일째 아침이다. 어제는 3만보를 걸을 만큼 많은 이동을 하며 제주를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천주교에서 만든 순례길인 이시돌길이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비를 맞으며 강사님 5분이 순례길을 걸으며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특히 천주교가 이 시대의 아픔에 어떻게 동참했는지를 공감하며 그동안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정작 시대의 아픔과는 동떨어지게 달려왔떤 내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4.3사건을 통해 제주가 서로 나누고 고발하고 찢기며 가난의 굴레에 있을 때 이들의 가난과 절망과 상처를 보듬기 위해 기도했던 한 선교사의 기도가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버지, 계속 부탁만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저는 아버지께 아직도 많이 의지하게 됩니다.’
‘어느 날 빚 때문에 한 신자가 자살했다는 소식 들었죠. 당시 그런 사람들 많았어요. 그래서, 그들을 위한 은행을 생각했어요.’
‘육지 공장에서 목숨을 잃은 소녀의 유골함을 보면서 제주 지역 여성들에게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공하려고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아이들 죽어서는 안된다 생각했어요. 제주 여성들의 근면함과 성실함이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이 땅에 첫 발을 딛으며 제 마음에 떠오른 예수님 말씀이 있었습니다. 너희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등산도 했고, 꽃도 보았고, 제주의 음식도 먹었지만, 내게 어제 하루 들렸던 음성은 너는 교회가 빛을 잃어 세상의 조롱이 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구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이다. 주님 ~
이제 3일째 강사수련회를 맞이하는 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서 예수님은 등불을 가지고 비유로 말씀하신다. 21-23절
‘2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어제 천주교 순례길 이시돌 길을 걸으며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을 따라 이 땅의 상처와 가난과 절망의 자리에 구체적으로 반응하며 그들의 빛이신 주님을 신뢰하며 행동한 천주교의 모습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는 아침 주님은 이 말씀으로 내게 다시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4:21-23절은 등불 즉 예수님의 빛이신 그분과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숨기지 않고 세상을 향해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한다.
어제의 이시돌 길 순례가 생각나게 하는 말씀이다. 믿음이란 등불이 등대 위에 놓여 세상의 어둠을 제거하며 빛이 되어야 하듯 세상에 빛으로 보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숨겨지는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되고 세상에 보여지는 믿음이 되어야 참된 믿음이란 것이다. 아멘.
과연 나의 믿음은 이 어둔 세상에 어떻게 보여지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지 주님이 물으신다. 이시돌 선교사는 제주가 가진 4.3사건의 상처속에 다가온 이웃과의 단절과 고발, 단절된 섬의 가난과 절망을 구체적인 은행과 돼지 사역을 통해 빛으로 드러났다.
나는 목회사관학교와 다양한 섬김을 통해 나름 빛으로 구현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14년을 달려왔는데 과연 그 빛이 어둠을 몰아내었는가? 돌아보는 강사수련회가 되었다.
본문이 강조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진리는 결코 감추어질 수 없고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둠과 다양한 가림막이 빛을 가릴 수 있지만, 그것이 치워지는 날이 언젠가는 오고 그때 빛은 절대 감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상처입은 자들을 위해, 절망한 자들을 위해 아주 작은 돼지를 키우며 소망의 꿈을 심어주려고 했던 사건과 공장들이 결국 제주의 상처난 이들의 희망이 되었고, 오늘 이토록 멋진 순례길을 만들어 나를 감동케 하였음을 깊이 묵상한다. 그렇다. 빛은 반드시 드러난다. 두려워하지 말고 빛을 품고 나아가라고 주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말씀하신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이다.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고, 확실하게 알라는 명령이다. 막연한 이해로 하지 말고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급한 것인지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하라고 외치시는 것이다.
오늘 아침 어제의 순례길이 자꾸 되살아난다.
돌아보면 구체성과 실제성이 부족했던 라마나욧선교회와 목회사관학교가 아닌가? 싶다. 나는 작은교회의 아픔에 어떻게 빛이 되었는가? 그렇게 아파하는 작은교회를 위해 내가 한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그들의 실제적인 고민을 향해 무엇을 행동했는가? 나의 믿음이 만든 구체적인 순례의 길은 무엇이었는지, 그 길을 위해 내가 걸었던 십자가의 길은 무엇인지 묻게 되는 아침이다.
내가 받은 <등불> 여기서 등은 정관사가 붙은 단어 <호 뤼크노스>이다. 즉 유일한 빛이란 뜻으로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유일한 빛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내가 품은 주님의 빛으로 비춘 사명은 유일한 빛인데 절대 감추어 두어서는 안 되는 사명인데 나는 지난 14년간 이 빛을 품고 도대체 어떤 구체적인 것을 만들었는지, 그들의 아픔을 위해 나는 어떤 기도를 했고, 그 기도를 따라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며 회개하는 아침이다. 주님 ~
물론 오늘까지 이시돌 선교사는 100여년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한 것과 다른 구체성이 있음이 내게 울림을 준다. 나도 무언가 구체적인 몸부림으로 웨이브리즈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이제 내일부터 새로운 직원이 출근한다. 그러나 그 역시도 구체적이지 못함을 돌아본다. 주님 ~
주님, 이 종이 당신 앞에 겸손히 섭니다. 주님의 빛을 받았건만 저는 그 빛을 가지고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것으로 믿음으로 드러내는 일에 담대하지 못하고, 구체적이지 못했음을 자백합니다. 금번 강사수련회를 통해 제가 다시 주님의 빛을 점검하여 세상을 비추신 주님의 뜻대로 내게 주신 사명의 자리를 비추는 등잔이 되겠습니다. 주님, 이 종을 포기하지 말아 주시고 이 빛으로 내게 주어진 어둠을 몰아내는 자로 서게 하소서.
첫댓글 묵상글을 읽으며 주님의 강한음성이 들리는 것 같아서 회개한다.
빛의 자녀로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는지...
주여~~용서하소서.
소자를 예수님 섬기듯이 섬길수 있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