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y of Senatus Populosque Romani.
제 1 권
The hegemony over Italy
제 1 장
"로마의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가 몰락하고 브루투스 가문이 공화정을 로마에 설립한지 238년이 지났다.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 인들에게 로마는 짓밟히고 남쪽의 삼니움 족에게서 굴욕을 맛보았다. 북쪽의 에트루리아 인들에게서는 자유를 빼앗겼지만 우리, 영광스러운 마르스의 후손들은 결국 뛰어난 무용으로 에트루리아의 전사들을 도륙하고 그들의 집들을 불태웠으며, 여자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그들의 부를 빼앗았다. 그리하여 로마는 라티움을 통일하고 움브리아 인들마저 처단한 뒤 삼니움족을 복종시켰으며 루카니아의 소들을 끌고온 에페이로스의 피루스와 그의 용맹스러운 전사들 마저도 패퇴시켰던 것이다...."
272B.C. 로마는 피루스와의 세 번 전투에서 너무나 많은 전사들을 잃었다. 아직 남쪽에는 피루스가 구축하고 간 세력이 로마의 국경을 위협하고 있었으며, 레기움에서는 용병들이 반란을 일으켜 도시를 빼앗기고 북쪽으로는 아직 잠잠하지만 강대한 여러 갈리아 부족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272년 봄. 아직 정년을 채우지 않은 아우렐리우스 코타를 유례없는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그의 휘하에 남쪽 전선을 방어하던 한 개 군단을 붙여 에페이로스의 잔당들을 몰아내고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모두 로마의 통치 아래로 복속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아직 전투도 한번 지휘해보지 않은 새파란 젊은이였다. 코타는 아직 16살 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의 전투경력은 휘하 병사들에게 불안으로 다가왔다. 제 1 군단이 군수물자의 창고인 칸나에에서 나온 뒤 국경이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마주칠 회전과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갈지도 모르는 장군. 그리고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비관했다. 그만큼 사령관은 어렸고 전투지휘능력도 의심되었으며 군사들이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매력도 보이지 못했다.
국경을 넘었다. 이제 병사들 사이에서는 결국 자신들이 질 것이며, 사로잡히고, 모든 것이 다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서로 자신의 운명을 비관했고, 결국 병사들은 심각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타는 아무런 대응을 취하지 않았으며 작전회의의 주도권도 그에게서 점점 군단장과 대대장들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회의 중 그들이 모든 코타의 의견에 반문을 하는 것은 이제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었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와 제 1 군단은 칼라브리아 북부지방 숲 근처에 다다랐다. 군단장과 대대장들의 반대에 따라서 코타는 숲을 우회하여 계속해서 내려갔다. 그리고 제 1 군단은 타렌툼에 다다랐을 때 코타는 즉시 타렌툼을 포위할 것을 명하고 로마 병사들은 곧바로 전투공병들로 돌변하여 공성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해 봄 중순의 일이었다.
아직 로마 북부전선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동맹국 또는 속국의 의무로 보내진 삼니움 병사들이 봄이 끝나갈 때 즈음 도착하였다. 그들이 진영에 도착했을때는 한밤중이었다.
처음 쓰는 AAR이라서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오타 지적, 좀더 나은 글을 위한 태클 등 모두 환영해요- 'ㅁ'!
첫댓글 오, 유로파다! 그동안 유로파 하는 사람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ㅎ
이거 무슨모드?
무슨모드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