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강원수필문학회 가을 문학기행
○ 개 요
* 언제-2018. 10.9(화) KBS 옆 만남의 숲에서 10시에 출발
* 회비-3만원, 자주 멋진 자유복, 등산복,
* 참가 희망자(10.6)현재 : 20명
-김영칠, 연제철, 이병옥, 박종숙, 장희자, 정금지, 최옥길,
김동순, 신성자, 이응철, 신화자, 정갑녀, 윤부영, 이흥우, 박종성,
한인자, 위민식, 유연선, 심순희, 김동겸(시인)
○ 설 명
- 문학기행 코스 : 다산 생가 – 중식 – 세미원 – 두물머리
-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년(영조 38) 6월 16일 ~
- 1836년(헌종 2) 2월 22일)
올해가 다산 정약용 해배 200주년입니다. (해배 : 유배에서 해제되어 고향으로 돌아옴),
- 2018년도를 정약용 해배 및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을 맞이해 남양주시는 2018 남양주 정약용 해로 선포하고, 정약용의 인본주의와 애민사상, 실사구시 정신을 널리알리고 있으며 우정사업본부는 다산 정약용 선생 해배 및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 기념우표를 2018년9월14일 여유당과 국립 민속박물관에서 제공받은 목민심서 필사본으로 디자인한 우표를 발행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79F485BBADD470F)
☛ 정약용은 자 귀농(歸農) 미용(美庸), 호 사암(俟菴) 탁옹(籜翁)
태수(苔叟) 자하도인(紫霞道人) 철마산인(鐵馬山人) 다산(茶山),
열수(洌水)이며, 시호 문도(文度)라고 했으며 나라에서 내려준 시호는 경술국치 9일 전인 융희 4년(1910년) 8월 20일에 내려지면서 조선 왕조의 거의 마지막 시호 중 하나로 남게 되었습니다.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고 계시면서 자신의 호로 써왔슴.
이후 해배되어 돌아와 돌아가실 때까지 열수(洌水)라 했으며,
열수는 한강의 또다른 이름, 현재 생가앞의 한강을 뜻합니다.
즉 다산이란 강진 유배 당시 뒷산의 차밭을 보고 붙인 호였고, 강진 주민들이 불렀던 아호 라합니다.
다산은 1762년 지금의 남양주에서 태어난 그는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대표실학자이자. 개방과 개혁을 통한 부국강병을 주장한 개 혁가입니다. 성균관 유생 시절부터 정조의 눈에 들어 예쁨을 받았으 나 최종 시험인 대과에는 계속 미끄러진다. 그것도 공부를 못 해서가 아니라 성균관 시험에서는 툭하면 1등을 먹는데 대과만 보면 떨어지 는 것이다.
1년 내내 모의고사 만점 받다가 갑자기 수능 날 망치는 케이스.
정약용의 대과 불합격이 남인인 그를 견제한 노론의 입김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는 음모론이 있는데, 하필 남인 영수인 채제공이 주재한 시험에서 정약용이 합격한 사실이 이 음모론의 주 근거가 되며, 이후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경기도 관찰사 서용보, 연천현감 김양직의 비리를 고발하여 파직시키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허나 이 일은 후에 그의 발목이 잡히는 큰 계기가 된다. 서용보는 이 때 파직되었음에도 화려하게 부활하여 후에 44세의 젊은 나이로 우의정(즉, 삼정승)의 반열에까지 오른다. 순조와 정순왕후 김씨의 총애가 깊어 이를 기반으로 권세를 휘두른다고 당대 유생들에게 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훗날 정조의 실록을 편찬하는 편찬위원에까지 참가하게 됩니다. 따라서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정약용을 괴롭힙니다.
이후 1818년 8월에 18년동안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저술 활동에 힘쓰며 여생을 보내다 1836년 2월 22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4세. 여담으로 정약용이 사망한 날은 다름 아닌 60주년 결혼 기념일(회혼일)이었다고. 정약용이 죽은 2년 후에 부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를 괴롭혔던 서용보는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정약용이 석방되자 일부 대신들이 벼슬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결사 반대했으며, 순조에게도 총애를 받던 터라 권세를 휘둘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824년에 정약용보다 먼저 사망했습니다. 그의 나이 66세 때였다.
다산 유적지는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산75-1번지
- 다산 정약용선생의 묘(경기도기념물 제7호)
- 다산 정약용선생 생가, - 문도사(사당),- 기념관, 문화관
- 문화의 거리, - 관광상품 판매소
○ 전시된 물품
- 총58종 304점(동상, 영정, 목민심서등 저서, 거중기, 녹로,
디오드라마, 영상자료 및 조형물)
다산 유적지 입구에서는 다산선생의 얼이 느껴지도록 입구에서 수원성축조에 사용된 거중기 전시 및 동판에 선생이 집필하셨던 목민심서,
경세유표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산 기념관 내에 들어서면 다산선생의 유품을 전시하였고, 생가에는 선생의 어린시절을 느낄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나지막한 언덕위에 다산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 저서(작품)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여유당전서 등 500여권의 저술
○ 대표관직(경력)
병조참지(兵曹參知), 부호군(副護軍), 형조참의(刑曹參議)
첫댓글 자세한 자료와 설명 감사합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사무국장님~